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97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1971년 금이라는 닻을 잃고 표류하던 미국 달러는 이곳에서 새로운 숙주를 찾아냈다.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사우디 왕가와 은밀하고 거대한 계약을 맺는다. 내용은 간단했다.
"미국은 사우디 왕가를 군사적으로 영원히 지켜주겠다. 대신 사우디는 전 세계에 석유를 팔 때 오직 '달러'로만 결제하게 하라."
이것이 바로 '페트로달러(Petrodollar)' 시스템의 시작이다.
금(Gold) 대신 석유(Oil)가 달러의 가치를 보증하게 된 것이다.
모든 국가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즉, 석유를 사려면 반드시 달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 세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달러를 비축해야 했고, 달러는 종이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기축통화로 군림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미국의 특권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종이만 찍어내면 전 세계의 자원을 헐값에 가져올 수 있으니까.
린 알든은 지도를 펼쳐놓고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심장부, 디트로이트와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공장들은 폐허가 되었는가?"
여기서 경제학의 소름 끼치는 역설, '기축통화의 저주'가 등장한다. 다른 말로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고도 한다.
매커니즘은 이렇다. 전 세계가 석유를 사기 위해 달러를 원한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365일 폭발한다. 그러면 달러 가치는 인위적으로 계속 비싸진다(강달러).
달러가 비싸지면 어떻게 될까?
미국 안에서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려는 공장들은 죽어난다. 미국산 자동차나 철강이 외국 입장에서 너무 비싸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비싼 달러로 값싼 외국 물건을 수입해 쓰는 게 훨씬 이득이다.
결국 미국은 '물건을 만드는 공장'을 포기하고, '돈을 찍어내는 금융'을 선택했다.
미국의 제조업은 붕괴했고, 중산층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그 빈자리는 월스트리트의 투기꾼들과 거대 IT 기업들이 채웠다.
우리는 흔히 미국이 세계를 착취한다고 생각하지만, 린 알든의 통찰에 따르면 미국은 자신의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민의 '노동과 생산 기반'을 제물로 바친 셈이다.
미국은 이제 전 세계에 '빚(국채)'을 수출하고, 전 세계의 '물건'을 수입해서 먹고산다. 미국은 뚱뚱한 소비자가 되었고, 중국과 한국은 그를 먹여 살리는 억척스러운 생산자가 되었다.
이 시스템은 지난 50년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 그 거대한 톱니바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러시아가 가진 3천억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동결시켰다. 버튼 하나로 한 국가의 국고를 '0'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에 충격적인 시그널을 주었다.
"아, 달러는 중립적인 돈이 아니구나. 미국 심기를 거스르면 내 돈도 언제든 휴지 조각이 될 수 있구나."
검열 가능한 돈의 공포를 느낀 나라들은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석유를 위안화로 결제하려 하고, 브릭스(BRICS) 국가들은 달러 없는 무역을 모의한다. 사우디조차 이제 미국 눈치를 보지 않고 위안화를 받겠다고 한다.
페트로달러라는 낡은 엔진은 이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도 "더 이상 세계의 경찰 노릇(달러 패권)을 하느라 우리 공장을 다 죽일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이 견고한 달러 시스템이 만약 무너진다면?
그때는 단순히 환율이 오르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난 50년간 전 세계를 지탱해 온 '신용(Credit) 기반의 화폐 질서'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달러가 사실은 가장 위험한 뇌관일지도 모른다.
공장은 텅 비었고, 빚은 산처럼 쌓였으며, 세계는 각자도생을 준비하고 있다.
이 혼란의 시기에 과연 무엇이 진짜 돈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어쩌면 답은, 그동안 우리가 '돌멩이'라고 무시했던, 혹은 가짜라고 비웃었던 그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