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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웨이브 Aug 07. 2022

매일 자신의 추도문을 읽는 남자

10년 동안 만든 나의 추도문



  언젠가 나도 죽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에 대한 '추도문'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그 내용은 이미 써 놓았다. 


나를 위해 장례식에 온 이들이
나의 추도문을 듣고
공감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추도문



그는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지혜로운 21세기 선비와 같았습니다.

부드러운 미소와 공손한 말투, 겸손한 몸가짐으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 늘 진심으로 대했습니다. 배려심 깊고 경청하는 성격으로 주변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관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사람이나 일에 대해서는 애정을 담아 거절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인은 가족들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늘 유쾌하고 현명한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기 위해 늘 노력했습니다.

고인은 ‘무엇을 하건 긍정적인 면을 찾고 현재를 즐기자’를 모토로 살아왔습니다. 새로운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이며 저녁에는 늘 하루를 돌아보며 가진 것에 감사하는 수행자였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열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변에 모이게 하며 그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함께 일하는 데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말은 신중하게 아끼며 자신이 말한 것은 지키는 실행력과 하고자 하는 것은 꼭 해내는 과단성도 함께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고인은 모든 일에서 본질을 놓치지 않고자 책을 늘 가까이하고 배움에 목말라 있는 기록광이었습니다.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자유여행을 좋아하고 1년에 한 번 마라톤 완주를 하는 뜨거운 마라토너이기도 했습니다. 늘 명상을 하며 마음을 수련하고 한글을 아름답게 잘 쓰는 명필이었습니다.

고인은 세상에서 자신을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유니크함을 알게 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졌다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도 그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 '원웨이브'의 추도문




추도문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 10년



  어느 날 읽었던 책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았다. 켄 블랜차드의 <비전으로 가슴을 뛰게 하라>라는 책을 보고 추도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켄 블랜차드는 <칭찬은 고래를 춤추도 한다>, <겅호>의 저자로 이 책으로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물론 나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책의 초반에 주인공의 장례식에서 딸이 추도문을 읽는데 모두가 그 내용에 공감하며 한마음으로 애도했다. 그의 삶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추도문은 주인공이 살아있는 동안에 스스로가 쓴 내용이었으며 추도문을 쓰고 그렇게 살고자 평생을 노력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에 깊이 영감을 받고 나도 추도문을 써야겠다는 생각과 다짐을 했다. 나 스스로는 하기로 한 것은 꼭 하는 편이지만 중요한 일일수록 느리고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추도문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기에 10년이 걸린 것이다. 2010년 이 책을 처음 읽고 2019년 홀로 떠난 대만 여행에서 추도문을 완성했다.



  추도문을 쓰기 위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과 나의 가치관, 그리고 나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책에 담긴 삶의 지혜들을 담아왔다. 공자의 논어, 이문열의 삼국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벤자민 프랭클린의 덕의 기술,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 데일카네기의 자기관리론 등 다양한 책들을 읽고 오랫동안 발췌하고 곱씹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성인군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내가 원하는 모습을 쌓아나가는 것이었다. 나의 모습을 나 스스로 만들고 싶었다.



매일 자신의 추도문을 읽는 남자



  나의 추도문은 어떠한 글의 내용들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다. 온전히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모습을 담고 나의 모습에 맞게 수정한 것들이다. 쓰는데 오래 걸린 만큼 다양한 방면으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물론 완성된 글은 아니다. 스스로 살아가면서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다짐이나 글도 직접 실행하거나 읽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특히 이 추도문은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의 정수이기에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며 읽는다. 물론 아직 추도문을 내용이 못 미치는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 글을 보며 매일 나 스스로를 튜닝한다.






     사실 추도문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써보면 좋고 의미 있다는 말들. 그게 유서일 수도 있고 사직서일수도 있고 사명서일수도 있다.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나에게는 나의 삶)에 대해 오랫동안 갈고닦으며 글을 완성해보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것 같다.


  10년까지는 아니지만(물론 10년 내내 쓴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일주일,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내서, 내가 살고자 하는 모습을 상세하게 써보는 것은 어떨까? 가끔 누군가 나를 잘 안다는 듯이 "넌 원래 그래"라고 하는 말이 낯설게 들리는 것보다는 "응 난 원래 그래" (내가 의도했으니까)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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