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필요

by 오늘

우리네 반려견들은 사랑받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 사랑은 보호자에게서 오는 것이지요.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반려견에게 전해지고 있을까요? 대개 보호자의 사랑은 반려견에게 [풍요]라는 형태로 전해지고 있어요. 맛있는 음식을 내키는 만큼, 식욕은 충분히 충족할 만큼 필요하다면 더, 물은 언제나 가득, 가지고 놀 장난감이 부족하지 않게, 지루해할 수 있으니 새로운 장난감을 주기도, 춥지 않게 따듯한 보듬자리를, 덥지 않게 시원한 보금자리를, 뒤처지지 않는 사랑받는 반려견이 되도록 마구마구 이뻐해 주고, 안아주고 보듬어주며, 예쁘게 미용해 주고 예쁜 옷을 장만해주기도 해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반려견에게 전해지고 있는 풍요로움이고 이 풍요로움은 곧 보호자의 사랑인 거예요.

보호자의 사랑은 곧 반려견에게 생존에 필요한 먹을 것, 음식, 보금자리와 같은 필수 자원, 그리고 보편적인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적정온도나 장난감과 같은 부수적인 자원,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관리 등으로 반려견에게 전해지고 있어요.





개는 본래 풍요롭지 않은 삶은 사는 동물이었어요. 그들의 행동양식,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개의 야생본능'은 풍요롭지 않은 야생에서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에요. 배가 고플 때는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 기민하게 날카로운 사냥을 수행했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냄새를 찾아다녔으며, 더운 날씨에는 체온 조절을 위해 개구호흡과 털갈이를 했고, 추운 날씨에는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듯 가까이해 체온을 나눴어요.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풍요로울 수는 없었고 대부분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얻으며 생존해 왔어요. 본래 개들에게 부족한 상태, '결핍'은 개가 개라는 동물로서 종의 특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만든 가장 근원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결핍 없이 풍요롭게 먹을 것을 먹고, 늘 따듯하고 시원한 온도가 유지되는 세상에 살았다면 개라는 동물은 '야생본능'을 갖추지 못했을 테니까요. 사실 이러한 사실은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사실이라고 볼 수 있어요. 모든 동식물은 결국 지구상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최적화를 이뤄내며 진화한 것이니까요. 우리 인간마저도요.

그러나 지금의 우리 반려견들은 지구상 대부분의 다른 동식물과는 달리 더 이상 '결핍된 상태'에서 살아가지 않아요. 인간종과 함께 살기를 종 번식 전략으로 펼친 옛 개는 반려견이 되었고, 그 결과 개는 지구상에서 가장 종 유지에 성공함과 동시에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종이 됐어요. 물론 예외인 상황에 놓인 개도 존재하기는 하지만요.

결핍된 상태가 자연스러웠던 개에게 인간에 의한 풍요로움은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가장 중요한 영향으로는 덜 아프고, 덜 다치고, 덜 고달파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늘어난 수명, 사냥 대신 밥그릇, 통증에는 약물, 안전이 보장된 보금자리, 다양한 풍요를 주는 보호자의 관리적인 노력은 생존과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반려견을 안전하게 만들어줬어요.

그러나 이 풍요로움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른 문제를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개라는 동물은 인간과 긴 세월을 함께 하면서 변화되어 왔어요. 처음에는 그저 인간의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인간이 먹다 남긴 음식물 찌꺼기, 인간의 변을 먹이로 삼으며 가까워졌지만 일방적으로 개가 인간 마을의 부산물을 얻는 이점만 취했던 건 아니었어요. 인간 마을 인근으로 보금자리를 튼 옛 개들은 인간 마을에 접근하는 다른 동물들, 외부 집단들을 경계했고 옛 개의 경계하는 움직임과 소리는 인간들에게도 도움이 됐어요. 옛 개들의 움직임과 경계음에 위험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마치 사이렌 소리로 여겨진 거죠. 즉 우리의 부산물을 먹는 개가 우리의 경비원 역할을 자처하게 된 거예요. 두 종의 상생이 이루어지게 된 셈이지요. 그렇게 개와 인간은 점차 더 가까워졌고, 옛 개들 중 상대적으로 좀 더 인간과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는 경향을 가진 개체들이 인간의 음식물을 더 잘 얻어먹고, 인간의 관리를 더 자주 받게 됨으로써 지금의 개라는 동물로 자리매김하게 됐어요. 이러한 배경은 현대에 이르러 개와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정설로 여겨지고 있지요. 심지어 현대의 개들에게서 변을 먹는 식분증을 나타나는 이유가 인간의 변을 먹는 선택을 했던 개체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어요. 인간이 남긴 음식물 찌꺼기뿐만 아니라 인간의 변을 먹은 개체는 더 많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영양을 섭취한 개체가 번식에 유리했을 테니 그들이 현대 반려견의 조상일 거라는 설이지요.

