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유발자와 같이 사는 법
살면서 나에게 가장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존재는 단연 남편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맞벌이 부부인 우리의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자꾸 부딪치게 되는건 정말 단순히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일까 ....... 연애할때는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었고 그의 입을 거치는 말은 무엇도 놓치기 싫어 귀 기울였는데 이제 나에게 그는 어떤 존재일까
어제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아이들을 태우고 드라이브를 다녀오는 길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가벼운 잔소리도 못 흘려듣고 발끈하고 만다. 둘째 아이가 답답하다고 벗어둔 마스크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에는 핸드폰이 있었는데 그게 못마땅했던 남편, 결국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기 전에 "핸드폰으로 마스크 문지르지마"라며 한소리한다. 핸드폰과 마스크가 둘다 내 손에 있었지만 결코 문지른적 없는 나는 "잔소리좀 하지마"하며 날선 반응을 하고
요즘 우리 부부의 대화 패턴은 늘상 이런식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그는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내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하게 되고 요즘 나는 그 작은 부분도 못 참고 발끈해서 싸움이 나고 만다. 남편은 올해 부장을 맡은 나에게 새로 맡은 일이 힘드냐며 그렇게 힘들면 내년부터는 부장을 하지 말라며 내 잦은 짜증을 내 신변의 문제의 탓으로 돌리지만 난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당신 태도때문에 내가 화를 내고 있는데 그 마저도 안받아들이고 또 내 문제로 돌리는 건가'하는 생각에 심통이 난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는 연애할 때도 말하기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때는 섬세로 느껴졌던 그 부분이 이제와서 잔소리로 느껴지는거는 그가 변한것일가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이 변한 것일까
요즘 나는 사람 마음에도 용량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내 마음도 한계치라는게 있는데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다보니 남편에게 갈 용량이 바닥나 버린 건 아닐까
그리고 그건 남편도 마찮가지이지 않나 그래서 우린 사랑과 배려를 주지는 않고 내가 힘드니 서로에게 달콤한 감정을 받고는 싶어서 떼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니였을까 ......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어제 남편이 말하는데 듣기도 전에 짜증부터 치미는 나를 보며 흠칫 놀랐다. 내 눈앞에 있는 남자는 사랑해서 한시도 떨어지기 싫었던 존재에서 짜증유발자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명명한건 나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교육 철학이 있다.
아이의 부정적인 면을 무시하고 긍정적인 면에 주목하라
저명한 교육심리학자가 한 이 말을 대학교 다닐때 부터 마음에 새겼고 아이들을 만날 때는 항상 그 말을 되뇌이며 행동하곤 했다. 그 덕에 나는 제법 인자하고 너그러운 선생님이자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저 철학의 적용 범위를 남편에게 까지 넓혀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남편이 내 아이는 아니지만 내 아이와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의 한계치 안으로 집어넣어 볼 생각이다. 내 아이와 비슷하게 내 사랑과 존중에 목말라하는 존재, 내가 예뻐해 주고 우쭈쭈해줘야 자존감이 올라가는 존재, 하지만 아이들 만큼 사랑스럽지도 귀엽지도 않고 나를 깊은 빡침으로 몰아가는 존재
어쩌겠는가. 나도 그에게 그럴 것인데
이제 더이상 그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며칠 안감을 머리에 빙글빙글 안경을 쓰고 트림을 하는 나를 그도 참아주고 있지 않은가. 더이상 예쁜 원피스를 입고 뽀얀 웃음을 머금은 아가씨가 아닌건 나도 마찮가지일테니 그를 좀 봐주기로 했다.
짜증유발자가 반성과 자기 성찰을 하고 변하기는 불가능할테니 내가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좀 미운 아이가 내 울타리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해야겠다. 많이 말안든는 아이가 우리반에 왔다고
어쩌겠는가 마음에 안들어도 내 반에 들어온 내 아이인것을
코로나19가 남기는 것은 바이러스에 대한 대처법만이 아니다. 같은 공간에서 우리 부부가 평화롭게 숨쉬는 것이 바이러스를 대처하는 것 보다 시급하다.
나는 오늘부터 그를 남편을 사랑이란 감정의 범주에 넣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휴 ...... 잘 할 수 있을까
시작도 전에 지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