비트코인과 버섯의 기막힌 평행이론

브랜든 퀴텀이 발견한 균사체와 비트코인의 공통점

by NT

비 온 뒤 숲에 가면 특유의 냄새가 난다. 축축하게 젖은 낙엽이 썩어가는 냄새, 그 밑에서 무언가 꿈틀대며 올라오는 흙내음.


도시의 매연과 사무실의 건조한 에어컨 바람에 절어있는 내가 비로소 숨을 쉬는 순간이다.


난 13년 차 직장인이다. 매일 아침 네모난 건물 숲으로 출근한다. 그곳은 효율과 시스템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거대한 비효율의 집합체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는 아래로 내려가며 왜곡되고 현장의 아우성은 위로 올라가다 묵살된다. 결재 라인 하나를 태우기 위해 여러 장의 보고서를 쓰고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말이 바뀌기도 한다.


이 거대한 조직은 살아있는가?


아니, 그것은 그저 거대하게 굳어버린 시멘트 덩어리 같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 숲을 보며 세상의 질서를 다시 배웠다. 브랜든 퀴텀(Brandon Quittem)이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천재적인 비트코인 사상가의 글 <비트코인은 돈의 균사체다(Bitcoin is The Mycelium of Money)>를 통해서다.(역자 주: 균사체는 숲의 토양 아래에서 식물들을 연결하며 영양과 정보를 순환시키는 곰팡이의 거대한 네트워크다.)


그는 비트코인을 차가운 기계나 코드로 보지 않는다. 그는 비트코인을 숲의 바닥, 그 축축한 흙 속에 숨겨진 '균사체(Mycelium)'라 부른다.


처음엔 이게 무슨 낭만적인 비유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의 글을 따라가며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전율을 느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상적인 조직, 이상적인 화폐, 아니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 이미 수억 년 전부터 내 발밑에 깔려 있었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다.




곰팡이가 설계한 도쿄의 지하철


인간의 오만함을 비웃는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다. 2000년 일본의 연구진은 홋카이도 대학에서 기이한 실험을 했다. 도쿄 수도권 지도를 펼쳐놓고 주요 도시가 있는 위치마다 귀리 조각(먹이)을 놓았다. 그리고 도쿄 위치에 황색망사점균(Slime Mold)이라는 곰팡이를 풀었다.


이 곰팡이는 뇌가 없다. 눈도 없고 코도 없다. 그저 세포 덩어리다. 그런데 곰팡이는 먹이를 찾아 균사를 뻗기 시작하더니, 놀라운 행동을 보였다. 처음에는 무작위로 뻗어 나가다가, 시간이 지나자 영양분을 운반하는 데 비효율적인 경로는 스스로 폐쇄하고, 가장 빠르고 튼튼한 경로만 남겨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하루가 지났을 때 곰팡이가 만들어낸 그물망은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인간 공학자들이 수십 년간 머리를 맞대고, 수조 원의 예산을 들여 설계한 '도쿄 지하철 노선도'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다. 심지어 일부 구간은 인간의 설계보다 더 효율적이었다.


이 대목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회사 임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고성을 지르고 컨설팅 업체에 거액을 주며 만들어낸 그 최적화라는 것을 뇌도 없는 곰팡이는 단 하루 만에 해냈다.


어떻게?


이유는 간단하다. 곰팡이에게는 중앙 통제 본부가 없기 때문이다. 명령을 내리는 CEO가 없다. 모든 세포가 각자의 위치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한다. "여기에 먹이가 있다", "여기는 길이 막혔다". 이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네트워크 전체에 공유된다. 그 결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능처럼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탈중앙화된 지성(Decentralized Intelligence)이다.


비트코인이 그렇다. 사람들은 묻는다.


"비트코인은 주인이 없다며? 사장이 없는데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져? 그게 어떻게 돌아가?"


그들은 곰팡이의 지혜를 모른다. 비트코인에는 중앙은행 총재도, 이사회도 없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만 개의 노드와 채굴자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그 이기심들이 연결되자 역사상 그 어떤 은행 서버보다 견고하고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금융 네트워크가 탄생했다.


중앙에서 통제하는 조직은 천천히 녹슬어간다. 비트코인은 통제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았다. 아스팔트 위가 아니라, 흙 밑의 질서다.



당신은 버섯을 보고 숲을 판단한다


투자를 한다는 동료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면 혀를 찬다.


"거봐, 끝났어. 튤립 버블이라니까. 반토막 난 거 봤어? 죽은 거야."


브랜든 퀴텀은 그런 사람들에게 조용히 되묻는다.


"당신은 숲에서 버섯을 딴 뒤에 그 곰팡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산에서 보는 버섯은 곰팡이의 본체가 아니다. 그것은 번식을 위해 잠시 땅 위로 솟아오른 생식기(열매)에 불과하다. 버섯은 화려하지만 며칠 못 가 시들고 썩는다. 땅 밑을 보라. 하얀 실타래처럼 얽힌 균사체는 건재하다. 버섯이 퍼뜨린 포자 덕분에 오히려 더 넓은 영토로 확장해 나간다.


비트코인의 가격? 그것은 땅 위로 솟아오른 버섯이다. 가격이 1억 원을 넘으면 사람들은 열광하고, 가격이 폭락하면 비트코인이 망했다고 소리친다.


