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더 잘 살기 위해, 문제행동을 개선하기 위해, 문제행동을 예방하기 위해 보호자는 많은 정보를 찾아보곤 해요.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반려견의 습성을 배려해야 한다는 정보부터 시작해 반려견의 문제행동이 보호자의 생활로 인해 생겨난다는 정보, 문제행동이 보호자의 애정 때문에 생기는 거란 정보까지 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정보를 찾아보는 보호자님이라면 '반려견에게 규칙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메시지 또한 접하셨을 거예요. 저 또한 여러 글을 통해서 반려견에게 규칙을 알려주는 것이 존중에 있어 중요함을 언급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 [규칙], 사실 얼핏 들으면 난해해요. 반려견에게 규칙을 알려주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할 테고요.
반려견은 경험적인 학습을 통해 세상의 많은 것들을 이해해요. 어떤 상황을 경험했을 때 자기가 얻은 결과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거예요. "내가 엉덩이를 땅에 붙여 앉으면 간식을 주는 거구나!"를 배우는 것도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며 학습해 내는 것이고, 크게 본다면 '앉아와 보상제공'의 연결 또한 [규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반복적인 경험 학습=규칙]이라는 공식만 이해한다면 사실 [규칙]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반려견에게 규칙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반려견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도록 돕기 위함이에요. 반려견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게 된다는 건 반려견의 삶의 질이 높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이에요. 그 예상이 부정적인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지요. 이 규칙은 반려견의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보호자의 생활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효과까지 낼 수 있어요. 반려견과 보호자, 서로가 서로의 스트레스 요인이 되지 않게 되는 이상적인 구조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항상 보호자에게 간식을 달라고 요구하며 짖고 점프하는 반려견은 요구성행동으로 인해 강한 흥분감에 휩싸여요. 반려견의 요구성행동을 접하는 보호자는 반려견의 막무가내 행동에 스트레스받으며 빨리 그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간식을 주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반려견은 자신의 의도대로 보호자가 간식을 주게 만들었다는 삶의 질 향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학습을 하게 되고, 보호자는 요구성행동을 하는 반려견을 말리기 위해 간식을 준 것에 자책해요. 자책은 도돌이표로, 매일 반복되어 반려생활의 질을 좀 먹지요. 이러한 구조는 반려견과 보호자, 서로가 서로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해 건강한 관계형성과 평화로운 반려생활을 실현해 내기 어렵게 만들어요. [규칙]은 이를 예방하거나 해결하여서 반려견과 보호자 모두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학습이 될 수 있지요. 규칙은 존중을 위해 꼭 이루어내야 할 조건 중 하나인 셈이에요.
보호자는 반려견과의 혼자만의 규칙을 만들어내 연습하지 않고도 실천해 낼 수 있어요. 흔히 '반려견에게 화내지 않기'라거나 '산책을 할 때 줄 당기지 않기'같은 규칙이 있지요. 그런데 반려견은 보호자와는 달라요. 앞서 강조했듯 반려견은 경험을 통해서만 규칙을 잘 익히고 실천할 수 있어요. 반려견은 사람과의 규칙을 스스로 깨닫고 실천할 수 없는 동물이에요. 그런 반려견이 규칙을 잘 익히고 실천하게 돕기 위해서 보호자는 반려견을 가르쳐주어야 해요. 나만 아는 규칙을 혼내며 강요하는 게 아니라 반복경험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반려견에게 우리 사이의 규칙을 설명해 주는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이 규칙은 반려견 혼자서만 지킬 수 없고 보호자 혼자서만 지킬 수 없어요. 반려견과 보호자 사이의 규칙은 오로지 둘 모두 지킬 수 있는 상태일 때에만 그 의미가 부여될 수 있고 실생활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요.
반려생활의 규칙은 다양해요. 규칙은 여러 요인에 따라 각 가정마다 디테일이 달라지거나 아예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반려견의 성향이 어떻든, 어떤 환경이든, 보호자가 어떤 걸 원하든 세상 모든 반려가정에게 동일하게 권장되는 주요 규칙들이 몇 가지 있어요.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하우스 규칙'이에요. 많은 보호자님들이 켄넬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켄넬을 이용한 반려견과의 하우스 규칙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어떤 교육 성향을 가진 기관이나 전문가든 필요성을 강조하고 꼭 갖추기를 권장해요.
