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엄마인 나도 1학년이 되었다. 봄날의 싱그러움처럼 설렘이 가득했다. 엄마 마음에 1학년은 ‘학교가 즐거운 곳이다.’ 생각하면 가장 큰 수확이라 여겼다. 아이는 학교에 가는걸 즐거워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배움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가 입학을 하고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매일 보는 받아쓰기, 수학 오답노트, 횟수를 채우지 못하면 늘어나는 일기 쓰기와 독서록 쓰기, 빨간 볼펜으로 교정된 아이 일기장. 아이는 배움이 즐거움이 아닌 비교 의식이 되어, 하교 후 책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애썼다. 생각지 못 한 상황에 놓인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이에게 부지런히 공부하는 태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공부를 고생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공부의 목적이 아니다. 어른인 나도 모든 상황을 의지로 대처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 비교와 평가로 가르치는 것은 지나치다 여겼다.
씁쓰름한 과정을 주고, 달콤한 결과를 위한 것이라고 인내를 강요하는 꼴이다.
모든 아이는 공부를 잘해서 부모나 선생님을 만족시키고 칭찬을 듣고 싶어 한다. 그리고 누구나 발전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고생은 인내를 강요받는다고 해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공부가 고통스러운 것이라 생각이 든다면 아이는 공부를 주저하게 된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책가방을 맨 채로 현관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공부가 좋고 배움이 좋아 학교에 가기를 기다리고 설레 하던 아이는 공부도 싫고, 학교도 싫다고 말했다. 아이는 소리 내 울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아이는 학교 이야기에 침묵했다.
오늘을 닮은 너라는 아이
어떤 일을 잘하게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어떤 일이 좋아져야 한다. 공부는 상을 주기 위한 수단도 벌도 아니다. 아이는 학교를 거부했고, 우리는 대안을 찾기로 했다.
홈스쿨로 자녀를 양육하신 분들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주변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겨울방학과 가정 체험학습 기간을 더해 3달간 홈스쿨을 경험해 보기로 했다.
홈스쿨만이 정답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홈스쿨을 선택했다.
우리가 선택을 하기까지 기다려준 아이에게 고마웠다.
아이가 바라보는 오늘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믿는다. 우리가 지켜준 오늘이 차곡차곡 아이의 미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