현대의 개들은 그렇게 옛 개의 후손들로, 야생에서 살아가던 옛 개들 중 대를 거듭하며 인간과 더 우호적으로 지낼 수 있는 개체들이 자연선택 되었고 선택된 개체들이 인간 주변에서 또다시 대를 이어 현대의 개들로 이어졌어요. 그런데, 인류와 개와의 접점이 처음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 7만 년 전의 그 순간부터 현대까지의 시간은 아무리 인간과 개의 입장에서 긴 세월이었다곤 하나 그 시간이 유전자를 뒤바꿀 수는 없었어요. 개들은 여전히 옛 개들이 가졌던 생리, 행동심리를 간직하고 있어요. 이를 여실히 이해할 수 있는 예로 인간을 들 수 있지요. 현대 인간의 조상은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인 등 다양한 인간종으로 알려져 있어요. 우리의 DNA는 여전히 옛 인간종의 DNA를 따라 생리적인 기능과 행동심리학적 특성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지요. 심지어 현대 인간에게 나타나고 있는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들의 주요 원인으로 '구석기시대에 맞춰진 인간의 DNA가 디지털 문명사회와 과도하게 밀집된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이런 특성을 우리에게 전해준 조상과 현대 인간의 물리적인 시간 격차는 190만 년에서 100만 년이라고 해요. 옛 인간과 옛 개가 극적인 접점을 이루었다한들 겨우 7만 년의 시간은 개의 생리와 행동심리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던 거예요. 무려 100만 년이 지나도, 문명을 이루고 과학이 발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우리조차 DNA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으니까요. 되려 우울과 불안을 겪는 현상을 맞닥뜨리고 있지요.






개는 풍요롭지 못한 '결핍'된 생을 살았어요. 인간을 만나기 전부터 그래왔고, 인간과 접점이 있는 긴 세월 동안에도 개는 대부분의 시간을 결핍을 무기로 해 살아남았어요. 배고픔이라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기민하게 사냥했고, 갈증이라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치열하게 물을 찾아 마셨고, 생존이라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무리 외 존재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로 대항했어요. 결핍은 종의 기반을 만들었고 종의 양식을 만들어냈어요. 그렇게 '결핍'된 삶에서 만들어지고 발휘되던 개들의 행동양식은 너무나 깊이 자리 잡아서 우리네 반려견에게도 그대로 발휘되고 있지요. 먹을 것이 앞에 있을 때 누군가 다가오면 보이는 소유욕 공격성이라는 결핍의 흔적, 보호자의 관심과 사랑같이 가치 있는 것들을 선점하려는 결핍의 흔적, 무리와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오는 분리불안이라는 결핍의 흔적, 우리들을 위협할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짖는 경계성행동이라는 결핍의 흔적. 개들에게 이러한 결핍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결핍은 풍요로움이라고 하는, 인간종의 특기와도 같은 특성과 맞닥뜨리게 되었어요.






인간은 애정하고 호감 있는 대상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해요. 편안해지길 바라고 안정되길 바라요. 심지어 그 대상이 비인간일지라도 그들을 인격화하여 그들에게 감정을 부여하고 그들을 사람처럼 대하며 무언가를 주고, 안정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지요. 그 대상이 돌멩이라 할지라도요.

인간은 개를 만났고 개는 현대에 이르러 반려견이 되면서 현대의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어요. 즉 사람이 반려견에게 안정되길 바라며 풍요로움을 전해주게 된 거예요. 결핍의 행동양식을 가진 개가 풍요로움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람은 대상을 향한 사랑을 절제할 수 없어요. 사랑표현을 절제할 수는 있지만 사랑 그 자체를 절제하는 건 불가능해요. 절제하지 못한 보호자의 사랑을 풍요로움이라는 형태로, 있는 그대로 경험한 반려견들은 '반려생활'에서 몇 가지 문제를 보이기 시작했어요. 풍요로움이 익숙하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개들은 보호자의 사랑이 그대로 담긴 풍요로움을 풍요로움이 아닌 연약함으로 해석했어요. 풍요로움으로 무장한 보호자의 애정표현, 맛있는 걸 마음껏 요구한 대로 제공해 주는 관리는 개의 행동양식에서 '무리의 연약한 강아지가 성견들을 대할 때의 모습'과 유사했어요. 어린 강아지가 다가와 몸을 비비듯이 보호자는 손을 마구 갖다 대었고, 어린 강아지처럼 많은 소리를 내며 말을 걸었고, 지루함을 달래듯 다가와 귀찮게 하는 강아지처럼 다가와 반려견의 휴식을 방해하고 관심을 쏟았어요. 풍요로움을 경험한 적 없는 개들은 풍요와 연약한 태도를 구분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우리네 많은 반려견들은 보호자의 역량을 의심하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보호자가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혼란을 느낀 반려견들은 자신이 보호자를 지켜주고 이끌기를 결심해요. 이 결심은 곧 문제행동 그 자체가 되어버리지요.






