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편하게, 길게

by 온행


인생의 성공이나 행복에 대해 논할 때 ‘꾸준함의 힘’이 늘 강조된다. 잘 팔리지 않는 글이더라도 꾸준히 써야 하고, 팔로워가 늘지 않는 SNS 계정이더라도 꾸준히 나를 드러내야 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모닝 페이지를 쓰는 루틴도 ‘꾸준함’의 미덕으로 칭송받는다. ‘꾸준함’은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미덕이자 몸에 입혀야 할 태도이다.


하지만 이 ‘꾸준함’을 직장생활에 대입했을 때에는 분위기가 약간 달라진다. 묵묵히 꾸준히 일하는 것의 가치는 ‘아둔함’ 혹은 ‘착취당함’의 상징으로 격하된 것 같다. 왜냐하면 직장은 우리를 노예로 부리면서 우리의 인생은 책임져주지 않는 악당과도 같은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에 대한 이런 식의 철학이 뉴노멀이 된 느낌이다. 임금이 적다면 받은 돈만큼만 일 한다. 임금이 많더라도 에너지와 능력을 아껴두고 ‘진짜’ 가치 있는 일에 가능하면면 다양하게 발을 걸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일할만큼 일하고, 퇴직할 나이에 퇴직한 선배들의 말은 다르다. 몇몇은 속할 자리가 없다는 것에서 오는 허전함과 불안감을 털어놓는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은퇴 자금이 생활 유지에 턱없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남은 생이 길다는 것을 알기에 제2의 직업을 찾도록 떠밀려 다시 사회로 나와 보지만 중년에 들어선 몸과 마음으로 새로운 일을 배우고 낮은 자세로 구인 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직장에 헌신하지 않고 적당히 일하다가 일찍 은퇴하여 자아실현 하는 것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 그리고 직장에서 최대한 버티는 것이 안전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한 25살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현재 직장에서 일한 첫 달부터 나는 이 일과 맞지 않다고 느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업무에서 내면 성장의 씨앗도, 사회에 일조한다는 보람도 찾지 못했다. 직장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또 얼마나 힘들었던가. 업무 문제로 선배와 틀어진 일로 직장 전체에서 점심시간 반찬 삼아 씹히는 것이 일상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성실히 공부하고 노력했던 것에 비해 형편없는 임금이었기에 직장에 대한 불만은 최고조 상태였다. 나는 이 일을 시작했던 25살부터 누구보다도 빠른 은퇴 혹은 이직을 바랐던 사람이다. 그리고 인생의 신묘한 점은, 내가 아직도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며 지금은 꽤나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직장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역설적으로 탈출을 꿈꾸던 마음 덕분이었다.


일찍 떠나기 위해 내가 벌였던 많은 일들 - 대학원 학위, 업무 관련 외부 활동, 강의, 컨설팅, 연수 - 은 거미줄처럼 엮여 서로가 서로를 연결해 주었다. 참여하는 것만으로 내 능력을 키우고 주변에 영향을 미치고 내 온전한 성과로 남는 일들에 우선적으로 발을 들였다. 몸과 머리가 바빠지자 25살의 내 인생을 끌어내렸던 직장에서의 다사다난은 하찮은 해프닝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안겨주었다. 내가 업무나 인간관계에 정성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대학원 공부하며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는 시간이 겹쳐지며 내 경력은 나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스노우볼처럼 불어났다. 경력과 능력에 맞는 직무를 맡게 되니 초년생 시절의 일에 대한 회의감을 어느 정도 쳐낼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의 발언권과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은 나의 불평을 꽤나 잠재워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는 지경까지 왔다. 일의 요령을 배워서 일 처리의 어려움을 없애고 시간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정할 수 있다면, 은퇴를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정년까지 일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의견은 아니다. 나도 지금 당장은 그만두고 싶지 않지만 여차하면, 다시 말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어떤 일이 벌어진다면, 언제라도 미련 없이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사건에 마주해 갑자기 퇴직하게 되는 것만큼이나 그만둘 날만을 기다리며 직장에서의 고통을 곱씹는 삶도 지옥이다. 25살의 나처럼 말이다. 그때의 나는 모든 일에 서툴렀고, 운 나쁘게도 관대하지 못한 어른들을 만났다. 멘토가 되어줄 사람이 없었기에 사무실 한 구석에 고립되어 있었다. 그때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지금보다 나은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능력에서 우러난 마음이 아니었다. 현실이 고통스러워 도망치고 싶었던 것뿐이다.


마흔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런 마음이라면 나는 실패한 직장인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른 은퇴를 꿈꾼다. 다만 직장에서의 매일이 괴로워서는 아니다. 오히려 내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며, 내 발언에 권위가 실려 운신의 폭이 넓어진 지금은 직장에서의 시간이 꽤 편안하기까지 하다. 내가 은퇴를 준비하는 이유는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퇴 후의 인생을 충만함으로 가득 채우도록 준비하는 모든 노력이 현재의 나의 성장을 이끌기 때문이다.


떠나고 싶은데 떠나지 못하는 현실에 메여 하루를 불평과 자괴감으로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다. 그보다 직장 일의 요령과 즐거움을 찾아 일상의 평온을 찾고, 다른 한편으로 은퇴나 이직을 준비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야 현재의 나도 행복하고 미래의 나도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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