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듯 될 듯 안되네, 2:2 무승부
연말 MBC 연예대상을 휩쓸었던 <신인감독 김연경>이 한창 방영되었을 때, 나는 매주 일요일 저녁 생방송을 사수했다. 배구를 하나도 몰랐지만 김연경이라는 스타플레이어가 감독으로서 팀을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말은 표승주 선수가 ‘배구는 재밌다고 생각하면 항상 힘들게 만들더라’고 하자 김연경 감독이 ‘배구가 밀당을 하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무슨 배구가 밀당을 하냐, 사람도 아닌데. 스포츠가 나랑 왜 밀당을 해?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는, 운동은, 나랑 밀당을 한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축구도, 당연히 나랑 밀당을 했다.
부상 후 복귀(!)한 첫 경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골키퍼에 섰다. (아마도 키가 크고, 반사신경이 있고, 공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맡긴듯하다) 우리는 초반 선제골로 먼저 1:0으로 앞서갔으나 곧바로 따라 잡혔고, 다시 주장의 추가골로 2:1로 경기를 마무리하나 했으나, 상대팀의 집념의 골로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건조하게 서술했지만, 사실 경기가 끝난 직후에는 ‘나 때문에 우리 팀이 1승을 놓쳤다’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1:0으로 잘 리드하고 있었는데!! 상대팀 공격수와 부딪쳐 얼굴을 맞아도 골문을 잘 막아서고 있었는데!!! 골 대 앞에서 상대팀의 절묘한 패스로 한 골 먹히는 상황을 만들었던 거다. (골키퍼로 몇 번 서본 결과 한 골 먹힌 직후가 상대팀의 기세가 가장 오르는 순간이고, 그때 가장 많이 흔들리기 때문에 추가득점을 막기 위해서 재빠른 회복이 필요하다. 반대로 이용하자면 한 골 넣은 직후가 우리 팀의 기세가 가장 오르는 순간이고, 그때를 이용하면 연달아 2골을 넣을 수도 있는 거다. 이렇게 한 끗 차이다) 하지만 아직 경기 시간은 남았고, 주장이 나에게 다가와 ‘(이건) 저 팀이 잘한 거야’라며 우리가 못했다는 점보다 저 팀이 잘했다는 지점으로 관점을 옮겨주었다. 응, 맞아. 쟤네가 잘한 거 인정해. 그러면 뭐, 우리가 더 잘 해내면 되잖아. 그 뒤 그녀는 보란 듯이 역전골을 넣었다. 나는 골대를 버리고 뛰쳐나가 마음껏 기뻐했다. 얼마나 환호를 했던가!
오늘은 진짜 1승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이야말로 진짜 한 번의 승리가 우리한테 오나 봐,라고 너무 미리 1승을 예상해 버린 탓일까. 종료 직전 상대팀의 불굴의 의지로 넣어버린 동점골에 나는 좌절했다. 결국 1승은 오지 않았다.
무승부 경기를 치른 후, 상반기 마지막 경기에는 우리 팀의 역대 경기 참여 인원 중 최대 인원(14명)이 모였다. 경기 시작 전 주장이 우리에게 ‘1승’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나눠주었다. 우리는 각자 손등, 이마, 팔뚝에 스티커를 붙이고 오늘의 ‘1승’을 다짐했다.
반드시. 분명히. 꼭. 명확하게. 1승을 얻고 싶었다.
그전까지는 전담 코치님이 없어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경기를 진행해야 했지만, 이번 경기 1주일 전 블랙팀에도 전담코치님이 오셨다. 우리에게 드디어 1승의 기회가 눈앞에서 반짝거렸고,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듯한 기회였다. 하지만 그날의 경기도 0:1로 패배했다.
부상을 회복하고, 그 기간 동안 나름대로 개인훈련도 하며 사기충만하게 필드로 돌아왔는데. 왜 의욕과는 다르게 경기의 성적이 안 나오는 걸까. 앞서 언급한 표승주 선수와 김연경 감독의 대화에서 김연경 감독이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좀 괜찮아진 것 같고, 몸이 올라온 것 같으면 항상 시련을 주잖아.”
나에게 밀당도하고, 시련도주고, 게다가 눈물까지 흘리게 만드는 축구. 너... 대체 뭘까. 모르긴 몰라도 하나 확실한 것은 있다. 나는 축구에 확실히 빠져버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