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왜 안 하세요?

by 온행

결혼 10년간 꼬박 5번의 이사를 했다.

이사는 분명 즐거운 경험은 아니지만, 내 인생이 여기까지 흘러오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이 정도 살았으니 옮겨 봐야지." 라는 생각은 내 머리 한 켠에 항상 있었고, 주기적으로 부상하여 내 머리를 가득 채우는 것이기도 했다.

(결혼 전에도 이사 다니는 게 연례 행사였던 친정의 영향도 있었을까? 난 3개의 서로 다른 초등학교를 다녔고, 초6에 이사하여 중학교를 혼자 배정받고, 중3에 이사하여 고등학교를 혼자 배정받았다.)


결혼 후 아파트의 가치를 알게 되고, 또 전세의 함정을 알게 되며 내 집 마련의 목표를 갖게 되면서 생긴 습관이 있다.

이사를 하면, 곧장 그 단지를 돌아보며 생활하기 가장 편한 동을 찾는다.

흔히 말하는 로얄동이다.

계약 전에 미리 파악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수도 있지만, 이사를 하다보면 로얄동인지 보다는 '시기가 맞는지'가 먼저 오는 경우가 많다.

한 단지에서 어느 동이 선호동이고 비선호동인지를 알려면 같은 시기에 나와있는 매물을 동시에 보고 비교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부동산 사장님께 여쭤봐야 하는데, 어지간해서는 본인이 지금 보여주는 물건의 장점을 어필하신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언제 빼야하고, 언제 집이 빠지고, 언제 들어갈 수 있고, 전세의 경우에는 전세자금대출 여부와, 매매의 경우에는 중도금 일정과 금액, 인테리어 공사 필요성 등등을 통틀어서 '거래 조건'이라 할 때, 거래 조건이 맞는 비로얄동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여튼 나의 경험상 거의 모든 부동산 거래는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이루어졌고, 정신 없이 이사하고 나면 그제서야 '어디가 더 살기 좋나~'하며 점수를 매기러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는 주변의 다른 단지도 훑어본다.

실제로 걸어다니며 이 길 저 길로 탐색해봐야 한다.

지도에서 나타나지 않는 '장 보기 편한 단지', '학교 가는 지름길이 있는 단지', '관리가 유난히 잘 되는 단지', '단지 내에 인도가 없어서 위험한 단지' 등등을 파악하게 된다.

실제로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다른 동이나 옆단지로 이사를 할 계획은 없다.

다만 물건에 대해 평가하고, 점수 매기고, 실제 거래가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는지 한번씩 체크하는 습관을 키우면서 다음 이사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이 바쁘지 않은 시즌에는 근무 시간을 조정해서 다른 동네 구경도 간다.

두 번째 아파트 매수를 한 후에 생긴 버릇이니 벌써 7년쯤 되었다.

(첫 번째 아파트는 분양권을 매수하여 입주 시기에 전세를 놓았어서 실제 거주한 적이 없다. 그 기간 동안 우리도 직장 근처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어서, '내 집에 산다'는 감각은 모를 때다.)

주로 지금 (가지고 있으며) 살고 있는 집보다 조금 더 비싼 동네를 탐험한다.

매정하게 들리지만 부동산 입지에도 서열이 있어서 대학 배치표 만들듯, 서열표를 만들어둔 것이 커뮤니티에 돌아다닌다. 그 표의 한, 두, 세칸 정도 위의 동네까지 섭렵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같은 칸에 있는 동네라도 나에게 더 와닿는 동네가 툭 튀어나온다.

그런 위시리스트를 몇개씩 만들어 놓고 심심할 때 한 번씩 시세도 보고, 매물 개수도 보고, 하며 인터넷으로 또 구경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집값에 변동이 생기고, 대출 상황에도 변동이 생기고,

아이가 자라서 학령기에 가까워지고,

남편의 이직으로 수입이 달라지고,

뭐 그런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사갈 때가 되었구나."


이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결혼 10년만에 자산을 10배로 불린 노하우 중 하나라고 조금은 자만스럽게 말할 수도 있겠다.


비교적 최근에 또 이사를 했다.

이사 소식을 전하면 종종 듣는 질문이 "왜 이사 하셨어요?"다.

그러면 나는 당장 어찌 답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마음이 든다.

'이사 하는데 이유가 있나...? 때 되면 옮겨야 돈을 벌지. 100세 시대에 한 집에 계속 살 수도 없는 거고. 이사는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게 묻는 사람들은 선명한 이유 -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좋은 학교가 있는 곳으로, 학원 보내기 좋은 곳으로, 아이 육아를 도와주실 할머니댁 근처로, 아파트 청약에 당첨 되어서 등등 - 가 있어야 이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류의 대답을 기대하고 묻는 질문에, "... 그냥요 ^^;" 혹은 "옮길 때가 된 것 같아서요." 라고 답하면 대화가 붕 떠버리기도 해서 곤란한 마음까지 든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사 왜 안하세요?"라고 묻고싶어진다.

그 집에 그만큼 오래 살았으면 집값도 올라겠다, 대출금도 어느 정도 갚았겠다, 근로소득도 늘었겠다, 생활 환경도 더 낫고 집값 상승 여력도 있는, 보통 말하는 '더 좋은 동네'로 옮기셔도 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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