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무살이었을 때, 위노나 라이더가 주연한 영화 [작은 아씨들]을 보았다.
둘째라서 그랬을까, 오롯이 위노라 라이더가 연기한 조 마치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작가로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고, 사랑 앞에서도 독립적인 주체로 서 있으려 애썼다.
그런 장면이 있었다. 로리가 '나랑 결혼하자'고 말했을 때, 조는 고개를 저었다.
"난 내 방식대로 살고 싶어. 내 글을 쓰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나답게 살고 싶어"
그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결이 마음속에 깊게 남아 있었다.
스무살의 나는 그런 그녀가 외로워 보였다.
남들과 달라서 외롭겠다, 둘째들은 왜 이렇게 자기주장이 셀까, 그게 둘째의 숙명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흔아홉의 눈으로 보니, 그건 인생을 잘 살고 싶은 마음이자 애씀이었다.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애씀.
이제는 안다. 둘째만 외로운 게 아니었다.
첫째도, 셋째도, 막내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답게 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는 걸.
인생이란 결국 다들 애쓰며 자신으로 존재하려고 애쓰는 여정이었구나.
세월이 흘러 그레타 거웍이 만든 [작은 아씨들]을 봤을 때, 영화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줄거리도 결말도 알고 있지만 장면마다 새로웠다.
마치 내가 처음 살아보는 하루처럼. 어제 마신 커리아 오늘의 커피가 다르듯, 똑같은 하루의 맛도 매번 새롭다. 그 울림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아마 지쳐 있었나보다.
사십구년을 살았는데 앞으로도 살아온 만큼 살아내야 한다면 그 비슷한 일상이 얼마나 지루할까 싶었다.
'이대로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 라는 질문은
'그래,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위로로 바뀌어 내 안에 번져왔다.
두 번 사는 오늘은 없다.
오늘을 미리 살아볼 수도 없다.
그 팩트체크, 하나가 크게 다가왔다.
요즘 나는 매일 일기를 쓴다.
서른다섯즈음 일의 무게감이 나를 짓누를 때
가벼운 펜 하나가 나를 구했다.
펜을 타고 종이에 흘려버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뒤로 지금까지 쌓인 종이 일기장은 내 나이보다 많다.
가끔 예전 일기를 꺼내 읽으면,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봐! 너는 그때보다 훨씬 단단해졌어.'
내 영혼은 나몰래 매일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삶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제 먹은 저녁을 먹고, 어제 하던 일을 하고, 어제 만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어제인지 오늘인지 구분이 안간다.
하루가 복사되어 반복되는 느낌.
하지만, 그건 아마 내 안의 새로움에 귀 기울이지 못해서일 것이다.
조금만 멈춰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안다.
똑같은 날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반복되는 오늘은 없다.
오늘을 두번 사는 나도 없다.
같은 영화를 두번 봐도 다르게 리플레이 된다.
삶은 매일 현재 라이브다.
되감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생방송으로 흘러가고 있다.
- 온은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