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고 순수해서 때때론 감동적이다.
요즘 요리에 푹 빠졌다. 거창하게는 아니어도 소소하게, 매 끼니를 직접 해 먹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하면서 느끼는 요리가 좋은 이유는 이렇다.
1. 정직하다.
인풋만큼 아웃풋이 나온다. 매우 정직한 과정이다. 소금을 넣어야, 짠맛이 난다. 소금을 안 넣으면, 짠맛이 안 난다. (재료 본연의 맛에 따라 영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는 그렇다.) 소금을 많이 넣으면 짠 많이 강해지고, 적게 넣으면 당연히 짠맛이 덜하다. '당연한 거 아니야?' 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풋만큼 아웃풋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가? 인풋을 적게 넣고도 아웃풋을 크게 얻으려고 요령을 부리거나 잔꾀를 쓰기도 하고, 어쩔 때는 인풋을 넣었는데도 아웃풋이 없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의 욕망과 술수가 판 치는 세상에서, 이 정직한 과정은 때때로 왜곡된다.
그러니 요리라는 것이, 내가 설탕을 넣어야 단 맛이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정직한가. 여기서 나는 어떠한 순수함을 느끼고, 감동도 느낀다. 너무 간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요리가 그렇고, 그래서 따숩게 느껴진다.
2. 내가 직접 주도권을 잡고 컨트롤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컨트롤이 용이하다. 물론 어느 정도의 요리 실력이나 노하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 디폴트로 치고,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어느 정도 재료가 필요한지 양 조절 같은 것) 넣은 만큼 정직하게 맛이 나오는 것이 요리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스스로 레시피를 설계할 수 있다.
난 싱거운 요리를 좋아한다. 원재료가 갖는 본연의 맛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조미료는 적게 넣는다. 버섯, 감자, 호박, 두부, 계란, 등등. 자체가 가진 식감과 맛이 참 좋다. 그래서 그걸 최대한 살리고 싶다. 자연스레 맛소금보다는 일반 소금을 넣고, 설탕은 주로 넣지 않는다. (우리 집엔 애초에 설탕이 없다.) 내가 하는 요리 중에는 빨갛고 검은 것들 보다는 슴슴하고 멀멀한 비주얼이 많다.
직접 요리를 할 때는 내가 원하는 최종의 맛을 컨트롤할 수 있다. 식당에서처럼 제발 이 음식이 짜지 않기를 기도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마음도 편안하다. 물론 망했을 때도 웃으며 먹게 된다. '다음번엔 마늘을 덜 넣어야겠구나'하면서. 어떤 인풋이 잘못되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음번에 적용이 되고 그렇게 성장도 가능하다.
이것이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다소 거창한 이유이다. 정작 내가 만드는 요리들은 거창하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