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지 국가대표 김진경, 장정배 선수
손은 눈보다 빠를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두뇌 회전이 빨라야 해요. 무슨 이야기냐고요? 브리지 게임 얘기입니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이 즐겨하는 이 게임은 규칙이 복잡해 처음 접하긴 힘들어도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마력을 갖고 있는데요. 특히 바둑, 체스 등 여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마인드 스포츠로서 시니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8일 막을 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덕분에 브리지 게임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고 있는데요. 이번 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각국 선수들과 멋진 대결을 펼친 브리지 국가대표 김진경, 장정배 선수를 만나봤습니다. 시니어 세대로서 첫 태극마크를 달고 일생일대의 경험을 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Q.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김진경 선수(이하 ‘김’): 한국에 돌아오니 몸이 아프더라고요. 사흘 정도 잠만 잤어요. 여성부 일정이 생각보다 타이트하지 않아서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브리지 게임이 머리를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였나 봐요.
장정배 선수(이하: 장): 저도 귀국 후 진이 빠졌는지 계속 널브러져 있었어요. 남자부 경우, 하루에 4라운드 경기를 치렀는데, 1라운드당 2시간정도 소요되거든요. 풀 타임으로 8시간을 플레이 하니까. 정신적,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그 여파가 귀국 후에 몰려와서인지 이틀 정도는 충분히 쉬고, 일상으로 돌아왔죠.
Q. 처음 브리지를 접했을 때 이렇게 힘든 게임인 줄 아셨나요?
김: 몰랐죠.(웃음) 그냥 결혼 후, 남편 직장 동료 아내들끼리 하는 브리지 모임을 통해 처음 접했어요. 처음 해봤지만 재미가 있더라고요. 한참 빠져 있을 때는 해외 선생님한테 이메일 등 온라인으로 배울 정도로 열정적이었어요. 남편 직업상 국내외를 오가는 생활을 많이 해서 취미로 조금씩 해왔죠. 그러다 5~6년 전쯤 남편 퇴직하고 애들 결혼 다 시키고 나니 여유 시간이 생겼어요. 가정주부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보니 브리지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장: 전 알았어요.(웃음) 대학 때 방황을 좀 했어요. 고시 공부도 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죠.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았는데, 그걸 잊기 위해 모 포털사이트 내에 서비스되었던 브리지 게임을 시작했어요. 처음 보는 게임이라 호기심도 일었는데, 당최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아마존으로 브리지 연관 책을 직구해서 독학을 좀 했어요. 무식하게 고시 공부하듯이요. 이후 국내외 브리지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게임을 해보고, 오프라인에서도 실전을 경험해 봤죠. 지금도 느끼는 거지만 참 어려워요. 에너지도 많이 소비되고. 근데 계속 생각나요. 더 잘하고 싶고. 그게 브리지의 매력인 것 같아요.
Q. 살면서 태극마크를 다는 게 평생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국가대표로서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습니다. 먼저 어떤 과정을 통해 선발되었고, 아시안게임을 준비했는지 궁금합니다.
김: 2022년 3월에 경선을 치렀어요. 여성부는 총 6회에 걸쳐서 한 달 정도 진행했고, 그중 1등 팀(6명)을 뽑은 거죠. 운 좋게 저도 포함되었고요. 코로나19로 인해 개막이 연기되었지만, 오히려 연습할 시간이 더 많아져서 좋았어요. 온라인으로 코칭을 받다가 지난 5월에는 인도네시아 코치분을 모셔 와서 직접 배웠어요. 스킬, 테크닉 적인 부분은 물론 운영 시스템 재정립을 하는데, 노력을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브리지가 직업인 선수처럼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것 같아요.
장: 여성부보다는 지원자가 많지는 않아서 선발 기간은 짧았어요. 남성부 또한 개인 지도도 받고, 만나서 팀 훈련을 했죠. 온라인을 통해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코칭도 받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특히 이탈리아는 브리지 선진국이거든요. 오랜 시간 축적된 인적, 경기 등의 데이터들을 통해 각각의 상황에 따른 접근 방법이나 운영 시스템 위주로 배웠죠.
Q. 지난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는데, 그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또 많이 떨렸을 것 같기도 하고요.
장: 아시아·태평양브리지연맹(APBF)이 주최하는 APBF 챔피언십 등 큰 대회에도 참가한 경험이 있는데, 이건 다르더라고요.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경기에 임하는 거니까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도 느껴지고요. 이런 감정에 휩싸이니까 자는 시간 더 쪼개서 연습 더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더라고요.