보호자와 반려견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결핍을 바탕으로 우리네 반려견들을 대해야 해요. 보금자리를 따듯하게 해 주고, 시원하게 해 주고, 안전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얼마든지 풍요로워도 문제없어요. 하지만 보호자의 사랑을 표현하는 '풍요로움'만큼은 절제하여 반려견이 결핍된 상태에서 보호자와 관계를 형성하고 보호자와 밥을 먹고 보호자와 산책하는 생활을 해야 해요. 이는 반려견의 행동과 교육 영역의 전문성이 있는 교육자들에게도 예외가 없는, 반려견이 노견이거나 아픈 반려견이 아니라면 안정적이면서 행복한 반려생활을 하기 위해서 꼭 이루어져야 하는 조건 중 하나지요.

풍요로움을 절제하기 위한 보호자의 노력은 어려울 게 없어요. 반려견이 식습관을 바르게 형성해 매 끼니 밥을 잘 먹도록 돕고, 애정표현과 관심을 절제하여 반려견이 보호자를 연약한 강아지로 보지 않고, 과하게 의존하지 않도록 도와야 해요. 가치가 높은 음식물을 손쉽게 제공하기보다는 꾸준한 교육으로 반려견에게 규칙을 알려주고 그 규칙을 토대로 제공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게끔 함께 노력해야 해요. 반려견이 매 끼니를 잘 먹게 하기보다는 마음껏 자율급식을 하게 하고, 애정표현과 관심을 쏟아 반려견이 그저 나와 잘 살기를 바라고, 어려운 과제를 잘 해내야만 간식을 주는 그런 생활이 반려견을 스트레스받게 한다고 여기는 보호자님들이 많아요. 반려견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더 행복할 거라고 믿는 거예요.

하지만 사람도 그렇듯 반려견도 스트레스를 잘 견뎌내고 잘 소화하고,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요령을 익혀 스스로 스트레스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비로소 진짜 행복한 상태가 될 수 있어요. 보호자의 손에 들린 간식을 먹기 위해 아무런 의지 없이 서있다가 주어진 간식을 먹기만 하는 반려견은 스트레스 상황을 통제할 수 없어요. 간식을 먹기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능동적 사고가 바탕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보호자의 손에 들린 간식을 먹기 위해 보호자가 따로 신호하지 않아도 앉아보거나 엎드려보거나 켄넬로 하우스 해보는 반려견은 스트레스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요. 자신이 판단하여 직접 움직여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통제하는 거예요. 사람도 반려견도, 자신이 스트레스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비로소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이는 이미 행동심리와 관련한 연구들을 통해 밝혀진 바가 명확한 견해이지요.

즉 풍요로움이라는 스트레스가 없기를 바라는 삶은 보호자와의 관계성에도 악영향을 끼치지만 결과적으로 반려견의 삶의 질 자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끼칠 거예요. 반면 반려견이 살아가며 겪을 수밖에 없는, 옛 개가 겪었던 '결핍'이 있는 삶은 삶의 불가피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대항하게끔 유도해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면역, 스트레스 통제를 기반으로 한 삶의 질 향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물론 결핍, 반려견에게 주어지는 불가피한 스트레스는 막무가내로 반려견에게 가해져서는 안 돼요. 반려견이 스트레스 상황을 유연히 잘 소화하고 통제하는 법을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호자와의 꾸준한 교육적 노력, 반복적인 시행착오가 필요해요. 반려견은 사람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요령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에요.

옛 개로부터 전해진 우리 반려견의 DNA(행동양식), 거기에 우리 반려견에 대한 배경지식을 바로 알고 더 나은 삶의 질을 보장해 주려는 의지, 무작정 나의 방식으로만 반려견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견을 위해 절제하며 진짜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현대의 반려견 보호자가 갖추어야 할 [존중] 아닐까요?

반려견을 향한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마음껏 줄 수 있어요. 여러분들의 반려견은 사랑받고 있겠지요. 하지만 존중은 아무나 해줄 수 없어요. 반려견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추고 그 지식을 토대로 반려견을 대하며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는 보호자만이 반려견을 존중할 수 있어요. 존중받는 반려견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여러분들의 반려견은 존중받고 있나요? 늦지 않았어요. 언제나 우리들 옆에 있어주는 그들을 존중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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