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꽤나 가난하게 살았던 나지만 돈이 없어서 서러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지금처럼 돈이 있네 없네 떠드는 것도 덜했고, (특히 '벼락거지'라는 말을 참 우습다고 생각한다. 남이 벼락같이 벌어서 부러운 것은 알겠지만 가만히 있던 자신을 왜 거지 취급을 하는지.)
SNS도 없어서 그랬을까.
그런 나도 없는 자의 설움을 느꼈을 때가 있었으니, 바로 신혼집을 구하러 다닐 때였다.
그맘때는 긴 부동산 하락기의 막바지로, 여느 때와 같이 전세가 귀하고 비싸고, 건축주에게 초저리의 대출이 나오던 시기라 신축빌라가 우후죽순 생기던 때였다.
원래 보고 있던 신림동의 투룸빌라보다 1~2천 더 쓰면 삼전동의 투룸빌라가 가능하길래 한번 보러 갔었다. 건물이 다 지어지지도 않은 상태로, 뼈대와 위치만 보고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거기가 좋아서 계약을 하겠다고 했더니, 건물주 할머니가 부동산에 와서는 "전세 안 줄래. 월세로 해."라는 것이다.
부동산 사장님의 긴 설득 중에 우리 부부는 적선받으러 온 줄에 선 사람들처럼 기죽은 채로 얌전히 기다려야만 했다.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던 그 건물주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앉아있는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부동산 사장님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갑자기 말을 바꾸는 것도 집주인의 갑질인가 싶었지만,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협상 대상으로도 여기지 않는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나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
대학교 졸업 후 직장에 다닐 때까지 친정에서 '딸'로 살았던 나였으니, '어른'의 돈 문제를 처음 접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서 불쾌감을 표하고 박차고 일어나 곧장 친구에게 '무식한 집주인의 행패'에 대해 열불을 토했더니, 자취 생활을 오래 한 친구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들어주었으니까.
'어른'의 돈 문제에서는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던 일인 것 같다.
사실 그 보다 더 충격적인 '돈 없는 설움 에피소드'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 있었던 일이다.
그때 나는 00공단이 있었던,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가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 살았었다.
그 동네에서도 제일 가난한 집이었을까?
아빠의 전파상에 딸린 작은 쪽방이 우리의 집이었으니까.
그래도 골목에서 다 같이 엉켜 놀던 낭만이 있는 시대였기에, 돈 문제로 비교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 크게 부자 같아 보이는 녀석도 없었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일찍 한글을 떼고 책 읽고 문제 푸는 걸 좋아했던, 약간의 별종이었기에, 학교에 입학해 보니 공부는 쉽고, 규칙도 쉽고, 칭찬을 받는 것도 쉬웠다.
칭찬받는 학생 역할이 되어서였는지, 어떤 여자아이가 '나랑 친구 하자'며 다가왔다.
그때는 오전/오후반이 나눠져 있을 정도로 학생 수가 많을 때라, 반에 있는지도 모르던 여자애였다.
그렇게 한동안을 둘이 붙어 다녔는데, 어느 날 '함께 집에 가자'는 나의 말에
"우리 엄마가 가난한 애랑 놀지 말래."
라며 나를 뿌리치고 저 멀리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40년을 산 나로서도 여태 TV에서나 들어본 대사다.
어떻게 8살짜리 아이가 그런 말을 입으로 뱉을 수가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그때 우리가 살던 동네는 00공단이 있던,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려 전국에서 몰려든 노동자로 북적이던 동네였다.
엄격히 말하자면, 부자다운 부자가 살던 동네가 아니라는 것이다.
글을 쓰느라 떠올려보니 그 아이 머리에는 항상 양쪽에 대칭으로 리본핀이 꼽혀 있었던 것 같긴 하다.
그것이 우리의 '경제적 차이'였을지 모르겠다.
그 충격적인 사건이 있고 얼마 후, 우리 집은 분당에 청약당첨이 된 새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분하거나 서러운 줄도 모르고 지냈지만, 왠지 그 아이가 나의 전학 소식을 귀 기울여 듣기를 바랐다.
나, 분당이라는 동네의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