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밖에 없는 곳이라서
글쓰기는 나에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독자가 나인 것도 글쓰기로 쳐 준다면,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글쓰기와 함께했다. 그러나 시대마다 변하는 대세 플랫폼을 하나씩 거치면서도, '이거다' 싶은 공간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싸이월드, 페이스북, 블로그, 인스타 안에서 나의 글은 진정한 글쓰기보다는 개인적 끄적거림에 더 가까웠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로 돈을 벌고 싶다! 는 다음 일이다. 꾸준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서, 마음이 들뜬다.
싸이월드 2003년 ~ 2008년
'새벽 두 시' 별명을 얻은 곳
중학생~고등학생 시절을 싸이월드에 파묻혀 살았다. 사춘기 시절을 싸이월드로 풀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기에 내 모든 것을 쏟아냈다. 폴더를 마구 생성해 대서 더 이상 새로운 폴더를 생성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글은 글이 아니었을 것이다. 절제하지 못하고 터져 흘러나오는 감정들을 겨우 추슬러 모아둔 공간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이 당시 친구들로부터 얻은 별명은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 두 시'- 아침이든 낮이든 밤이든, 내가 글을 쓰면 그 시간이 실제로 언제든 마치 새벽 두 시 같은 느낌이 든다고 붙여준 별명이다. 나의 정체성 같아서 마음에 든다. 근원적 우울이 밑바닥에 짙게 깔려 읽으면 어딘가 애잔함이 물씬 배어있는 글.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낙관적 현실주의라 칭한다.
페이스북 2009년 ~ 2015년
글보단 기록에 가까운 곳
대학생 시절,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패기 넘치던 시절을 함께한 플랫폼이다. 교환학생을 가고, 여행을 다녀오고 하면서 처음의 기록들이 많이 저장되어 있다. 이 시기엔 글을 썼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단지 그저 일기장 같이 기록을 위한 기록이었달까. 대신 이때는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전공 수업을 통한 글쓰기를 많이 경험했다.
인스타그램 2014년 ~ 현재 : 사진을 올리라니까 왜 글을...
읽어 주는 사람도 많지만 어딘가 아쉬운 곳
인스타그램은 글쓰기에 최적화된 플랫폼은 아니다. 나는 아마 이 세계에서 인스타를 제일 잘못 쓰고 있는 사람 10위 안에 들 것 같다. 줄줄이 긴 장문의 글을 자주 올리니 말이다. 게다가 인스타는 보통 인생의 최고로 행복하고 극적인 순간들을 사진으로써 공유하는 대단히 즐거운 순간의 기록 창고인데, 나의 글쓰기 영감은 주로 불편함이나 울적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내 인스타는 항상 전반적으로 차분~하다. 행복한 기록을 올린다기보다는, 떠오르는 일상적 영감들이 장문의 글로 풀어낼 수 있을 만큼의 수준으로 정제되었을 때 그것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찾아 같이 올린다. 주변 지인들, 특히 회사 동기나 동료들 중에 나의 글은 꼭 끝까지 읽게 되며 항상 뭔가 깊은 울림이나 공감이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 와중에도, 장문의 텍스트가 장려되지 않는 공간에서 꿋꿋하게 글을 올리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고 아쉬웠다.
블로그 2019년 잠깐, 2022년 잠깐, 2024년 잠깐
검색이 돼야 하니 광고적 속성이 강한 곳
위와 같은 이유로 시도했던 것이 블로그이다. 브런치가 있기 전, 글 좀 쓴다 하는 사람들 혹은 글이라는 것이 환영받는 곳은 그나마 블로그였다. 유튜브의 대척점에 있는 느낌이랄까. 나 역시도 블로그를 도전해 봤다. 글을 쓰고 싶어서. 그러나, 이상하게 블로그에서의 글쓰기는 지속되지 않았다. 잠깐 올리다 말고 잠깐 올리다 말고였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블로그가 글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광고적 글'이나 '마케팅적 속성을 띄는 글' 중심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역시도, 글을 쓰긴 쓰는데 자꾸만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의 클릭을 유발하는 정보 전달력을 갖춘 글을 쓰게 됐다. 아무래도 블로그가 '검색'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네이버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조회수 1,000도 찍고, 유입도 잘 됐지만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잘하지 않았다.
브런치 2024년 ~ 현재
글밖에 없는 곳, 그래서 기쁜 곳
그러다 찾은 것이 브런치이다. 놀랐다. 정말 '글'밖에 없는 곳이라서. 그리고 기뻤다. 이런 곳이 있어서. 그리고 여기를 좋아하고, 계속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브런치가 좋은 건 글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고나 정보 전달(물론 글에서 그 속성을 띄는 것은 있지만)만이 목적이지도, 검색에 기반하지도 않은 그저 순수한 글로써 돌아가는 곳이라 참 좋다. 앞으로 많이 쓰고, 많이 읽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