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에 카파도키아 열기구 여행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막 동이 트기 시작했으니 인사가 이르진 않죠? 새벽 공기가 차가워서일까요 아니면 날아오를 생각에 두근거려서일까요. 자꾸만 숨이 가빠 몰아쉬게 됩니다. 그나저나 눈앞 풍경, 정말 비현실적이지 않습니까. 어스름한 하늘 위로 깜빡이는 불꽃과 소리, 풍선 부푸는 모습도. 바위뿐인 휑한 땅에 사람들은 어찌나 많이 모였는지. 대단들 합니다. 몇 번째 도전이세요? 어제 오셨다고요, 행운아십니다. 한여름이 아니고서야 날씨 때문에 비행 취소되는 날이 많거든요. 간밤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뒤척이며 날씨를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사실 지금도 얼떨떨합니다.
와아, 저 멀리 보세요. 하나씩 떠오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꿈꿔 온 순간이군요. 청년이 손짓하는 걸 보니 우리 열기구도 준비가 됐나 봅니다. 어서 가시죠, 날아오를 시간입니다.
하늘 위는 정말이지 고요하군요. 사람들의 환호성마저 사그라드니 꼭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기분입니다. 제가 울적해 보였다고요. 감상에 빠져 있었나 봅니다. 그럴 때 있지 않던가요, 간절했던 것이 정말로 실현되면 멍해지고 너무나 기쁜 순간엔 마음 한편 서글퍼지는. 우리 열기구에만 문제가 생겨서 연신 쏘리, 쏘리를 연발할 때는 여기까지 와서 실패하는구나 싶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 뭡니까. 하늘을 나는 기분은 어떤가요. 비행기 안에서 작은 창으로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죠. 소리와 냄새, 뺨에 닿는 바람의 촉감도 느낄 수 있으니.
사진으로 봤지만 열기구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한 바구니에 열댓 명씩은 들어 있으니 하늘 위에서 아침을 맞는 사람이 족히 수백 명은 되겠군요. 다들 어떤 기대로 이 낯선 곳까지 찾아온 걸까요. 지금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요.
와서 들은 얘기인데, 달 탐사를 하고 온 닐 암스트롱이 이곳 괴레메(Göreme) 국립공원 풍경을 보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진작 여기 와 봤더라면 굳이 달에 갈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 유명한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도 이곳에서 촬영할 계획이었다고 하죠. 허가를 받지 못해서 무산됐지만. 만화 <스머프>의 버섯 모양 집이 이 지역의 바위 모양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란 얘기도 있습니다. 하늘 위에서 보니 아름다우리만치 괴이하긴 합니다. 여기 온 지 며칠 됐는데도 매일 아침 낯설어요. 꼭 지구가 아닌 것 같단 말입니다.
카파도키아(Kapadokya)의 독특한 지형에 대해 조금 더 알면 남은 여행이 더 재미있을 겁니다. 특이한 모양도 모양이지만 마치 벌레 먹은 치즈처럼 바위 전체에 구멍이 뚫린 게 보이나요? 저것들이 모두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흔적이라는데, 말하는 저도 사실 믿기지가 않습니다.
오래전 화산 지역이었던 이 곳의 돌들은 화산 분진이 내려 앉아 굳은 응회암이라 쉽게 깎거나 파 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종교 박해나 외세의 침략을 피해 돌을 깎아 굴을 파고 아예 지하굴에 숨어 살았고 그렇게 비밀 도시가 이 땅 곳곳에 생겼습니다. 저 멀리 높게 솟은 우치히사르(Uçhisar) 성은 군사 요새였습니다. 지금은 카파도키아 전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니 가기 전에 꼭 들러 보시지요.
하늘에서는 보이지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지하 도시도 있습니다. ‘깊은 우물’이란 뜻의 데린쿠유(Derinkuyu), 85m 깊이에 2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지하 도시가 이곳 어딘가에 있다죠. 굳이 답답한 지하에서 살아야 했던 이유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 보면 분명 인류의 힘과 집념에 감탄하실 겁니다. 온몸을 있는 대로 쪼그려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굴을 지나면 제법 넓은 방과 복도, 계단들이 펼쳐지거든요. 마치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안에 학교와 식당은 물론 농장, 와인 숙성고 심지어 감옥까지 있었다고 하니 신기할 뿐입니다. 저는 몇 층 내려가보니 폐소공포로 힘들던데 누군가는 그 굴 안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면 대단하기도, 끔찍하기도 합니다.
제가 너무 겁나는 얘기만 했나요?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도 물론 있습니다. 로즈 밸리가 떠오르네요. 노을 때 가면 바위들이 장밋빛으로 물든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이야기하고 보니 가 볼 곳이 정말 많네요. 저는 열기구 하나 보고 왔는데 말입니다.
추천 음식 역시 돌과 관련돼 있습니다. 고기와 채소를 항아리에 넣고 익힌 일명 항아리 케밥. 직원이 칼이나 망치로 눈앞에서 항아리를 가르는 퍼포먼스로 더 유명하다죠. 잘 익은 스튜 또는 카레와 비슷한 맛이니 드시기에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집은 동네 중심부에 있는 아나톨리안 키친(Anatolian Kitchen)입니다. 고양이들의 구걸에 시달리긴 해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 먹는 식사가 꽤 근사한 곳이죠.
내려갈 때가 됐다니, 벌써 90분이 지난 건가요. 아쉽습니다. 비행 전에 몇 번째 도전인지 여쭤봤었죠. 저는 여섯 번 만이었습니다. 카파도키아에 온 건 세 번째고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오늘 비행이 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꿈이었습니다. 드디어 이뤘네요.
비행을 마치고 샴페인을 마시는 것, 이름이 적힌 인증서를 받는 것. 구색 맞추기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군요. 서로의 여행을 축하하고 또 격려하는 마음은 진심이니까. 비행은 끝났지만 하루는 이제 막 시작이니 새로운 꿈을 꾸기에 더없이 좋은 때입니다. 우리 한 번 더 건배하죠.
이 글은 여행 포토그래퍼 김성주 작가가 기고한 글입니다.
김성주 작가의 세 번째 여행지 튀르키에 카파도키아를 잘 돌아보셨나요? 이렇게 멋진 사진과 친근하게 소개하는 여행 칼럼을 보고 나도 이렇게 사진 찍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주저 말고 아래 배너 클릭해주세요. 김성주 작가님이 직접 알려주는 스마트폰 사진 수업 한 번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