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인간
퇴사한 후 이런 불안감을 겪게 될걸 알았다면
아마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다. 사실 알고는 있었지만 느끼지 못했다.
퇴사 후 임신과 출산 적령기의 여성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과
그 시기에 정규직을 내려놓고 나온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임시직과 비정규직으로만 전전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체감하지 못했다.
내려놓고 나니 보였다.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이.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의 파트타임, 일일 알바를 묵묵히 해내는 그들.
얼마 안되는 보수도 감내하며 받아들이고
때로는 묵시적 멸시가 오가는 상황도 있다는 걸.
그들도 소싯적엔 멋진 커리어우먼이었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걸 보며
코가 찡한 느낌이었다.
모든 것의 이유는 가정과 육아였다.
거대한 파도를 탄 것처럼 쓸려가는지도 모르게 쓸려가고 있었다.
가정과 육아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나도 일면 똑같은 선택을 했지만
이제와서 통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을
잉여인간이 무서운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