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 토크쇼 '라디오 스타'는 항상 '다음 주에 만나요. 제~발!'로 끝납니다. '무릎팍 도사' 방송분에 밀리던 때, 분량이 안 나올까 봐 걱정하며 '제-발'이라고 외쳤던 것이 이제는 트레이트 마크가 되었어요. '제-발'에는 간절함이 있잖아요. 목소리도 살짝 떨리고 불쌍한 표정을 더하면서 최대한 도움을 요청합니다.
저는 요즘 디자인 씽킹 워크숍을 설계하고 퍼실리테이션 하는 분들에게, 외치고 싶습니다. '디자인 씽킹을 공부로 가르치지 말아 주세요. 제-발!'이라고요.
이 생각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맞는 교육으로 뭘 할지,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은 교육 담당자와의 대화에서 출발했습니다. 기업 생존을 위한 화두로 떠오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해, 교육팀/HRD팀이 분주하게 움직인 지 3-5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 낯설기는 마찬가지라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로 디자인 씽킹에 주목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운영하는지 물어봤는데요.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를 학습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디자인 씽킹 워크숍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디자인 씽킹을 알려주고 실습하는 교육은 사원부터 임원까지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현재 진행형입니다. 기업교육 담당자에게 어떻게 진행하는지 물어보니, 생각이 비슷비슷합니다. 디자인 씽킹은 이론으로 배우고 끝나면 안 되고 직접 해보고, 적용하는 실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진행 방식도 비슷합니다. 서두에서 개념 정의, 히스토리 소개, 5단계 프로세스 방법론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디자인 씽킹 주제를 알려주고 교육생들은 5단계에 맞춰서 실습을 하면서 배우도록 지도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와 함께 디자인 씽킹을 개발한 회사인 IDEO 용어를 기본으로, 5단계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Empathize
--> 2단계 Define
--> 3단계 Ideate
--> 4단계 Prototype
--> 5단계 Test
이렇게 워크숍을 진행하면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입니다. 디자인 씽킹 퍼실리테이터를 위한 교육에서도 동일하게 진행되니까요.
그러나 디자인 씽킹 퍼실리테이션 양성교육에서 진행하는 것은 괜찮습니다만 실무에서 적용해야 하고, 이론과 프로세스에 대해 관여도가 낮은 기업의 일반 직장인들에게 이런 방식은 적합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런 진행 자체가 디자인 씽킹 워크숍을 망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대로 아이디어와 생각이 떠오르질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디어를 잘 내기 위해 프로세스를 나눠놓은 건데, 오히려 프로세스에 치여서 아이디어가 엉망이 될 수 있어요. 교육생의 관점에서 보면 프로세스를 배우라는 건지, 아이디어를 내라는 건지 헷갈립니다. 교육생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두배가 됩니다. 하나는 실습 위주 워크숍에서 오는 피로감. 단계마다 하라는 것이 많아서 수동적인 교육생은 피곤함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나머지 하나는 프로세스 학습도 해야 하고 아이디어도 내야 하는 두 가지 미션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에요.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를 단계별로 나눠서 학습하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1단계를 마치고, 2단계로 가고, 2단계를 마쳐야 3단계로 갈 수 있고 이렇게 차근차근 4단계에서 아이디어를 냈는데, 1단계와 맞지 않게 되면 모든 프로세스가 엉망이 됩니다. 5단계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기준점이 없으면 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주체가 없어져 버리는 문제점까지 생깁니다. 똑같은 아이디어라도 주체가 달라지면 테스트 기준도 달라져야 하니까요. 프로토타입까지 마쳤는데 아이디어가 별로입니다. 다른 아이디어를 내고 싶은데, 그걸로 그냥 테스트를 하라고 합니다. 이상하죠?
디자인 씽킹은 필요해요. 그러나 교육 방법은 달라져야 합니다.
디자인 씽킹 방법론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직장인들이 전체 프로세스를 경험하는 과정은 고객이 중심이 되는 씽킹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디자인 씽킹을 통해 고객 관점에서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과제를 도출하는 훈련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디자인 씽킹 워크숍을 살리는 방법
1. 프로세스 학습과 아이디어를 구분하기
프로세스 자체를 이해하는데 집중하도록, 다른 요소들을 제거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 프로세스를 배울 때 말이죠.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사례(예: 아마존이나 구글과 같은 혁신 기업들이 진행해서 성공한 것)를 사용하여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에 역으로 적용해보면서, 훈련하면 전체 프로세스를 빠르게 이해하고 학습하는데 좋습니다. 아이디어 자체에 대해 평가할 필요가 없으니까 프로세스만 학습하는데 효과적입니다.
