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면 다냐?
기분좋은 금요일 아침, 출근하자 마자 날아 온 직장 상사의 쪽지.
"00시에 잠깐 뵈었으면 합니다.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용건일까?
어제 회의에서 사람들 기분 잡치게 하더니, 자기는 기분 더 잡쳤다 이건가?
내가 옆자리 동료와 상사 씹는 소리가 너무 컸나?
누가 듣고 꼰질렀을까?
내가 뭘 해서 또 심사가 뒤틀렸을까?
약속 시간까지 내 손에 일이 제대로 잡혔을 리 없다.
그는 쪽지 한 통으로 내 오전을 망쳤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약속된 결전의 시간.
(그로 인해 요즘 나의 전투력은 급상승세다. 매일 같이 나 혼자 허공에 스파링 중)
나를 포함한 인원들에게 쌓였던 섭섭함을 토로하는 것을 한 시간 가량 들어주고,
내 쪽의 의견도 있으니 들어보라 달래며 몇 마디 했더니,
그는 여지 없이 이렇게 말한다.
"그래요, 00님이 지적한 부분, 맞습니다. 그래도 난 솔직하게 인정하잖아."
내가 솔직하게 인정했으니, 나는 얼마나 담대하고 포용력이 넓으며, 겸손하고 소탈한 사람인가.
라는 자기 위로와 자기 만족감으로,
싸움을 끝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내 직장 상사는 그 '솔직하면 다인 사람들의 모임'의 임원급 인사다.
하지만 '솔직함 당하는' 내 입장의 사람들에게는,
그 솔직함이 아무런 도움도, 위로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뭐? 당신이 솔직한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인정을 했으면, 행동을 바꾸어야 할 것 아니야.
솔직하다고 셀프 쓰담쓰담 하면, 이 난리통이 다 끝나는 거야?
그와의 대화는 두려움으로 시작해서, 한심함을 거쳐, 연민으로 끝났다.
그만한 세월을 버티고 살아 남아, 그 위치에 올라있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인간.
다른 사람들이 마땅히 자신의 감정을 헤아려주기를 바라는 미성숙한 인간.
그러면서 동시에 미움 받는 것이 두려워 늘 마음 졸이고, 속상해 하고,
그 마음을 또 사람 괴롭히는 데 써버려 더 큰 미움을 받는 불쌍한 인간.
솔직함을 무기로 쓰는 사람은,
'솔직함을 인정함'이 자신의 유일한 패이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행동을 개선하고, 더 큰 그림을 보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솔직함은 비장의 무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그렇게 살겠다는 선전포고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무력화하여 싸움을 끝낼 수 있는건,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고, 상대의 아픔을 우선 고려하는 이타심과 배려다.
그리고 연륜과 경험에 걸맞게 상대를 '헤아리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