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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봉 Oct 10. 2024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장 후회되는 것

어떤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난 1월,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2월엔 외할머니, 4월엔 외할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다. 마치 약속이라도 하신 것처럼, 세 분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우리와 이별했다.


며칠 전 조카가 태어났다.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면 미친 사람처럼 귀엽다고 정신을 못 차리면서, 아기들한텐 그리 애정이 안 가던 나에게 사람들이 하던 말이 결국 맞았다. '네 조카 생기면 다를걸?' 갓 태어난 조카의 얼굴을 보는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사랑하는 내 동생을 빼닮은 아이,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아니 사랑스럽다는 말 그 이상이었다. 신비로웠다.


가족 카톡방은 매일 같이 아가의 사진과 영상으로 도배되었다. 야근으로 바쁜 퇴근길마다 나의 힐링 타임은 엄마 아빠가 보내오는 사진들을 하나씩 풀어보는 것이었다. 날마다 조금씩 자라고 있는 아이, 세상을 가득 담을 기세로 말똥 한 그 눈빛을 보면 하루 종일 쌓인 모든 번뇌와 고통이 눈 녹 듯이 풀렸다.


동생한테는 말하지 못했는데, 가끔 다른 이유로 울컥했다. 가족 중 아무도 그 말을 하진 않았는데, 혹시 나처럼 누군가 생각했어도 차마 삼켰는가도 모르겠다. 가끔씩 아기의 얼굴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였다. 눈매와 입매가, 마지막까지도 정정하시던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떤 시간은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 간농양으로 응급실에 실려가신 외할아버지의 입원 닷새쯤, 주무시다 영영 평온히 잠들어버리신 외할머니를 나는 다시는, 볼 수 없다.


한 가지 후회되는 건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 할머니에 대해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지 못한 것. 할머니의 어린 시절, 힘들었던 날, 좋았던 날, 할아버지와의 연애, 결혼, 어떻게 만나셨는지, 어떤 점이 좋으셨는지, 또 싫었는지, 미웠는지,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지, 이유가 뭔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외삼촌은, 이모는, 할머니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꽃은 뭔지, 일기는 왜 쓰셨는지, 어떤 날씨를 좋아하는지, 어떤 계절을 싫어하는지, 어떤 과일을, 음식을,... 할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할머니와 이별한 것이 사무치게 후회스럽다.


어떤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조카의 얼굴에 가끔씩 비치는 외할머니를 나는 많이 그리워할 것이다. 나누지 못한 대화들을 아쉬워할 것이다.


나와 달리 기회가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남은 시간을 할머니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으로 보내면 좋겠다. 언젠가 맞닥뜨릴 이별 후에, 나처럼 가슴 아프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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