2. 연습 주제를 사용해서 빠르게 프로세스 배우기
핵심 주제를 실습하기 전에, 작은 주제를 연습 과제로 삼아 짧은 시간에 프로세스에 태워보는 겁니다. 일상에서 흔히 겪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면 효과적입니다. 회사, 기업, 사회 등 큰 주제보다 내 관점에서, 내 주변의 작은 일들을 사용하면 부담감이 없고 다양한 아이디어 발상이 가능합니다.
3. 프로세스 점핑과 역행을 허용하기
가장 난감한 때가 4단계 Prototype까지 왔는데, 아이디어가 뭔가 이상해요. 5단계 테스트 단계로 넘어갔더니, 빵점이 나오는 거죠. 그러면 그 팀은 워크숍이 이상하게 끝나요.
1단계 공감하기에서 출발했는데, 바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면 4단계 프로토타입으로 점핑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설계해야 합니다. 만약 5단계 테스트에서 이상하면 앞 단계로 역행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해요.
퍼실리테이터는 스피드와 유연성이 가능한 디자인 씽킹 워크숍을 설계해주세요. 1단계에서 5단계까지 빠르게 실행하면서 점핑과 역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유연함을 발휘하도록 말입니다.
4. 주제에 따라 프로세스별 중요도를 다르게 하기
디자인 씽킹 워크숍을 망치는 가장 흔한 방법은 한 단계 한 단계를 모두 동일한 비중으로 진행하는 거예요. 8시간으로 진행하는 워크숍은 대개 안내와 마지막 발표 공유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을 1/5로 동일하게 나눠 프로세스를 태웁니다. 하지만 주제에 따라서 단계별 시간 비중을 다르게 설계해야 해요. 1단계 소비자 공감하는 단계가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다면 1단계를 가장 길게, 반대로 5단계 테스트와 검증이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5단계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도록 긴 시간을 교육생에게 줘야 합니다.
5. 그룹 설정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디자인 씽킹 워크숍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고르라면, 저는 그룹 설정이라고 대답하겠어요. 조를 짜는 건데요. 보통 6명 1조로 짜는데 인원수도 중요하고요. 3명이나 4명이 한 조가 되었을 때, 2명이 한 조가 되었을 때도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직급이 섞여있는지, 부서가 섞여있는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워크숍 설계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교육생의 업무 경력과 직무, 그리고 구성입니다. 고객 프로파일링을 하듯이 교육생 프로파일링을 해야 합니다.
6. 워크숍 후 나온 아이디어 DB 모으기
아이디어 발표하고 나면 아이디어를 버려요. DB로 쌓아두질 않아요. 회사에서 여러 번 진행해도, 늘 같은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아이디어 DB를 모아놓고, 다음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공유하면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더 나은 것을 생각해낼 수 있어요.
7. 주제에 따라, 소비자 조사 기법 다르게 하기
퍼실리테이터들이 의외로 간과하는 부분은 소비자 조사 기법입니다. 현장 관찰, 현장 인터뷰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고객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법은 너무나 많아요. 해당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소비자 조사 기법을 워크숍에 반영해야 양질의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고객 이해가 디자인 씽킹의 출발점이니까요.
가장 황당한 워크숍은 퍼실리테이터가 교육생들에게 관련이 없는 타깃에게 가서, 현장 인터뷰를 해오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현장 인터뷰는 타겟팅의 가장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만, 타겟이 아닌 사람의 현장 인터뷰를 받아서 공감하기가 될까요? 그런데 퍼실리테이터 생각에는 무조건 일단 현장에 나가게 해야 한다며 교육생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8. 실행 주체를 설정하기
디자인 씽킹 프로그램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행까지 커버하도록 기획되어 있어요. 실행 주체가 없으면 모든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1단계 Empathize, 타겟팅을 선택하기 애매하고, 2단계 Define은 문제정의 자체가 애매합니다. 3단계 Ideate는 아이디어를 많이 냈으나 의사결정자가 없어서 뭘 선택할지 기준이 없고요. 4단계 Prototye과 5단계 Test에서도 의사결정자와 기준이 모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