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이미 파이어족

0세대 파이어족이었던 아빠

by 온행

파이어족.

요즘 가장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단어다.

꿈을 이루고 파이어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파이어족이 되고 싶어 일을 하는 세상이다.


20년전쯤 파이어족이라는 단어가 있었다면,

친정 아빠가 1세대 파이어족이었을텐데 싶다.


성인이 되자 마자 서울에 상경해,

전기 관련 일을 배우고,

00공단 근처의 서울 변두리 동네에서

전파사와 가게 안쪽에 딸린 쪽방에 신혼살림을 차려

24살에 아빠가 된 나의 친정 아빠.


고된 노동과 지독한 절약 정신으로 일상을 보내면서도

어린이날에는 꼭 놀이공원에 데려다 주고,

여름에는 바다로 휴가를 떠났던 사람이다.


그 쪽방에서의 기억이 워낙 강해서,

나는 우리 집이 줄곧 가난한줄로만 알고 살았다.


8살때 분당의 아파트 청약이 물꼬를 터주었고,

잦은 이사로 집을 넓혀 가더니,

고등학교 2학년때에는 동작구의 한 대로변에 있는 6층짜리 상가 건물을 가리키며

"여기가 우리가 이사갈 집이다." 하시는 것 아닌가.


그때의 아빠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이니,

40대 극초반의 젊고 건강한 나이에

생활비를 넘어서 저축까지 가능한 불로소득을 마련한 것이다.


그 후의 아빠의 행보는 실로 놀라웠다.

본업은 거의 하지 않고,

하루에 헬스, 배드민턴, 자전거등의 운동을 순회하고,

일 없이 돈과 시간이 남는 분들과 교우 관계를 쌓고,

더이상의 대출도 투자도 거부한 채,

인생을 즐기는 것 아닌가.


노동소득과 투자에 열심이지 않았으니,

사치할 돈은 여전히 없었다.

다만 생활비와 교육비가 감당되었으니 가정경제는 잘 굴러갔다.


경제생활을 시작하고, 특히 결혼 후 돈공부를 하면서부터

아빠의 그런 행보가 아쉽기도 했다.

본업에 좀 더 열심이었다면, 우후죽순으로 오픈되었던 서울의 아파트 청약을 한두개쯤 넣어보았더라면, 근처 동네의 미분양 아파트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더 큰 투자를 했더라면.

왜 아빠는 딱 거기에 만족하고 즐기기만 하며 살았을까.


지금 와서 보니,

아빠의 인생이 파이어족 그 자체였다.


자산을 늘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시간적 자유를 가지고 인생을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


20년의 노동으로,

50년의 남은 인생에 자유를 설계한 아빠의 선구안에 감탄한다.

단칸방에서 네 식구를 먹여살리는 각박한 삶 안에서도

매년 여름휴가를 즐기고, 어린이날의 살인적인 줄서기를 기꺼이 감당했던,

인생을 즐기려는 본능에 충실했던 것이 그에게 인생의 자유를 가져다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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