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의 반전, 친구 발견

by 온행

MBTI라는 심리성격검사가 유행하자 온 인류를 16가지 카테고리에 넣어 단순화시킨다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주장에 동감하지만 이 유행의 한 가지 장점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제가 I라서” 이 한 마디로 불편한 상황을 많이 삭제할 수 있다는 것.


MBTI의 ‘내향형 인간’ 그 본래의 정의대로 나는 정신과 에너지가 내면을 향해 있는 사람이며, 혼자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편이다. 그리고 MBTI 검사 결과서에는 적혀있지 않으나, ‘내향형이라서’로 퉁치는 나의 속마음은 이렇다. 인간관계에서의 웬만한 사건들은 나를 귀찮게 한다. 귀 기울여 듣기에 흥미롭거나 도움이 되는 대화도 거의 발견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사교 활동을 하려고 하는 일상적인 시도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뭐 저렇게 애를 쓰나 싶다.


그중에서도 사이버 세상에서 사교 활동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허무함 그 자체인 행위였다. 실제로 어떻게 생긴 지도,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공허한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니. 인터넷에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그 시간에 생산적인 다른 일을 해라 라는 거만한 생각도 있었다. 그 생산적인 일의 이름도 댈 수 없으면서 말이다.




그랬던 내가, 마흔이 되자마자 한 일은 한 인플루언서가 리딩하는 글쓰기 모임에 들어간 것이다. 40이라는 숫자의 오묘한 힘 때문인지, 나는 이제 글을 쓸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되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잘 팔리는 책을 쓰는 작가의 요령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 모임은 SNS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방법을 주로 다루었다. 6개월 간의 과정을 끝내면 자연히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으나, 그 기간 동안 글 쓰는 사람으로 변모하지는 못했다. SNS에서 나를 광고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배웠고, 사람들은 내 블로그 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오프라인 워크숍에도 용기를 내어 참석했으나 서로를 ‘00님’이라고 부르며 개인정보와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가 어색해 미치겠다는 생각을 내내 하다가 귀가했을 뿐이었다.




다시금 벽에 막힌 듯한 기분이 들 무렵, 과정이 모두 끝나고 강의 연습을 해보자는 후속 모임 개설 소식이 들렸다. 내가 아직 느끼지 못한 소속감을 공유하는 동료들끼리 +a를 위해 무언가를 도모해 보겠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일었다. 영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6개월 동안 그 모임에 속해 있었더니 마음이 조금 물들었나 보다. 그렇게 발을 담근 두 번째 모임에서 추진력 있는 동료들과 함께 하다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전자책 한 권을 함께 만들어냈다. 이 책은 yes24에서 일주일간 에세이 분야 2위, 이북 종합 11위까지 오르며 주간베스트 배지를 달았다. 그렇게도 민망해했던 내 닉네임을 검색창에 넣으면 온라인 서점에서 내 글이 검색되고, 네이버에서 내 프로필도 검색된다.


이 모임 덕분에 나는 설레는 경험을 했다. 이렇듯 원만히 굴러가는 팀플에 참여하니 그동안 학교와 직장에서 협업 때문에 고통받았던 내 지난날의 상처가 보듬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가 감격스럽기도 했다. 그것보다 고무적인 것은 어려운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동지애를 느꼈다는 것이다. 내 안에서 이미 사라진 감정인 줄 알았던 ‘동지애’ 말이다.




그동안 내가 만난 친구와 동료들은 모두 상황의 강제성으로 인해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었다. 학교 같은 반에 배정되어서, 첫날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어서, 친구의 친구라서,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어서, 아이의 친구의 부모여서. 개성이나 취향의 공통점이 빈약한 상황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개성이나 취향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실망과 상처를 주고받았던 기억들이 나를 내향인의 성 안에 가둔 것이리라. 그 안에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페이퍼컷 같은 사소한 상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성벽을 높이 쌓아왔다.


하지만 나이가 40살이나 먹고 나니 많은 것이 내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더 이상 우연에 의지하는 인간관계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집단에 발 붙이고 있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내 삶의 박자를 엉키게 할 일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면 되니 오히려 편하다. ‘00님’이 되는 어색함을 참으면 SNS에서의 사교활동도 은근히 재미있다.(그리고 곧 적응도 된다.) 한 사람의 글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결이 묻어나기 마련이니 글로 친해진 사람들은 실제로 만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나는 요즘 챌린지에도 마음을 열었다. 챌린지란 무엇이든 혼자 할 자신이 없어 타인의 인정과 참가비 환불의 힘을 빌리는 것이라 폄하했던 시절도 있다. 하지만 어느 날 발견한 어떤 챌린지 리더는 존재만으로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는 글 쓰는 워킹맘 러너였다. 나도 글 쓰는 워킹맘 러너인데! 나와 딱 맞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선배와 인연을 맺을 기회였다. 선배들에게는 배우고, 갓 시작한 러너에게는 응원을 보내며, 나는 러닝 챌린지 멤버들과 함께 뛰고 있다. 재미를 붙인 스레드에서는 조회수에 비해 팔로워가 잘 늘지 않아 약간 헤매는 기분이 드는 와중에 한 메가스레더의 스레드 글쓰기 챌린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또 참가를 신청했다.




이 경험은 이전 화에서 적었던 ‘나의 약점을 들여다보자’는 메시지와 이어진다. 내 안에서 동지애라는 감정을 부활시키고, 혼자서라면 넘기 힘들었을 벽을 수월하게 넘는 성취를 이룬 이 경험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 - 실체가 없는 낯선 사람들과 제2의 자아를 가지고 대화하는 공허한 일 - 에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전에 실패했던 일에 다시 도전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같은 일에 또다시 실패한다면 두 배 깊은 내상을 입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퇴를 준비하는 이 나이에는 꽤 단단한 살갗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삶의 지혜와 요령을 갑옷으로 두른 데다가, 마음은 지난 시절보다 더 유연해져서 작은 실패를 하더라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에 딱 좋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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