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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5시간 만에 떠난 오키나와, 충동이 만든 선물

여행의 이유는 스포일러 없는 순간에 있다

by 원웨이브


가을에 떠날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불현듯 오키나와에서의 충동여행이 떠올라 글을 적어본다.


과연 여행은 얼마나 충동적일 수 있을까?






새벽 6시에 항공권을 검색해 당일 오전 11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3박 4일 오키나와로 떠난 적이 있다.


누군가는 여행은 준비하는 과정이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 여행은 준비보다 그 순간의 경험이 소중하다.


나는 J 성향이 강하다. 기획 일을 오래 했기에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 하지만 여행만큼은 다르다. 계획은 세우되 변동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편이다. 치밀하게 세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유 있게 틀을 잡고 현장에서의 순간을 즐긴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p207



요즘은 검색만 하면 여행 정보가 끝없이 쏟아진다. 유튜브에는 일정이 요약된 영상까지 있다. 하지만 영화 리뷰를 보고 나면 정작 영화를 볼 이유가 줄어드는 것처럼, 과도한 정보는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킨다. 결국 여행 준비의 정도는 그 여행을 어떻게 즐기고 싶은가와 맞닿아 있다.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에서 언급한 여행의 이유가 공감이 갔다. 그래서 나에게도 여행이 좋은 이유 세 가지를 말하자면. 첫째, 스스로 선택한 경험이라는 점. 둘째, 한정된 시간 속에서 집중하게 되는 점. 셋째, 낯선 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온 감각을 열게 되는 점. 그래서 여행의 과한 ‘스포일러’는 오히려 설렘을 줄인다.


그날도 원래는 춘천으로 3박 4일 여행을 가려했다. 준비는 따로 없었고 숙소도 현지에서 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새벽에 문득 “차라리 해외를 가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스캐너에 들어가 보니 오키나와 왕복이 10만 원대였다.


집을 비우는 건 춘천이든 오키나와든 같다는 생각에 와이프와 상의했다. 이미 3박 4일은 계획된 상황이라 결국 승낙을 얻었고, 순식간에 비행기를 결제하고 집을 나섰다.


점심에 우동을 먹으러 일본, 저녁에 파스타를 먹으러 파리를 간다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지만 내가 직접 경험할 줄은 몰랐다. 계획 없이 도착해 현지에서 경험을 토대로 일정을 짜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숙소를 정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그 여행은 오래 지나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려 언덕 위 작은 마을의 초밥집을 찾아가고, 이자카야 골목에서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마트 도시락을 사 방파제에 앉아 노을을 보며 먹고, 작은 재즈바에서 공연을 즐기며 박수를 쳤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카페에서는 진한 커피와 책으로 여유를 맛봤다.





참 좋은 시간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또 한 번 충동여행을 떠나고 싶다. 물론 예전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 설렘은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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