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무엇이 아닌가
세상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깎여 나가는 것들이 있고 반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것들이 있다. 안티프레질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이를 린디 효과(Lindy Effect)라 불렀다. 빵은 내일이면 딱딱해지지만 성경은 2천 년을 살아남았기에 앞으로 2천 년을 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비트코인이 지난 17년 동안 겪은 일은 단순히 가격 상승이 아니라 시간으로부터 생존을 증명해 온 과정이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코드가 오픈 소스이니 언제든 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안티프래질함은 코드가 아니라 그 탄생의 시점에 있다. 비트코인은 세상이 그것을 돈이라 인식하지 못하던 무지의 시기에 태어났다.
초기 8년 동안 비트코인은 거대 자본이나 국가권력이 비웃을 정도로 작았고 덕분에 중앙집중화 되지 않은 채 야생에서 면역력을 키울 수 있었다.
지금 누군가 비트코인보다 뛰어난 기술로 코인을 만든다 해도 이미 기득권이 된 자본과 규제의 감시망 때문에 비트코인이 가졌던 그 순수한 무질서의 시기를 재현할 수 없다.
비트코인의 안티프래질은 기술이 아니라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역사의 무작위성에서 기인한다.
현대 금융 시스템은 프래질하다.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너무 안전하게 관리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작은 변동성조차 두려워하며 구제금융이라는 진통제를 투여한다. 덕분에 시스템 내부의 독소는 배출되지 못하고 거대한 종양으로 자란다.
비트코인 생태계는 잔인할 정도로 정직하다. 대마불사가 없다. 거래소가 해킹당하면 사용자는 돈을 잃고 채굴자가 효율을 못 내면 파산한다. 이 비극적인 개별적 오류들은 시스템 전체 입장에서 보면 축복이다. 약한 고리가 끊어질 때마다 시스템의 평균 지능은 올라가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참여자의 시체를 거름 삼아 자라는 생태계다. 이 지독한 책임주의가 비트코인을 어떤 금융 기관보다 강건하게 만든다.
흔히 변동성을 불안정이라 부르지만 안티프래질의 관점에서 변동성은 정보의 통신 속도다. 24시간 내내 멈추지 않는 가격 요동은 전 세계의 수요와 공급, 공포와 탐욕을 지연 없이 시스템에 반영한다.
반면 법정 화폐의 안정은 인위적인 조작의 결과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정보를 억누르고 통신을 지연시키며 억지로 평평하게 만든 그래프는 임계점을 넘으면 반드시 폭발한다.
비트코인이 매일 작은 지진(가끔은 억 소리가 나지만)을 겪는 이유는 시스템 붕괴를 야기하는 대지진을 막기 위함이다.
변동성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외부 충격을 빠르게 흡수하여 소화시키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파커 루이스가 강조했듯, 비트코인은 실패할 권리를 가졌기에 안티프래질해졌다. 수많은 하드포크 내전(세그윗 2x 등)을 거치며 비트코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했다.
중요한 것은 비트코인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아닌가'를 증명해 온 과정이라는 점이다. 기업의 지시를 받는 네트워크가 아님을, 특정 국가의 화폐 정책을 따르지 않음을, 그리고 다수가 원한다고 해서 쉽게 변하지 않음을 시간으로 증명했다.
이 거부의 역사들이 쌓여 온 비트코인은 이제 단순한 소프트웨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합의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 자료 : https://www.unchained.com/blog/bitcoin-is-antifrag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