그들은 버섯만 본 것이다. 진짜 투자자, 아니 비트코인의 본질을 꿰뚫어 본 사상가들은 땅 밑을 본다.


가격이 폭락하는 하락장에도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해시레이트(채굴 파워)는 최고치를 경신한다. 개발자들은 코드를 업그레이드하고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더 촘촘해진다. 미디어에서 '비트코인은 죽었다'는 부고 기사를 낼 때, 땅 밑의 균사체는 더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구 역사상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6,500만 년 전,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공룡이 멸종하고 숲이 불타올랐을 때, 최후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햇빛 없이도 스스로 유기물을 분해해 먹이를 찾을 수 있었던 균사체였다. 그들은 파괴된 숲을 분해해 거름으로 만들고 다시 생명이 싹 틔울 토양을 만들었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채굴을 금지하고, 거래소가 파산하고, 정부가 규제의 칼을 들이댈 때마다 비트코인은 죽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대멸종의 위기 때마다 비트코인은 더 기괴할 정도로 강해져서 돌아왔다. 나심 탈레브가 말한 '안티프래질(Antifragile, 충격을 받으면 더 강해짐)'은 기계의 속성이 아니다. 바로 이 끈질긴 곰팡이, 생명의 속성이다.



꿀벌을 구하는 쓴 약


브랜든 퀴텀의 에세이 중 나를 가장 숙연하게 만든 대목은 꿀벌과 바이러스 이야기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군집 붕괴 현상(CCD)'이다. 인간이 뿌린 농약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진 꿀벌들에게 '바로아 응애'라는 기생충과 바이러스가 침투했기 때문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 위기가 온다.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곰팡이 학자 폴 스테이메츠(Paul Stamets)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꿀벌들이 본능적으로 썩은 나무에 핀 곰팡이의 즙을 찾아 마시는 것이었다. 연구 결과, 그 곰팡이 추출물은 꿀벌의 바이러스를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천연 백신이었다.


브랜든 퀴텀은 이 자연의 섭리를 우리의 경제에 대입한다. 지금 우리의 경제 생태계는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중앙은행의 무제한 돈 찍기(Fiat Currency)와 부채'라는 기생충이 서민들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 성실하게 일하는 시민들은 아무리 돈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바이러스가 노동의 가치를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꿀을 먼저 가져가고, 나중 된 자들에게는 찌꺼기만 남는다.


이 병든 꿀벌 군집을 치료할 약은 무엇인가?


비트코인이 바로 그 '곰팡이 약'이다.


이 약은 쓰다. 변동성이 심해서 먹기 힘들기 때문에 기존 기득권들은 이 약이 독이라고 선동한다. 하지만 이 약을 먹지 않으면 군집 전체가 붕괴한다. 비트코인은 단순한 디지털 금이나 돈 복사기가 아니다. 이것은 탐욕과 부채로 썩어가는 현대 금융 시스템을 분해하고 정화하러 온 자연이 처방한 백신이다.



돌을 먹는 생명체


직장 생활을 하며 나는 늘 무임승차자들을 본다. 일은 하지 않고 사내 정치로 살아남는 사람들. 그리고 열심히 일한 사람의 성과를 가로채는 시스템. 이런 불공정함에 지칠 때마다 나는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Proof-of-Work)'을 생각한다.


태초의 지구, 육지는 척박한 화산암 덩어리였다. 식물은 뿌리내릴 흙이 없어 육지로 올라오지 못했다. 이때 바위를 녹여 흙으로 만든 것이 균사체였다. 균사체는 바위의 미네랄을 채굴(Mining) 하기 위해 산을 분비했다.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균사체는 그 미네랄을 식물에게 주고, 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든 당분을 균사체에게 줬다. 이 정직한 교환, 공생 덕분에 지구는 초록별이 되었다.


비트코인의 채굴자들은 막대한 전기를 써서 수학 문제를 푼다. 에너지 낭비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브랜든 퀴텀의 시각은 다르다. 균사체가 바위를 녹여 흙을 만들 듯, 비트코인은 버려지는 에너지를 디지털 자산으로 바꾼다고 이야기한다. 아이슬란드의 지열 발전소, 텍사스의 버려지는 천연가스. 쓸모없이 사라지던 에너지가 비트코인 채굴기를 통해 영원히 썩지 않는 장부에 기록된다고 본다.


이 시스템에는 무임승차가 없다. 전기를 쓰지 않으면 비트코인을 얻을 수 없다. 입으로만 떠드는 정치질이 통하지 않는다. 오직 에너지를 투입한 만큼만 보상을 받는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장식품이 된 세상에서 이 무식할 만큼 단순한 규칙은 오히려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약속처럼 보인다.




내일 다시 넥타이를 매고 저 시멘트 건물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이제 나는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버섯에 목매지 않기로 했다. 대신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 단단하게 나만의 뿌리를 내리기로 했다.


스마트폰 화면 속 파란 불?


괜찮다. 숲은 원래 겨울에 더 깊게 뿌리를 내리는 법이니까.


아스팔트 아래, 숲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 참고 문헌: https://brandonquittem.com/bitcoin-is-the-mycelium-of-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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