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Gold)은 어떻게 왕이 되었나

#4.

by NT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치열했던 서바이벌 오디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돈의 자격'을 가리는 싸움이었을 것이다.


수천 년 전, 후보는 많았다. 누군가는 소금을 내밀었고, 누군가는 조개껍데기를, 누군가는 비단이나 가축을 돈으로 쓰자고 주장했다.


시간이라는 심판관은 냉혹했다. 소금은 습기에 녹아 사라졌다. 가축은 병들어 죽거나 늙어버렸다. 구리는 녹이 슬었고, 조개껍데기는 너무 쉽게 부서졌다.


시간이 흘러도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낸 후보는 딱 둘뿐이었다.


밤하늘처럼 차갑게 빛나는 은(Silver), 그리고 태양처럼 영원히 타오르는 금(Gold).


오랫동안 두 금속은 세상을 양분했다. 은은 가볍고 쪼개기 쉬워 시장에서 국밥 한 그릇을 사 먹는 '서민의 돈'으로 쓰였고, 금은 희소하고 변하지 않아 왕족들의 창고를 채우는 '저축의 돈'으로 쓰였다.


하지만 19세기, 최후의 결전에서 결국 왕좌에 오른 것은 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은조차도 인간의 기술 발전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채굴 기술이 발달하자 은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공급이 늘어나니 가치는 떨어졌다.


반면 금은 달랐다. 인간이 아무리 기계를 돌리고 산을 깎아내도, 금은 도무지 늘어나질 않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게으른 금속이자 가장 고집 센 물질. 그 '희소성'이 금을 화폐의 왕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정부가 정한 법이 아니라 시장이 선택한 자연의 섭리였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비극적인 '꾀'가 하나 시작된다.


금은 완벽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무거웠다.


수원에서 서울까지 쌀 한 가마니를 사러 가는데, 묵직한 금덩이를 주머니에 넣고 가는 것은 위험하고 번거로운 일이다. 게다가 금은 1원 단위로 쪼개서 쓰기도 힘들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금 보관증'이다. 사람들은 무거운 금을 튼튼한 금고에 맡겼다. 금고 주인은 금을 잘 보관하고 있다는 증거로 종이 한 장을 써주었다.


"이 종이를 가져오면 언제든 금 1온스를 내어 드립니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무겁게 금을 들고 다니느니, 이 가벼운 종이만 주고받아도 거래가 된다는 것을. 종이는 찢어지기 쉽고 불에 타지만, 금고 속에 '진짜 금'이 있다면 상관없었다. 이것이 바로 금본위제(Gold Standard)의 시작이자, 지폐의 탄생 실화다.


편리함은 마약 같았다. 사람들은 점점 금고를 확인하지 않았다. 주머니 속의 가벼운 종이가 주는 편리함에 취해, 그 종이의 가치를 보증해 주던 진짜 주인, 금의 존재를 잊어갔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분리였다. '가치(금)'와 '상징(종이)'이 분리되는 순간, 그 틈새로 악마가 들어왔다. 금고 주인(은행과 정부)들은 음흉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금을 찾으러 오지 않네? 그렇다면 금고에 금이 100개밖에 없어도, 보관증을 200장, 300장 써줘도 모르는 거 아냐?"


그렇게 '부분지급준비제도'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금이 종이 위에서만 복제되어 세상에 풀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부자가 되었다고 착각했다. 사실은 물 탄 주스를 마시고 있는 꼴인데 말이다.


금은 스스로 왕이 되었지만 인간은 그 왕을 감옥에 가두고 가짜 왕을 세웠다. 그리고 1971년, 마침내 인간은 감옥 문을 영원히 잠그고 "이제부터 이 종이가 진짜 왕이다!"라고 선포해 버린 것이다.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기 싫어서 가벼운 거짓을 선택헀다. 주머니 속의 지폐가 왜 자꾸만 가벼워지는지, 왜 월급을 받아도 삶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는지.


어쩌면 그 답은 우리가 금고 속에 버려두고 온 그 묵직한 진실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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