하우스 규칙을 반려견과의 생활에서 적용하게 된다면 반려견과 보호자 사이의 안정감을 갖출 수 있게 돼요. 반려견이 켄넬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쳐 켄넬에 들어가는 걸 편안해하도록 돕고, 그 뒤 켄넬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연습을 통해 늘려줘요. 이후 '하우스'나 '들어가'라는 음성에 반려견이 켄넬에 마음 편히 들어가도록 교육한다면 규칙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완료된 셈이지요. '하우스'라는 신호에 반려견이 켄넬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해지면 그것만으로도 반려견이 요구성 행동이나 경계성 행동에 의해 과흥분할 때 하우스를 통해 반려견이 흥분을 스스로 조절하도록 응용할 수 있어요. 이런 하우스라는 공간에 대한 경험이 쌓일수록 반려견은 어디서든 켄넬 안에만 있다면 안정되는 반려견이 되기도 하지요. 하우스 규칙은 다방면의 응용이 가능한 규칙이기 때문에 반려견이 보호자의 식사에 훼방을 놓은 적이 있거나 차량 이용 시 멀미나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 켄넬에 하우스 하는 규칙을 이용해 각 상황을 대처한다면 반려견은 어렵지 않게 새로운 상황에서의 규칙을 배울 수 있어요. 보호자가 식사를 할 때에는 켄넬에 들어가 있는 거라는 규칙, 차량 이동시에는 켄넬에 들어가 휴식하는 거라는 규칙이 만들어지는 거지요. 하우스 규칙 외에도 산책할 때 줄이 느슨한 상태로 걷는 산책규칙 만들기, 반려견의 놀이성향에 맞게 놀이규칙 만들기, 끼니 먹기 전 정해진 장소에서 기다리는 식사규칙 등을 필수적으로 갖추기를 권장하지요.
이런 규칙에서 중요한 점은 규칙이 강요가 아니라 반려견에게도 이득이 되고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가 되도록 꾸준한 연습해야 한다는 거예요. 보호자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반려견이 켄넬에 들어가 있는 규칙을 이해하고 해내게 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보호자가 식탁에서 하우스 신호를 해도 반려견이 이를 이해하도록 연습하고, 점점 하우스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림과 동시에 보상을 주는 간격을 넓혀준다면 반려견은 더 적은 보상 횟수로, 더 오래 하우스에 머무를 수 있게 될 거예요. 연습이 이루어진 후 실제 식사에 적용한다면 반려견은 식탁 위 음식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지는 보상에 집중해서 규칙을 체득한 반려견이 되지요.
이렇듯 반려견과 보호자 사이의 규칙은 교육이 필요해요. 규칙이라고 쓰고 교육이라고 읽는 셈이에요. 간식을 이용하고, 장난감을 이용하고, 안정감이나 산책을 이용하는 등 반려견이 좋아하는 것을 적극 활용하여 나와 반려견의 삶에 필요한 규칙을 교육을 통해 이루어내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규칙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어요. 그건 바로 '일관성'이에요.
[규칙]의 또 다른 말은 [일관성 있게 대하기]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네 이웃, 지인의 반려견들 중에는 특별히 교육을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은데도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이는 반려견이 있어요. 그 집 반려견은 유독 말을 잘 듣고 흥분이 덜 하고,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요. 이런 가정의 보호자는 대개 반려견을 일관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겸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교육적인 정보, 요령 없이도 그저 일관성 있게 반려견을 대한 것만으로 생활이 자연스럽게 규칙화되어 버린 거예요. 반려견은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학습하는 동물인 만큼 특정 행동했을 때 그 결과가 항상 똑같으면 자연스럽게 규칙화하기도 해요. 반면 일관되지 않으면 보호자가 아무리 교육적인 공부를 하고 요령을 갖추어 반려견에게 규칙을 알려줘도 반려견은 혼란만 겪을 뿐 규칙을 익히지 못하게 돼요. 보호자의 식사 시간에 반려견이 켄넬에 하우스 하는 규칙을 만들고자 할 때 만약 반려견이 켄넬에 가있어도 보호자가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면 반려견은 켄넬에 하우스 해야 할 동기가 약하니 그 규칙은 더 이상 규칙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될 거예요. 이게 바로 반려견과 보호자 사이의 규칙은 둘 모두 지킬 수 있는 상태일 때에만 규칙으로써 기능한다고 이야기한 이유지요. 반려견이 규칙을 익혀 나와 잘 살길 바란다면 보호자는 반려견이 그 규칙을 잘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꾸준히 '일관성 있게' 반려견을 대하며 보상해주어야 해요. 규칙은 곧 일관성 있는 교육인 셈이지요.
