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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건네진 것들이 사회를 바꾼다

계단 끝, 무거운 카트를 함께 든 그 순간부터 세상은 조금 다정해졌다

by 온기

「스물세 번째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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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아래, 숨을 몰아쉬며 오르던 어르신 한 분.
손에 든 카트는 무겁게 덜컹거렸고, 발걸음은 자꾸 멈칫거렸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다가가 카트를 들었다.
말없이.
어르신은 놀란 얼굴로 그 사람을 바라봤지만, 이내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계단 위를 향해 걸어갔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마치 오래된 소설의 한 문장처럼,
뇌리에 남아 마음을 두드리는 그 짧은 순간.


우린 얼마나 자주
이런 사소한 친절들을
놓치며 지나가는 걸까.




문득, 도시의 표정이 떠오른다.
무표정한 얼굴들,
서로를 보지 않는 눈동자,
이어폰으로 막힌 귀,
깊숙이 파묻힌 고개.


우리 사회는 어쩌면
너무 빠르게 굴러가는 바퀴처럼
서로를 밀치며 달리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작은 친절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온전히 바꿔버리는 걸
자주 목격한다.


버스에서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손,
골목에서 무심코 길을 알려주는 목소리,
떨어진 물건을 조용히 주워주는 낯선 손길.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사회를
아직 인간답게 만드는 것 아닐까.




친절은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무게는 묵직하다.


지친 하루 끝,
누군가 건네준 "오늘 많이 힘들었죠?"라는 한마디에
우리는
가끔 울컥한다.


왜냐면 그 말 안에는
"나는 당신을 보고 있어요"라는,
우리가 너무 오래 갈망해온 문장이 숨어 있으니까.


우리는 보이고 싶어 한다.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눈에 스치더라도
한 번쯤 머물기를.




친절은 선택이 아니다.
어쩌면 생존이다.


무관심이 익숙해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온기 같은 것.


그래서 더더욱,
우리 사회에는
이 사소하고 조용한 다정함이 필요하다.


그게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건네니까.




어떤 날엔
작은 친절 하나가
눈물처럼 밀려온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믿는다.
때로는 무너진 채로,
때로는 모른 척 지나가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조용한 친절이
내 마음을 덮어줄 거라는 걸.


그러니까
조금은 천천히 걸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무거운 하루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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