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한발자국씩 앞으로, 그림이맘 이야기
그림이가 3살 되던 해.
어느덧 남편의 학업도 막바지에 다다라 졸업식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셨던 한국에 계신 시부모님께서 입국을 재촉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4남 6녀 중 아홉째인 막내아들을 타국에 보내놓고 얼마나 보고프셨을까.
그래서 우리 가족은 예정보다 일찍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다.
입국한 다음날부터 그리웠던 가족들과의 모임으로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 하루 하루가 한달이 되어갈 때 쯤.
시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하셨다.
처음으로 큰일이란 걸 겪었다.
그런데다가 배우자를 잃은 충격에 시어머니의 건강이 점점 안 좋아져 몸 져 눕게 되셨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병수발은 그 날로 내 몫이 되었다.
그림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 아이를 아파트 1층 놀이방에 보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이 상황에 점점 지쳐갔다.
혼자 모든 걸 감당했고,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생각해 주지 않았고,
버틸 힘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도 돌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 또한 나와 같았나 보다.
아이는 내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고,
나는 아이의 손짓을 보지 못했다.
아이는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있었고,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26년간 한국에 살다가 외국에 몇 년 머물다 돌아오는 것이기에 쉽게 한국 생활에 적응할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 생활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와 아이에게 녹록치 않았다.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