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선물, 80평 쓰레기집 (1)

프로젝트의 서막

by 옹심

저는 공간기획자입니다. 그 중에서도 현재는 숙박시설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조금 딱딱하지요? 저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호텔과 모텔 등, 여행가서 묵어가는 숙소들을 되살리고 있어요. 클라이언트 분들의 고민을 같이 들여다보며, 운영과 시설 측면을 두루 고려해 도와드리는 일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저의, 저를 위한, 저의 가족을 위한 주택 살리기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한편으로는 크게 안도가 되었습니다. 지금 재직 중인 홀핀플레이스에 이르기까지, 바닥에서 구르며 배워온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90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저장강박증을 오래 앓으셨어요. 지금 벌써 4개월차, 이 집에 심폐소생을 하며 살려내는 이야기는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출처: freepik)


이미 빈집, 쓰레기집, 특수청소, 유품정리라는 단어들이 익숙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고령화되었기 때문이지요. 젊은 층조차도 고독사나 우울증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 이야기에는 누군가에게 분명히 지금 당장, 혹은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 여지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서론은 여기까지. 가족간의 사사로운 이야기는 싹 들어내고,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첫날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말 그대로였습니다. 아버지가 수십 년간 혼자 지내시던 80평짜리 쓰레기집이 덩그러니 제 숙제가 되었어요.


소유권 문제부터 세금, 건물 상태, 가족 간 얽힌 감정들, 이웃과의 갈등, 위생 문제까지 - 복잡한 이슈들이 한데 뒤엉킨 이 집이 언젠가 문제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이른 타이밍에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2월, 아버지께서 작고하시고 잠시 몸과 맘을 추스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4월 어느 날, 언니와 오빠와 셋이서 오랜만에 쓰레기집에서 모이기로 약속했습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와.
집이 정말 상상 초월일 거야.




사실 어릴 적에도 아버지는 저장강박 경향이 꽤 뚜렷했고, 마지막 방문 당시에도 이미 내부 상황은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싶었던 수많은 시절들이 있었습니다만, 특히나 연세드신 분들의 저장강박증이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심리적인 문제가 결부되어 있고, 제가 느꼈던 것은 아버지께서 그 물건들을 '확장된 본인'처럼 생각하신다는 것이었어요.


(출처: freepik)


그래서 물건을 버리려고 하면 버럭 화를 내시거나, 크게 상심하시면서 결국 다시 빈 자리를 물건으로 채우기 마련입니다. 근본적인 심리적 해결도 쉽지 않구요.


그렇게 연세드신 분들이 역정을 내게 되시면, 심폐기관이 특히 약화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심신에도 크게 무리가 가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지켜볼 수 밖에 없던 과정이었어요.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온 쓰레기 집이었지만, 막상 현관문을 열었을 때 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을 열었던 쓰레기집은, 어디가 통로인지 알기가 어려웠죠. 하지만 동시에 후각이 제 맘을 조금은 달래주었답니다.


그래도 냄새는 안 나네!


천만다행으로 음식물이 썩어가기보다는, 정말 말 그대로 그 집은 '버려야 할 물건이 가득한 쓰레기집'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겨우겨우 물건을 헤치고 저벅저벅 다니면서, 대략적으로 어느 방에 어떤 용도의 물건이 모여있는지 조금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


* 이 부분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특수청소 업체를 통해 특수청소와 유품정리를 병행해야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버리면 안되는지 미리 가이드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진으로 보이시나요? 몸을 지지하고 서서 촬영이 가능했던 공간에서 찍은, 당시 쓰레기집의 극히 ‘일부’입니다.


딱 봐도 일반 사람이 시간내서 치울 양은 절대 아니다, 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혹시나 몰라 언니오빠와 반나절 가량을 쓰레기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머물렀습니다. 모든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짐이 가득한 상태였지만, 그나마 바닥이 보이는 부엌에 자리를 잡았어요.


상속이 진행되지도 못한 상황이라 가방이나 서류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의 상속은 매우 전산화가 잘 되어 있어 한번에 금융 내용을 온라인에서도 조회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특수한 조합이나 계, 남아있는 물품 대금 같은 것은 일일이 자료를 확인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여기서 잠깐, 상속세는 신고 기한이 명확합니다. 고인을 보내드린 아픔으로 쉽지 않겠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빠르게 진행할수록 좋습니다.


1. 상속세 신고 기한은 ‘사망일이 속한 달의 말일’ 기준으로 6개월 이내
2. 기한 초과 시: 무신고가산세 20%
3. 지연 납부 시: 납부불성실가산세 연 9.125%




그렇게 손가락이 쑤시도록 6시간 동안 가방과 서류를 뒤지고, 썩어서 터질 것 같은 음료들은 일일이 버리며 분류했지만 티도 나지 않았습니다. 허탈할 정도였죠.


XX 아, 이 집 예전에 참 예뻤어.
꼭 다시 살아나는 걸 보고 싶다.



여러가지 연유로, 이 집의 심폐소생은 오롯이 저의 손에 주어졌습니다. 언니오빠, 그리고 남아계신 어머니, 그동안 불편을 겪었던 이웃분들을 위해 다짐하며 ‘80평 쓰레기집 프로젝트’의 첫 날이 끝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이제 다음 단계로 빨리 넘어가야겠다는 마음 뿐이더라구요. 특수청소를 최대한 여름 전에 끝내야 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인데요.


그동안 각종 근린생활시설, 숙박시설 등의 지점개발과 운영 업무를 하면서 경험했던 것은 '여름철 고통'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출처: freepik)


특히나 쓰레기로 인한 벌레, 악취, 곰팡이, 짐을 옮겨야 할 때 큰 장애물이 되는 비, 태풍, 폭염, 누수 등, 현장작업은 여름엔 피하는 게 답이니까요. (TMI: 콘크리트 공사의 경우는 최대한 겨울을 피해야 합니다.)




앞이 깜깜했습니다. 저도 특수청소며, 이런 유형의 주택을 리모델링 진행하고 중개하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뚜벅이인 제가 멀리 있는 이 쓰레기집 현장을 왔다가하며 회사 업무에도 충실하고, 한편으로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가족 모두의 미래와 연결된 변수임엔 틀림없었죠.


이미 불안과 우울로 병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심장은 쿵쾅거리며 압박이 다가왔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