규칙에 맞게 반려견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반려견 교육에 관한 지식과 요령, 그리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필요로 해요. 반려견 교육기관에서 흔히 제공되는 일명 '매너교육'과 같은 교육 서비스는 보호자와 반려견 간의 규칙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 볼 수 있고, 이 매너교육을 위해 반려견을 일주일에서 한 달가량 위탁교육을 보내거나 보호자와 함께 동반하여 교육하는 서비스를 받아요. 규칙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우친 보호자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서라도 나와 우리 반려견의 일상에 각종 규칙을 도입하려 움직이고 있는 거지요.
반려견과의 규칙을 이야기할 때 [훈육]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예요. 반려견과의 규칙을 설명하고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면 종종 훈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보호자님들이 계세요. "맞아요. 저는 우리 반려견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혼내요."
반려견과 보호자 사이의 규칙에서 훈육은 어떤 기능을 하게 될까요?
반려견이 이득을 취하는 결과를 일관성 있게 경험하면 반려견은 이득이 취해지는 상황이나 장소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지고 이를 체득해요. 훈육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일관성 있게 부정적인 경험이 취해지는 상황이나 장소'를 경험하게 되면 반려견은 그 상황이나 장소, 보호자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훈육으로 인한 부정적 감각을 체득해요.
이 훈육은 대개 일관성 있게 간식을 제공하는 교육과 병행되면 반려견이 더 빠르게 규칙을 익히게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훈육을 반려견과의 생활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신중할 필요가 있어요.
반려견과 보호자 사이의 규칙에서 훈육은 필수적인 요소인가에 대한 답은 반려견 양육 가치관에 따라 달라져요. 규칙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할 때 반려견을 혼내고, 규칙에 맞는 행동을 하면 반려견에게 보상을 병행해 규칙을 만드는 것은 분명 효과적일 수 있어요. 특히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다양한 변수에 유연히 대처할 능력이 없는 보호자님들에게 이 훈육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지요. 그러나 이는 자칫 과도한 훈육 찬양으로 이어질 수 있고, 훈육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훈육을 적용하는 잘못된 교육관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하기가 참 민감한 주제로 여겨지기도 해요.
우리 반려견들은 좋은 식습관을 갖추고 있을 때 왕성한 식욕을 가지게 되고, 왕성한 식욕은 반려견들에게 강력한 동기가 돼요. 보호자가 급여하는 간식, 즉 먹을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느낌으로써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고, 그 고민을 활발히 하게 만들어 반려견 교육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이 과정은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개라는 동물의 학습능력과 강화물을 활용한 학습원리는, '반려견은 식습관 관리가 잘 되고 활동량을 보장하며, 반려견이 이해할 수 있게 교육을 충분히 반복하기만 하면 훈육 없이 원하는 바를 학습시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요. 즉, 사람의 언어를 반려견에게 가르친다거나 반려견에게 컴퓨터 코딩을 하게 하는 상식 밖의 일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면 반려견은 훈육 없이도 보상을 통한 학습만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음이 드러나있다는 거지요. 목표가 '보호자가 밥을 먹을 때는 하우스에 들어가는 것', '산책을 할 때는 줄을 당기지 않는 것' 같은 수준이라면 얼마든지요. 그래서 많은 반려견 교육기관이나 전문가들은 반려견에게 가해지는 훈육은 그 자체로 동물복지와 동물권, 동물의 정서적 안정을 저해하므로 지양하여야 한다고 말해요.
