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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서

시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by 온기

「다섯 번째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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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오래전부터 내 삶 속에 존재했지만, 나는 외면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은 젊다는 착각으로, 언젠가는 해야지 하는 미룬 마음으로. 하지만 결국, 시간은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다만 그것이 상처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다.


스무 살에는 타인의 시선이 전부였다. 삼십이 되어서는 가족과 일, 사회적 책임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사십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누구의 인정을 바라지 않고도 온전한 나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껏 내가 참아왔던 것들, 남에게 맞추느라 외면했던 내 감정들. 사십이 되기 전까지는 무심코 넘겼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도 묻는다. ‘정말 괜찮은지?’, ‘이 선택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지?’ 그리고 가능하면, 나를 먼저 돌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애쓴다 해도 결국엔 텅 빈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영원한 우정과 사랑이 존재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사십이 넘으면서 깨달았다. 관계는 흐르는 것이고, 어떤 것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라는 걸. 가끔은 아무런 이유 없이 멀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애써 잡으려 해도 끝내 손에서 놓쳐버린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떠나는 인연이 있으면,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는 것.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언젠가 해야 할 일들을 미루며 살았다. 언젠가 여행을 가야지, 언젠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언젠가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그러나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삶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고,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 있을 거라 착각하지만, 어느 순간 거울을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씩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커다란 목표가 아니어도 괜찮다. 작은 기쁨을 쌓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보는 것,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는 것. 그것이 결국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나 진정으로 가슴에 새겨지는 것들은 상실과 후회, 그리고 고요한 깨달음 속에서 온다.


사십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 하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가끔은 실패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한다. 남은 날들은 조금 더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기다리지 않겠다고.


그러면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 거울 속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평온한 얼굴로 나를 바라봐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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