김: 항저우 도착해서 경기장인 ‘치위한 체스 홀’에 답사를 갔는데, 너무 좋았어요. 브리지 자체가 마인드 게임이라서 선수들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한데, 대회장 자체가 이런 부분을 디테일하게 잡았더라고요. 성적을 떠나 실제 경기 때 마음이 편안하고 집중도 더 잘 되었어요. 근데 경기는 경기고, 저도 국가대표라는 부담감이 밀려오더라고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Q.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기는 어땠나요?
김: 중국, 대만, 홍콩 선수들이 잘하더라고요. 그중에서도 홍콩 팀이랑 경기했을 때가 기억나요. 탑 페어를 만났는데, 자세히 설명드릴 수 없지만 우리 팀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어요. 근데 이상하게 그 팀을 이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파트너와 합을 잘 맞춰서 플레이했는데, 결국 그 게임은 이겼어요. 질 것 같다는 두려움보다는 한번 해보자는 자신감이 생겼는데,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어디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결국 이겼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국가대표라는 부분이 작용한 건 같아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다른 나라 선수들의 연령층이 낮았어요. 거의 손자뻘 되는 선수들하고 경기를 많이 했는데,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너무 좋아요. 경기 집중도는 물론, 상대방 선수를 존중하는 모습 등 배울 게 많았습니다.
장: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도 선수가 있어요. 40년 동안 국가대표로 활동한 분인데, 이번에도 그 선수가 출전했어요. 나이도 많은데, 경기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 열정만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시니어로서 국가대표로서 국제 경기에 참여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 전과 후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 국가대표 이후 가족이나 지인들이 저를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원래 남편하고 아들들은 저의 브리지 사랑을 익히 알고 있어서 그리 놀라지 않았는데, 며느리들이 너무 좋아하고 대단하다고 말해주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운 좋게 아시안게임에 나가게 된 것 자체가 그동안 브리지를 열심히 해서 얻은 대가라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장: 브리지가 애증의 게임이에요. 저는 좋은데 브리지를 잘 모르는 지인들은 도박으로 치부하기 일쑤였죠. 애석하게도 브리지라는 게임은 짧은 시간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게임이에요. 비딩 등 플레이 기초를 배우는 데만 최소 6개월이 걸리죠. 이런 일들을 자주 겪다 보니 제가 브리지를 하는 걸 아내와 아이들만 알게 되었고, 항저우에 가는 것도 우리 가족만 알았어요. 근데 아시안게임이 추석 기간에 열렸잖아요. 제가 고향에 안 내려가니 형제, 친척들한테 전화가 온 거죠. 지금 어디냐고.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니까 깜짝 놀라더군요. 이후에는 저를 그리고 브리지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어요.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
Q. 주변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오롯이 한 이들만 느끼는 기쁨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한 편으론 시니어의 힘을 보여준 사례로도 보입니다. 최근 시니어들이 브리지를 많이 접하고 있는데, 게임의 매력과 긍정적 영향은 무엇인가요?
김: 매력이라 한다면 깊은 몰입감. 이 게임은 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그래서 더 빠져드는 매력이 있어요. 마치 복잡한 문제를 노력해서 푼 후 얻는 쾌감이라고나 할까요. 초보자에게 진입장벽이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처럼 가정주부로 살다가 여가시간이 많아진 분들이라면 한 번 해보세요.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장: 각종 문화센터에서 브리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6~70대분들이 정말 많아요. 플레이 자체의 재미도 있지만, 정신 건강에 좋다는 점에서 하는 분들도 있어요. 브리지는 사고력, 응용력, 분석력, 기억력이 있어야 하는 게 특징인데, 상대방의 패, 카드 수량 등을 잘 기억하고 플레이해야 이기는 경기이기 때문에, 집중력과 기억력을 기를 수 있어요. 특히 나이가 들면 집중력도 약해지고 기억력도 감퇴하는데, 브리지를 하면 계속해서 집중하고 기억해야 하니까 치매 예방에도 좋아요.
Q. 두 분에게 올해는 잊지 못할 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짧은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 들려주세요.
김: 아시안게임은 좋은 추억으로 간직해야죠. 이젠 10월 25일부터 3일간 제1회 서울컵 토너먼트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라 꾸준히 연습하고 있어요. 브리지를 사랑하고 오래 하려는 마음으로 조금씩 실력을 업그레이드할 예정입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오롯이 저를 위해서.
장: 저 역시 서울컵 토너먼트 대회에 참가해서 실력을 겨루고, 브리지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는 브리지를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한 커리큘럼 제작에도 힘쓸 계획이에요. 그 시작으로 브리지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초보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교재를 만들 계획입니다. 앞으로 브리지 게임에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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