그러나 애처롭게도 [훈육]은 '반려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며 수많은 스트레스에 휩싸인 채 하루하루 자신을 갈아 넣으며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어요. 현대인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나 하나 잘 챙기는 것조차 버겁게 만드는 자극과 난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요. 상사의 눈치, 금전적 부담에 힘겨워하고, 사회적 기준에 발맞춰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소셜미디어 속 타인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느끼는 불안감.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어깨에 올려진 짐에 힘이 부친 사람들이 즐비하게 된 세상이지요. 이렇듯 내 안의 나를 균형 있게 관리하는 것도 버거운 한 명의 인간에게, 반려견과의 삶에 있어 모든 사정을 뒤로하고 최선의 선택만 하기를 권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종용이 될 수 있어요. 자책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지요. 심지어 그런 감정에 사로잡힌다 한들 여력이 없으니 나아지는 건 하나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게 될 거예요. 이해를 바라며 호소하면 누군가는 '그럴 거면 반려견을 왜 데려왔냐'는 날 선 말을 내뱉을 수 있지만, 애초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되는 반려견이라는 존재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 또한 저도 모르게 사회가 강요한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불안과 외로움에 휩싸여버린 사람들이었어요. 이런 현실에서 그들 개인을 비판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훈육]은 현대 반려인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태도 그 자체로 나타나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하고 싶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는 경향성을 비이성적으로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돌발태도로 훈육이 나타나는 거예요. 심지어 이 비이성적인 판단은 '훈육하는 본인의 행동'을 자기합리화하는 결과까지 불러올지도 몰라요. "사람도 혼나면서 크는데 반려견 혼낼 수도 있는 거지 뭐". 이런 세상 속에서 현실의 맥락을 외면하고, 무작정 반려견 훈육을 하지 않기를 제안하는 건 현실성 없는 제안이에요. 훈육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습관과 환경을 일찍이 갖춘 반려인은 훈육하지 않는 스스로에 대해 자기 효능감을 느끼며 살아갈 때, 훈육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습관과 환경과는 거리가 먼 상황에 놓인 반려인은 훈육에 대해 혼란과 자책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실. 현대인의 사회적인 문제, 개인의 심리적 불안이나 우울, 일상을 좀먹는 스트레스가 회복탄력성을 저해하여 스스로의 기분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선택이 아닌 태도 그 자체로 나타나고 있는 비이성적인 훈육은 개인의 의지로 바로잡기는 결코 쉽지 않아요. 마치 가족과 부모님을 다정하게 대해보라는 조언이나 주변인에게 더 친절하고 감사한 마음 가지면 세상을 더 밝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조언을 듣는 것과 다르지 않은 거예요. 우리는 그것이 더 좋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선뜻 실천하지 못하지요. 이는 훈육의 대상이 말을 못 하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동물'이라 하더라도 썩 달라지지 않아요.*[훈육]와 [학대]는 엄연히 다르며, 학대는 어떠한 이유로도 자행되선 안 되는 행위입니다.
나의 삶, 나의 상태를 고려했을 때 반려견과의 불안정한 삶을 효율적으로 바로잡기 위한 도구로써 훈육을 활용하는 건 나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훈육은 [충분하고 알맞은 교육적 노력]이 선행된 후 반려견에게 적용해야 해요. 그 이유는 효율과 오류 때문이에요. 반려견에게 가해지는 훈육은 겉보기에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막무가내 훈육은 오류를 범해요. 많은 보호자들은 반려견이 혼이 난 후 잘못된 행동을 멈추고 그 빈도가 줄어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행동이 일시적으로 멈출 뿐, 대부분 교정하려 하는 행동의 빈도가 0이 되는 결과를 얻지는 못해요. 그런데 그 빈도가 0에 가깝게 줄어든다고 가정할지라도 [충분하고 알맞은 교육적 노력]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훈육은 여전히 효율적이지 못해요. 왜냐하면 반려견은 훈육을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보호자가 원하는 하나의 올바른 행동'을 찾아낼 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에요. '혼이 난 행동 외 다른 많은 선택지'가 여전히 반려견에게 남아있고, 혼이 난 행동 외 다른 많은 선택지 중 보호자가 원하는 단 하나의 정답 행동을 반려견이 기똥차게 선택해 실행할 가능성은 낮아요.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데, 예를 들어 보호자가 외출한 사이 벽지를 뜯은 반려견을 뒤늦게 보호자가 훈육할 경우 반려견은 자연스럽게 표현과 움직임 자체가 위축돼요. 혼이 난 후 났던 벽지 뜯기 대신 식탁 갉기나 소파 뜯기를 해 본 반려견은 또 보호자에게 혼이 나게 되면서 더 강력한 위축을 경험하겠지요. 이 반복적이고 혼란스러운 훈육을 통해 반려견은 끝내 '표현을 줄이고 가능한 자신의 존재감을 숨길 수 있는 자세를 취하거나 구석진 곳에 자리 잡는 선택'을 하게 돼요. 이런 무력감을 느낀 반려견은 '우리 엄마아빠는 외출 후 돌아오면 나를 보는 것 자체에 화를 내는 거구나'라는 잘못된 학습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그 결과 반려견은 보호자의 '혼낼 때의 눈빛, 숨소리, 동작, 걸음걸이, 말투'의 낌새를 살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돼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마저도 '훈육을 하면 반려견의 잘못된 행동의 빈도가 0에 가깝게 줄어든다는 가정 하'의 결과라는 점이에요. 보호자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려견을 위해 [충분하고 알맞은 교육적 노력]이 선행되지 않은 훈육은 이러한 최악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선택임을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어요.
