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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her ruth Dec 27. 2018

9살의 글쓰기

함께 겪어내는시간들




"엄마 일어나, 엄마 일어나" 매달리는 준호와 한호를 끌어 당겼다. 껴안고 비벼주다 보니 어느새 두 아이는 품에서 잠이 들었고 마침내 나는 겨우 일어났다.

간간히 "엄마 일어나!"를 소리치던 승호만 거실에서 머리를 박고 뭔가를 끄적대고 있었다. 잠이 없고 깨어 있는 동안도 시간 낭비 없이 놀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승호는 내가 누워 있는 것을 절대 용납 못했다. 오늘 처럼 몹시 지친 날 준호는 품에 넣어 주면 비몽사몽인 엄마 속에서 놀다 곯아떨어지기도 했지만 승호는 가장 싫어하는 게 이런 게으르고 느린 무엇이었다.

그러나 이젠 나도 더이상 승호 눈치를 보며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설거지 한번 하고 빨래 한번 돌린 후에도 누워야 할 만큼 기력이 없었다. 승호도 많이 자랐고 동생들과 노느라 정신이 팔린 기회를 노리기도 했다. 나도 승호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잠든 준호, 한호를 뒤로 하고 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거실로 나왔다. 계속 뭔가를 끄적이던 승호는 20줄이나 되는 긴 글을 썼다며 그 성취에 고취되어 글을 낭송해 주겠다고 들고 왔다.    


'나는 엄마 입덧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잘못하면 토하고 또 잘못하면 침대에 눕고 나는 이게 걱정이다. 나는 엄마가 안 토하고 또 침대에 안 누워 있고 우리와 놀아주는 것을 바란다. 지금도 누워 있다. 

아까는 덥고 지금은 바람도 세차게 불어대고 있다. 엄마는 동생과 놀이터에 나가 놀라 하고 또 우리는 엄마도 같이 갔으면 좋겠고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 장난감을 사고 싶다. 이것도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 나는 이 글이 기분을 낫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목이 '엄마 입덧'인 승호의 글을 듣는 내내 마음이 아렷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 온 몸이 멈춰 섰다. 내가 눈이 피로하고 팔이 아프면서도 핸드폰의 메모장에 소소한 삶을 기록 하듯 그것이 내 마음을 위로하고 삶을 정리해 준다고 믿듯 승호도 글쓰기를 통한 치유를 발견한 것일까. 제 스스로? 그것도 이렇게 어린 나이에?


늦게 글자를 익히신 할머니들의 시에서도 가정의 불화를 풀어놓는 아이들의 일기에서도 글쓰기는 조용한 기적을 부르고 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승호와 골이 깊어졌을 때 서로 글을 주고 받으며 화해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모습일까.

지금은 엄마와 이야기 하고 동생과 노는 것으로 마음의 무거움을 해소하면 좋겠다. 그러나 언젠가는 글쓰기 라는 소박한 취미를 통해 힘들고 어려운 시기들을 이겨낼 수 있기를. 삶의 파도를 타고 가는 승호만의 숨구멍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나에게는 참 좋은 경험이어서.

승호야 기다려 줘서 고마워.  


#브런치 북 #아들만 넷 #아들의 글쓰기 #엄마의 글쓰기 #엄마는 입덧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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