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련梦練: 덧없음의 오류

삶: <달러구트 꿈백화점> _ 이미예 장편소설 后

by 오늘이

묘상한 꿈을 꾼 날이면 어김없이 이미예 작가님의 소설 <달러구트 꿈백화점>이 떠오릅니다.

내용 외에도 독서의 매력을 알게 해 준 거의 첫 책과 다름없어 애정이 많은 작품입니다.


달러구트 꿈백화점 - 이미예



왜 인생의 3분의 1을 잠자며 보내도록 설계되었는지.


요즘 건강프로그램을 보면 '잠'에 대한 건강지식 설명이 연달아 나오더라고요.

잠의 중요성이 어떤 영양제 보다도 다시 강조되고 있었습니다.

"잠을 못 자면 죽는다."
참으로 극단적인 설명.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몸에서는 참 재밌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나 봅니다.

잠의 효능에 대해 검색해 보니 신기한 사실도 많네요.

1. 뇌 속의 노폐물 제거

수면, 특히 비REM의 느린 파동 수면 동안 노르에피네프린 분비가 감소하면서 뇌세포 간 공간이 확장되고, 그 결과 뇌척수액의 순환이 촉진되어 베타아밀로이드를 포함한 대사 노폐물 제거 효율이 증가합니다.

2. 경험 및 감정 등의 외부 정보 정리(뇌신경 휴식설)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서 정말 귀엽게 묘사된 장면이 있습니다. 유미가 잠들면 꿈 극장에서 심야 상영을 해요. 상영이 끝나고, 모든 세포들까지 잠에 들면, 그제야 일을 시작하는 세포가 있어요. "게시판 세포"

각각 세포들이 하루 중에 남긴 메모지들을 정리하며, 지워도 될 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기억해야 하는 것들만 남기고, 가장 중요한 정보는 최상단에 배치하는 일을 해요.

우리가 잠을 잘 때, 일상에서 겪은 일 중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분류하여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키거나 지워버리는 과정이 일어난다 합니다. 한숨 푹 자고 나면 마음이 진정되고 감정이 추슬러지기도 하는 것처럼, 잠을 자는 동안 괴로운 기억들이 일부 잊히고 마음이 정리되기도 하죠.


3. 신체의 회복 및 고통 완화


특정 상황에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는 역할

4. 꿈을 통한 욕구 해소의 장, 명상 및 시뮬레이션

꿈은 우리가 원한 것, 우리가 상상했던 것, 걱정했던 것들이 꿈에 그대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달러구트 꿈백화점> 독후감



달러구트를 읽으며 1/3이나 차지한다면. 그 또한 내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곧이어 장자의 나비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과연 꿈속의 일을 꿈이었네 라고 안 넘겨도 될지.

꿈속의 감정경험도 내 인생경험으로 인정해도 되는지.


얼마 전, 배꼽 잡고 깔깔 웃는 꿈을 꾸고, 그대로 키득거리며 깨어났습니다.
요 며칠 꿈에 뒤척거리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는 친구들과 재밌게 얘기를 나누던 꿈을 꾸었고,
하루는 불쾌하게도 일면식도 없는 어떤 아주머니와 싸움 붙은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때론 현실이 반영되는 꿈도 꾸고. 때론 악몽을 꾸기도 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꿈에서 참 새로운 저를 만났습니다.

현실의 저는 가식의 노잼 범생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눈치를 보며' 수업을 듣는, 공부하는 척하는 치장된 모범생이었고요. 꿈속의 저는 친구에게 깐족거리며 장난치고. 그걸 또 친구도 장난으로 받아치고. 그렇게 선생님을 농락하는. 예의는 갖다 버린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친구랑 장난치느라 배를 잡고 깔깔대고 웃었던 거고요.


꿈에서 깼는데, 희열이 온몸에 전율을 만들고.

한참을 그렇게 웃어재꼈습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했죠. 와. 내 심저 깊은 곳에 묻어둔, 내가 하고 싶던 걸 해낸 기분이다.

마치 사람 많은 출렁다리에서 쿵쿵 뛰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던 것처럼.

인생에 남겨둔 미련 같은 걸 떨쳐낸 듯한. 그런 비밀스러운 욕구를 해치운 듯한 후련함이었습니다.


후련함을 느낄 땐 꿈속의 나도 나라고. 1/3이나 차지하니 그것 또한 내 인생이라고. 어쩌면 그렇게 하나 미션 컴플리트 한 셈 쳐도 되겠네, 직접 안 했지만 그 느낌을 실제보다 더 실감 나게 느꼈으니 더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얼마나 즐거웠게요.

그리고 곧바로 뭔가 모를 양심의 가책. 죄책감. 부끄러움. 민망함. 뭐 그런 것들이 밀려오더라고요.

꿈에 불과하는데도 말이죠. 다시 꿈과 현실의 거리를 자각했습니다.

왜 장자는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꾼 건지'까지 이어서 생각을 했던 건가.


그러다가
탁 실이 끊어졌습니다.



작년 한 해는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순간마다 특히 '덧없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거 같은데,

그동안 호접지몽 = 인생의 덧없음. 이란 의미를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이후로 어떠한 첨가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워딩에 불과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아니 왜 인생의 "덧없음"이라고 가르쳤을까

왜 "덧없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昔者莊周夢爲蝴蝶,栩栩然蝴蝶也,自喩適志與!不知周也。

俄然覺,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蝴蝶與,蝴蝶之夢爲周與?周與蝴蝶,則必有分矣。此之謂物化。

예전에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나비가 진실로 기뻐 제 뜻에 맞았더라! (그래서 자신이) 장자임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깨고 보니, 곧 놀랍게도 장자였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가? 장자와 나비 사이에는, 틀림없이 구분이 있는 것인데. 이를 일컬어 '물(物)이 되었다'고 한다.

장자』 내편 〈제물론 齊物論〉_




인생무상.

"인생에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이 왜 덧없다까지 해석이 연결된 건지.



그렇다면 그동안 어른들이 책에서 노래에서 대화에서 말했던,

인생의 부질없음은 대체 무슨 의미를 품고 있는 건지. 정말 인생이 덧없는 건지.

본인들은 굴곡지더라도 누구보다 알찬 인생을 채워놓고 괜히 분위기 있게 한 줄로 표현하며 '덧없음'이라는 단어를 쓴 건 아닌지.. 의문이 다시 피어올랐습니다.


내가 척하느라 잘못 배운 이 덧없음의 의미를 다시 파헤쳐가려 합니다.


어쩌면 고등학생 때부터 한켠에 품어왔던, 끊이지 않고 자꾸 만났던 이 단어를

날려 보냈습니다.


꿈속의 나가 진짜 나는 아닐지라도,

진짜 나의 미련을 꽃피워준다 한들 그저 꿈에 불과할지라도.


인생은 덧없지 않습니다.

다만 고정과 집착이 덧없음을.

다시 이해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새로운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