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남기는 돈 쓰는 법

feat. 거지되는 기적의 계산법

by 온행

나는 타고나기를 조금 짠순이로 타고난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용돈기입장'의 쓸모를 학교에서 배운 후로, 늘 수입과 지출을 나누어 용돈기입장을 썼다.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돈을 받아 쓰는 무계획이 싫어서

한 달 단위로 용돈을 달라 요구했고,

매달 얼마씩 용돈을 남기는 걸 인생의 낙으로 삼았다.

(두살 차이 나는 동생은 용돈 받은지 일주일만에 모두를 탕진하고, 나에게 돈을 빌려가기 일쑤였다.)


대학교때도 과외비를 모아서 몇백의 돈을 모아 졸업했고,

ELS며, 차이나주식펀드에도 돈을 넣어보곤 했다.


하여간 어렸을 때부터 돈에 관심이 엄청 많았던 듯.

(그랬던 것에 비하면 크게 부자는 못 된 것 같다...)


남편도 사치스럽지 않은 성정을 타고 났지만, 거슬리는 소비 습관이 몇 개 있었다.

첫째는 '작은 돈은 작은 돈, 큰 돈은 큰 돈'으로 생각하는 습관이었다.

온 방에 불을 끄고 다니는 나에게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러냐'며 면박을 주거나,

불 끄고 다니라는 내 항변에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러냐'며 억울해 하는 것이다.

반면에 여행이나, 학비나, 자동차 구매나, 가전 제품 구매 같은 큰 돈이 들어가는 일에는 '너무 큰 돈'이라며 미적거렸다.

나를 향해서는 '작은 돈은 엄청 아끼면서 쓸 때는 크게 쓴다'며 별종 취급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은 사용 횟수로 나누어 '한번 쓰는 데 얼마'라는 식으로 물건 값을 작게 쪼개 계산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편이 생각하기에는 필요한 물건이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구매할 때 튀어나오는 습관인데,

예를 들어 자전거를 산다고 하자. 200만원짜리 자전거라면 한달에 4번만 타도 1년에 50번 가까이 탈 수 있고, 그러니 한번 탈 때 4만원짜리밖에 안된다는 식이다.

한달에 8번을 탄다면 그 값은 절반으로 줄어들어, 2만원짜리 자전거가 된다.

이마를 탁 치게 되는 기적의 계산법이다.


나는 그것을 '거지되는 돈 쓰는 방식'이라 칭하며 절대 불가를 외쳤다.

그런 식으로 치면 온갖 사치스러운 가구를 들여놔도, 매일을 쓰며 십수년을 쓸 것이니 가격이 0에 수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면 모든 물건에 대한 소비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 돈이 모이기는 커녕 고이지도 않는 삶을 살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돈이 안 모이지'하는 말이나 할 것이고.


내가 소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단순하다.

쓸모 없는 것에는 쓰지 않고, 가치가 남는 일에는 쓴다.


쓸모 없는 것은, 돈을 쓰고 나서 남는 게 없는 것이다.

내가 타고난 현명한 소비자라서 가지게 된 원칙이 아니라, 내가 20대 초중반, 처음 '내 돈'을 손에 쥐고 살 때의 시행착오로 깨닫게 된 것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시간을 돈으로 산다며 택시를 탄다거나,

습관적으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소비.

계절마다, 외출할때마다 '한번 볼까~' 하며 옷가게에 들어가서 옷을 사는 습관도 버렸다.

옷이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유행에 따라가려고, 재미와 습관이 버무려진 유희의 일종으로 하는 쇼핑이기에 가치는 커녕, '옷장은 가득 채웠는데 입을 게 없는' 옷을 쌓아두는 꼴이다.

귀여운 문구류, 고급지지도 튼튼하지도 않은 예쁜 악세사리들과 가방들도 방정리의 대상이 된다는 걸 경험하고는 절대 사 모으지 않는다.

온갖 공과금은 또 어떤가.

아낄 수 있는 돈의 크기와 상관없이, '쓸모 있는 데에만 쓴다'는 원칙에 위배되므로,

수도꼭지도 꼭꼭 잠그고, 양치컵을 쓰고, 조명은 필요한 뎀나 켜고, 멀티탭의 빨간 표시등은 꼭 끄고 잠든다.


반면에, 가치가 남는 일에는 아까운 마음 없이 돈을 쓴다.

나에게는 대학원과 여행이 그랬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대학원 과정을 병행하면서,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학비로 소비했다.

대학원에서 받은 석사, 박사 학위는 영원히 남는 가치이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지식도 영원히 남으며,

특히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내 능력치 이상의 과제를 부여받고,

그걸 해냄으로써 얻은 스킬들은 나에게 엄청난 자산이 되어 주었다.

(풀타임 근무를 하면서 일반대학원을 5년간 수강했으니. 그 시절 젊음이 아니고서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도 그렇다.

나의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직시하게 해주고, 또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며,

결국 내 세계를 넓혀준다.

돌아갈 곳이 있음에 안도하며, 나의 일상을 다시 한번 사랑하게 해주기도 한다.

추억과 이야기거리를 남겨줌은 당연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베풀어야 할 때는 넉넉히 쓴다.

아직은 타인을 돕고 자시고 할 처지가 아니라서, 가족에게 한정되는 이야기이긴 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에게 감사를 표할 일이 있거나, 부모님 환갑이거나, 조카에게 간과 쓸개를 다 빼주는 동생에게 보은할 일이 있거나,

그럴 때에는 늘 처음 떠오르는 금액을 내놓는다.

(우물쭈물 하며 내 안에서 가격 흥정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뜻한 말이나, 명절 인사나, 생일 이벤트 같은 것을 잘 하지 못하는

건조한 성격이라,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있을 때에 온전히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이다.

돈을 쓰는 방식은 차차 쌓여

한 사람의 개성의 일부가 되고, 삶의 우선순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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