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정보에 왜곡된 보호자

by 오늘

세상에는 정말 많은 정보가 글을 통해, 동영상을 통해, 말을 통해 전해지고 있어요. 제가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그 많은 정보들 중 하나로 취급되어 앞으로 인터넷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겠지요. 이 정보들이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의 의도에 맞추어 정보가 정보 이용자에게 전해진다면 정보 이용자들은 그 지식을 통해 공부를 하고, 생각을 확장하며 또 다른 지식으로의 연결로 이어져 빠르고 원활하게 지식이 순환되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지식은 또 다른 지식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니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보를 나누는 제공자의 말은 항상 제공자의 의도 그대로 정보 이용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아요. 정보가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어 정보 이용자에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거예요. 반려견 양육, 반려생활에 관한 정보에서도 제공자의 정보가 왜곡되어 정보 이용자인 보호자에게 받아들여지고, 그 왜곡된 정보가 반려문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사례가 존재해요. 이 왜곡된 정보들은 보호자들로 하여금 반려견을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 수 있어요. 뿐만 아니라 전문가에게서 전달받은 정보가 틀렸을 리 없다는 믿음으로 잘못된 마음가짐과 태도를 고집하며 살아가는 보호자를 만들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우리의 반려문화에서 왜곡된 정보가 주류가 되어 널리 퍼져버린 사례는 꽤나 많아요.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반려견 교육자로서 가장 골치를 썩은 사례이기도 한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 반려견이 행복한 반려견이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된 사례였어요. 이 사례는 반려견이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이고 사람에 의해서만 음식과 물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연민이 작용한 영향, 그리고 귀여움과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작은 체급의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반려문화 특성으로 인해 나타난 왜곡으로 추측해 볼 수 있어요.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 반려견이 행복한 반려견이다.]라는 정보는 최초에 누가, 어떤 맥락에서 언급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추측해 본다면, '둔감화 교육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언급된 발언일 가능성이 커요. 반려견이 무서워하거나 불편해하는 특정 자극을 겪으면(예:천둥) 반려견은 즉시 스트레스 반응을 담당하는 호르몬이 분비되며 회피, 외면 반응이나 몸 떨기, 패닉 등 두려움 반응을 보이게 돼요. 두려움에 의한 방어적 공격성이 나타날 가능성 또한 있지요. 이런 경우 반려견은 그 자극에 대한 둔감화, 즉 두려움을 덜 느끼도록 그 자극에 둔감해지도록 돕는 교육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는데, 바로 이 '둔감화 교육'의 필요성을 보호자에게 강조하는 상황에서 언급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거예요. 둔감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내뱉은 누군가의 말, 글, 영상 등을 통해 반려견이 스트레스를 겪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정보를 접하게 된 보호자는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 반려견이 행복한 반려견이다.]라는 단순한 메시지로만 받아들임으로써 정보의 왜곡이 발생한 것일 가능성이 큰 거예요. 전문가의 말을 왜곡했고, 그 왜곡은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보호자들에게서 나타났을 수도 있지만, 결국 정보를 왜곡하여 해석한 소수의 보호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다른 보호자들에게 공유함으로써 널리 퍼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커요. 안 그래도 '스트레스'라는 단어는 여하 막론하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은 '나쁜 무언가'로 취급되는 경향이 강한 인식 속에서 이 왜곡된 정보는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거예요. "나는 우리 반려견을 정말 사랑하니까 스트레스로부터 반려견을 지켜주겠어!"

그렇다면 이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 반려견이 행복한 반려견이다.]라는 왜곡된 정보는 수많은 반려가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반려견이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보호자는 반려견이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는 낌새를 보이면 즉시 그 상황, 동작을 중단하거나 상황을 피하게 됐어요. 반려견의 스트레스에 민감해진 보호자에게 반려견의 낑낑 소리, 짖는 소리, 요구하며 점프하는 행동 등 다양한 모습은 반려견이 힘들다며 도와달라는 듯한 모습으로 느껴졌어요. 반려견에게 억지로 동작을 시키거나,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 하고, 반려견이 조금이라도 무서워한다면 그 장소를 다시는 가지 않았고, 반려견이 불편해한다면 그 사람, 그 물건과 거리를 두었어요. 반려견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낌새를 보이면 '우리 반려견은 트라우마가 있나 보다', '우리 반려견은 이런 걸 특히 낯설어하는 성격인가 보다'하며 다시는 그것들에 반려견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애썼어요. 이렇듯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 반려견이 행복한 반려견이다.]라는 왜곡된 정보를 접한 수많은 보호자들은 일명 '제로 스트레스 양육'을 나와 우리 반려견의 삶에 채택하여 살아가게 된 거예요.





