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벌 다 중학생 때 아버지와 사러 갔었다. 하나는 동네에 있는 옷 가게에서 산 오리털 패딩 잠바였고, 나머지 하나는 대형마트 할인 코너에서 산 청바지였다.
우리 가족에게는 구입을 할 때, 옷의 품질보다는 가격표의 숫자가 작은 것이 중요했다. 그때는 단 돈 몇 만 원이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아버지와 덜덜 떨면서 옷을 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입는 대부분의 옷은 친척분이 보내주신 옷이었다. 속옷이나 양말 등은 바자회나 벼룩시장에서 부모님이 사 오셨다. 친척집에서 보내주신 옷은 대부분 몸에 비해 많이 컸지만, 부모님이 말하기를 난 어떤 옷이든지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부모님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셨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늘 당당했다. 또한 당당하려고 노력했다.
고등학교 때는 노스페이스 바람막이와 패딩이 유행이었다. 교복 재킷 안에 입는 후드 집업도 사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만, 부모님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뭘 입어도 당당하고 잘 어울린다고 스스로를 다독였고, 유행을 좇는 문화를 비판하면서 나를 지켰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부모님 지인분이 운영하는 음식점에 가서 외식을 했다. 같이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 팔아줄 겸 들르곤 했는데, 어머니, 아버지는 고기를 굽기만 하고 거의 드시지를 않았다. 회를 먹으러 가도 샐러드와 야채만 드셨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 보고 좀 드시라고 화도 내고, 고기를 몇 점 집어서 그릇에 옮겨드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도 외식을 하러 가면 여전히 잘 안 드시고 나를 먹이려고만 하신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아내와 식당을 가면 아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 먹는 모습을 보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나한테는 당연하지 않은 일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반 친구 한 명이 방학 때 부모님과 옷을 산 이야기를 했다.
20만 원 정도의 옷을 샀다고 하면서 친구들에게 별거 아닌 듯 이야기했는데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그 이야기가 그때로부터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날 만큼 그 당시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옷 가게에 가서 옷을 사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친척분이 보내준 옷을 입거나 어머니, 아버지가 어디서 가져온 옷을 입었기 때문에, 옷을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가게에서 옷을 사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고3 때 수학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돈을 내지 못해 그만두게 되었다. 과외 선생님으로부터 밀린 2주 치 수업료를 달라는 전화를 몇 번 받고 나서, 죄송한데 정말 드릴 돈이 한 푼도 없다고 사정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그 대학생 선생님도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했을까. 제대로 비용을 지불하지 못한 모든 분들께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
학창 시절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살얼음판 위를 걷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공부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하지만 힘든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악바리 정신이 있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할 때 이를 악물고 끈질기게 매달렸고,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얻은 교훈과 태도, 습관들은 지금은 더욱 강화되어 나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가치 있는 것들은 결코 쉽게, 짧은 시간 안에 얻어지지 않는다. 성취하는 방법은 모두 알고 있지만 제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끈질기게 노력하는 사람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