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gold 와 crack

사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_이병률 시집 前

by 오늘이


금 gold


'우리'를 금처럼 소중히 다뤘다.

벌리고 싶지도 않았고,

쪼개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가 수중에 들어왔으니

안절부절못하고 말도 못 하고

쓸쓸히, 찬 바람에 눈 시려

못 이겨 흘리는 눈물처럼,

울 일이 더 많아졌다.


어쩌면 금이라고 생각했던 건

변형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반영된 거란 생각이

서서히 내 몸속을 파고들었다.



금 crack


아끼고 아끼던 관계는

단단한 금(gold)이 아니었다

금(crack)이 갔다.


빠른 속도로 깊숙이 아래까지 내려갔다.

날카롭게 후벼 팠다.

자 대고 그은 듯 반듯한 선이 아니라

제멋대로 휘두른 칼에 여기저기 상처가 났다.


그렇게 힘겹게 마주한 나의 바닥에서 보니

내가 애지중지 간직하려 했던 덩어리는

골드가 아닌 그저 크랙 심한 돌멩이였다.






내 글만 올리기엔 너무 딸랑이거 라서,

그간 읽은 이병률 시인의 시집 독후 기록을 긁었다.

사실 저 위에 글은, 한창 사랑할 때,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냐는 물음에

내게 반문을 불러일으킬만한 사랑을 할 때 남겼던 일기다.


지금 와서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결국 마지막에 저 금을 '그저 크랙 심한 돌멩이'라고 표현한 거에 대한

죄책감과 어리석었음에 대한 반성과,

누군가를 사랑한 적 이라는 질문에 다시 답하기 위함이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라는 시집의 출판사 문학과지성사가 남긴 서평 중에선, 이런 문장이 남아있다.


"다시금 사랑이 허물어지는 순간에도 찰나의 아름다움을 안간힘으로 붙드는 사람, 시인 이병률이 써내려간 사랑의 기록"

왠지 저 시절의 그와 나는 저렇게 서로 '우리'의 우리를

허물어졌다 붙들었다 했던 거 같아서.

이 시인의 말이 나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생각하고 있을 때쯤,


다음으로 읽었던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에서 '사람의 금'이라는 시를 자만추 했던 거다.

시인에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불쏘시개로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공감을 바라며, 시의 일부를 소개해본다.


태풍에 담이 허물어지면 남의 집 담만 보이고
술에 되게 당한 어느 날 이후에는
술에 취해 길에 앉아 정신 놓은 사람만 보인다
자석 앞의 쇳가루처럼 당겨진다

꿰맨 손가락이 낫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매달리며 살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봉합으로 살을 이으려는 것이
쩍하고 금이 가 벌어진 사람과 사람의 처지를
이어보려는 안간힘하고 뭐가 다르겠나 싶은 것이다

붙지 않는 것들을 참 착실하게도 가려놓고 살고 있다

이병률 _<사람의 금> 부분
시집《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안간힘.

붙지 않는 것을

"참 착실하게도" 가려놓고 산 거였다고. 말하는 저 문장이

우리의 시간을 조각냈었다.

합쳐질 수 없는 퍼즐 조각 같은 조각들이었지만

그 기억의 영상이 재생 불가하도록 금이 가게 만들었다.



그렇게 금이 갔던 조각들을,

저 금을 썼던 시간보다도 훌쩍 지나,

저 시집을 읽었던 시간도 훌쩍 지나

지금


다시 긁어보고 있다.

금은 손상 되지 않는다길래.





우선, 이 시집의 표지 색깔이 왜 노란색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왜일까. 이리도 발칙하게 만나자고 하는 이별과 발랄한 노란색의 만남이라니.

그저 단순하게 슬픔이 꼭 우중충한 것만은 아니다며 편견을 깨기 위한 조합인지,

노란색 중에서도 왜 하필 이렇게 밝은 노란색인 건지. 그렇다고 그닥 따뜻해 보이는 노란색도 아닌 주제에.


시인에게 제목을 어떻게 지었냐고 묻는 인터뷰에서

"제가 갖고 있는 슬픔은 굉장히 단단하거든요.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난 무엇.
저는 슬픔의 힘으로 굉장히 건강하고 단단히 살고 있다는 기분
'슬픔'이란 단어가 제목에 옴으로써 시인의 내면으로 비춰질까봐 '이별'로 바꿨다. '이별'이라는 말로 대체되었을 때 다른 묘한 울림을 갖지 않나"

라고 답했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정말 딱 바다 같다.

때로는 귀여울 정도로 얕아서, 발장구 치고 노는 어린아이 같다가도, 때론 또 우리가 해수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깊어서 오히려 우리가 둥둥 떠다니도록 가만히 있어보다가도, 또 때론 한없이 어둡고 깊어 우리를 푹 잠가버리고 조들조들 절여버리다가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버리기도 하니까.


그래서 내게 이병률 시인은 '슬픔' -> '바다' ->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의 시집 표지의 파란색까지 삼단의 물결이 되었다.


이야기로 삼기 진부하다면 진부하고 무궁하다면 무궁한 슬픔의 감정을

눈을 녹이는 눈물처럼 미지근하게 표현해 낸 시들이 나의 모든 목을 잡는다. 이목, 손목, 발목.

이제 제 몫은 제 슬픔을 이 시집에 녹여내는 것.

역시나 시를 읽으면 내 이야기가 태어난다.

새어 나오는 눈물을 잠그고, 빙하에 매달려볼 거다.





내가 시인의 시집을 왜 좋아하는지 더 눈에 보이는 시들만 더 모아봤다.


심장이 닫히는 자바라 같아서, 타타타탓 저며오고.

쉽게 썼다더니 그 감정이 곧이곧대로 내게 도착한 것인지, 벅차고 숨통이 조여 온다


[1]

옷을 걸어두라고 벽에 쳐둔 못을 생각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겠는 것들을 그 못에 걸기도 하겠지만


뭐라도 알겠다고 온갖 열기를 쓰다가도

못에 걸린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보이지 않는 안간힘의 상태를 더 이상은 궁금해하지 않기로 한다

<달에 갈 때는 인생을 데리고 가지 말자> 중 _ 시집《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2]

아, 희미한 삶의 냄새

이 삶은 달걀을 어디에 칠까요

무엇에 부딪혀 삶을 깨뜨릴까요

<아무도 모르게> 中_ 시집《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3]

왜 눈이 온다,라고 하는가

비가 온다,라고 하는가

(중략)

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면서 심장에 쌓인 눈을 녹이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에 등불을 켠다

<눈물이 온다> 中


[4]

제주 바닷가에서 문어(文魚)의 문장(文章)을 잡는 법이다

소풍을 나온 문어는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

철사 끝 뾰족한 부분부터 먹어들어간다

고기를 한껏 입에 넣은 뒤에는 몸을 돌이킬 수 없으니

철사까지 온몸 한가득 채운 채 다음 국면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나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나 매한가지이기도 하거니와

철썩철썩 파도가 등짝을 쳐대도 돌아볼 수 없으며

뒤꿈치를 들고서라도 정면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뱃속에 넣은 것은 혼돈의 철사 다발

몸의 색을 아무리 바꾼다 해도

그 마지막을 다 적을 수는 없어서


먹물을 철철 흘려 마지막으로 쓰더라도

한 번도 단단해보지 못한 삶으로는

단단한 문장을 완성하지는 못해서


물컹해진 스스로를 휘감은 여덟 개 붓은 서서히

가만히 이번 생의 힘을 뺀다

<제주 바다 문어> 부분 _ 시집《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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