반려견에게 간식을 줄 때는 앉아나 엎드려 등 무언가를 해낼 때 간식을 주는 것이 보호자와의 관계성과 요구성행동을 예방하는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만 '제로 스트레스 양육'이 반려견에게 가장 좋은 거라고 여기게 된 보호자는 반려견이 간식 앞에서 흥분하여 짖거나 호소하며 내는 소리를 반려견의 불행으로 여겼어요. 동시에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의 의지와 상관없이 먹을 수 있는데, 반려견은 '나'가 줘야만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던 보호자는 조건부 간식 급여가 반려견을 불행하게 할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게 됐지요. 또, 낯선 자극을 조금씩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적응해 내고 세상을 배워가는 우리네 반려견에게, 보호라는 이름 하에 한 번 부정적인 낌새를 보이기만 해도 다시는 그 자극을 느끼지 않게 양육함으로써 반려견의 사회성이 확장되지 못하게 막아버렸어요. 확장되지 못한 사회성은 나이를 먹을수록 고착되고, 사회성의 특성상 낯선 자극과 환경에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만들었어요. 보호라는 이름의 사회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게 만든 거예요. 이는 단순히 반려견이 낯선 자극들에 대한 적응력과 소화력에만 영향을 끼친 게 아니었어요. 결과적으로 반려견은 집과 보호자, 익숙한 몇 가지의 자극 외의 세상의 많은 것을 오해하고 두려워하는 삶을 살게 만들었지요. 삶의 질의 저하, 보호자에 대한 의존도 강화 등의 결과를 초래했어요. 스트레스에 일찍이 점차 노출되면서 반려견이 스스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요령을 익히고 반복적인 경험을 했다면 반려견은 스트레스를 힘들어하지 않고 살아가는 씩씩한 반려견이 되었을 거예요. 정보의 왜곡이 얼마나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하지요. 이 '제로 스트레스 양육'은 지금도 여전히 상당히 많은 반려견의 사회성 결여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어요. 반려견이 나랑만 잘 살면 된다는 보호자의 마음가짐은 생각보다 더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반려견에게 끼치게 해요. 반려견이 세상 자체를 오해하게 만들어 어느 곳에 가든 긴장하는 반려견이 되어버릴 수 있는 거예요. 반려견이 갑작스럽게 크고 많은 자극을 느끼게 될 수 있는 사람 사회의 특성상 보호자는 반려견을 나랑만 잘 사는 반려견이 아니라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반려견이 되도록 도와야 해요.








정보가 왜곡되어 반려문화 전반에 잘못된 신념이 널리 퍼진 사례는 '제로 스트레스 양육'뿐만 아니었어요.

[사랑을 절제하라]는 메시지는 왜곡되어 제로 스트레스 양육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했어요. 전문가의 "반려견을 향한 사랑을 절제하라"는 메시지는 크게 2가지 경우에 전해지곤 해요. 첫 번째는 반려견이 보호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애정표현 절제하기를 권장한 경우예요. 두 번째는 반려견이 타고난 기질로 인해 보호자의 애정표현을 '연약함'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띌 때 관계성 바로잡기와 보호자의 리더십 함양을 위해 애정표현을 절제하기를 권장한 경우지요. 이에 해당되는 상황의 보호자들은 전문가로부터 반려견을 향한 애정표현을 절제하고, 휴식 공간을 분리하고, 눈을 마주치는 빈도와 말을 거는 행위를 줄여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조언을 전해 듣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는 '앞으로 평생 반려견에게 애정표현을 단절하고 과묵한 보호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왜곡된 의미로 받아들여졌어요. 애정표현 절제는 행동문제가 완화되고 반려생활이 점차 안정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균형 잡히며 느슨해질 수 있었지만, 한순간이라도 반려견을 향한 사랑을 절제하라는 것조차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는 보호자에게 평생 반려견을 향한 애정을 단절하기를 짐작하게 하는 전문가의 조언은 '애정표현을 단절할 바에 행동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금 상태로 함께 살아가겠다'라는 극단적 오판을 하게 만들었어요.

이 극단적 오판은 또 다른 부수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는데,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는 대부분의 사람은 훨씬 이전부터 꿈에 그린 반려견과의 삶, 즉 '로망'을 간직하고 있어요. 이 로망은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로 입양의 큰 동기로 작용하지요. 이 로망은 '애정을 단절하고 반려견을 단호하게 대하는 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요. 반려견과 함께 공놀이를 하고, 한적한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며, 반려견을 위해 손길과 애정을 듬뿍 주는 나의 모습, 나의 사랑에 행복해하는 반려견의 모습을 담고 있지요. 애정표현을 절제하라는 등 '사랑을 절제하라'는 전문가로부터 전해 들은 정보는 로망 실현을 막는 큰 훼방으로 여겨졌어요. 긴 시간 꿈꿔왔다가 마침내 실현한 반려생활, 그 로망을 행동문제라는 원인 때문에 내려놓아야 했던 보호자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겠지요. 전문가의 조언이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어요. 반면 행동문제 개선을 포기하고 애정표현 마음껏 하기를 택하는 것은 쉬운 문제였지요. '사랑을 절제하라'는 정보를 잘못 받아들이게 만들고 그로 인한 꿈 꿔온 반려견과의 로망 실패를 짐작하게 하는 정보의 왜곡은 반려견 보호자가 지닌 '애초 애정표현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위해 가족으로 맞이한 반려견이라는 존재의 의의' 그 자체를 뒤흔들었어요. 끝내 행동문제 개선보다 사랑을 마음껏 주는 것이 반려견과 나 모두에게 더 좋은 선택일 거라는 극단적인 오판을 하게 만들었지요.








이렇듯 우리네 반려문화에서 왜곡된 정보는 보호자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왜곡된 정보에 의해 잘못된 마음가짐과 태도, 신념을 가지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지요. 왜곡된 정보뿐만 아니라 때로는, 내가 중시하는 것과는 다른 가치를 내세운 정보에 반발하며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던 관념이 어느새 편견으로 작용하여 나를 옭아매고 있을지도 몰라요. 심지어 왜곡된 정보도 아닌 애초 잘못된 정보를 옳다고 여기고 있을 수 있지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우리 반려견을 대하는 태도와 양육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반려견에 대한 정보가 정말 믿을만한 정보인지, 내가 오래전부터 옳다고 믿고 있던 정보가 지금도 여전히 옳고 최선인 건지 주의 깊게 살피고 되짚어볼 필요가 있어요. 그 정보가 단순히 '나를 위한 정보'가 아니라 '우리 반려견에게 적용되는 정보'이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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