[충분하고 알맞은 교육적 노력]은 단순히 보호자가 간식으로 반려견 교육을 해본 것, '시도'에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반려견이 규칙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교육적인 단계와 절차를 충분히 잘 밟는 것을 의미해요. "간식으로 하루이틀 교육해 봤는데 제대로 못하길래 그냥 혼냈어요"는 비이성적인 훈육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훈육]은 반려견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반려견이 부정적으로 느낄만한 감각을 반려견에게 가하거나 반려견이 좋아하는 것을 앗아감으로써 잘못된 행동의 빈도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해요. 간식을 달라고 요구성행동으로 점프와 짖음, 보호자 발 물기를 하는 반려견에게 '앉아'를 교육한다면 반려견은 앉는 행동이 가장 빠르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행동임을 금방 짐작할 수 있어요. [충분하고 알맞은 교육적 노력]을 통해 앉아 음성신호를 듣고 반려견이 앉아를 잘 해내게 도와야겠지요. 이 과정에서 반려견이 앉아를 잘 이해했더라도 흥분 상태의 반려견은 다급한 마음에 앉아를 하면서도 금방 일어나 점프와 짖음을 행동을 보일 수 있어요. 이때 훈육을 하고자 한다면 앉아 외 다른 행동에는 "안 돼!"라고 단호히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큰 소리가 나는 도구를 활용하는 게 될 수 있어요. 앉는 행동에 대해 충분히 잘 이해할 기회를 준 뒤 앉아가 아닌 다른 행동에는 훈육을 받는 경험을 여러 일에 걸쳐하게 되면 반려견은 금세 앉아를 더 자주, 더 빨리, 더 오래 해내는 모습을 보이게 될 거예요. 항상 앉는 행동에 이득을 취했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앉는 행동을 더 많이 보이게 되는 거예요. 이 과정은 실제로 충분하고 알맞은 교육적 노력과 훈육이 병행되어 요구성행동을 개선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훈육]을 활용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즉각적으로 반려견이 교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선 안 된다는 거예요. 교육이 '좋아하는 걸 얻어낸 결과를 반복적으로 일관되게 경험시키는 것'이었다면 훈육은 '좋지 않은 결과나 좋은 것을 빼앗긴 결과를 일관되게 경험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훈육 또한 교육을 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반려견에게 반복적이고 일관되게 경험을 시킨다는 것에 집중해야 해요. 많은 보호자님들이 반려견의 훈육을 '즉각적인 대처로 정신 차리게 해서 더 이상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과 같이 감정적으로 하곤 해요. 이 즉각적인 대처 훈육은 일방적 훈육이자 [충분하고 알맞은 교육적 노력]이 선행되지 못한 훈육의 대표적인 사례예요. 보호자라면 훈육을 즉각 교정을 위한 도구로 활용해선 안 된다는 걸 마음에 새기셔야 해요. 반려견을 무력감에 휩싸이게 해 삶의 질이 낮아지게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면요.
또, 반려견의 문제행동을 개선하거나 규칙을 만들고자 할 때 훈육의 정당성에만 집중하는 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요. 교육이나 규칙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반려견에 대한 배경지식 겸비와 관리 실천'이에요. 산책과 운동을 통해 활동량을 충분히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반려견이 차분해지기를 바라며 규칙을 만들고 교육과 훈육을 한다면, 이는 아무리 [충분하고 알맞은 교육적 노력]을 했다 해도 학대로 간주될 수 있어요. 반려견이 왜 활동량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차분해질 수 없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을 보호자가 갖추고 있지 않다면 반려견은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삶을 살게 되겠지요.
존중에는 공부와 관리 실천과 같은 노력이 따라야 하고, 노력이 실천되면 규칙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시작해요. 이 과정에서 훈육의 유무는 개인의 상태나 선택에 달렸지요. 훈육은 [충분하고 알맞은 교육적 노력]이 선행된다면 규칙의 도구로써 기능할 수 있지만, 언제 나와 우리 반려견을 불행하게 만드는 도구로 돌변할지 몰라요. 훈육을 도구로써 쥐었다면 훈육을 감정적으로 쏟아내지 않고 '잘' 활용하기 위해 존중을 위한 노력을 실천해야 해요. 그래야 훈육조차 [존중]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