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의 늪에 빠진 40대, 나를 깨우는 법

컴포트존 넓히기

by 온행


컴포트존 comfort zone이라는 용어는 1908년 예일대 심리학자 Yerkes와 Dodson의 연구에서 처음 등장했다. 너무 편하면(comfort zone) 무기력하고, 너무 불안하면(panic zone) 일을 망치게 되므로 적당한 수준의 불안이나 긴장이 있을 때 인간의 수행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요지이다.


즉, 사람이 익숙하고 예측 가능하며 불편함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는 심리적으로 안전지대에 있을 수 있어 편안하지만, 동시에 성장은 멈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컴포트존에 머무르면 성장이 멈추고, 패닉존에 들어서면 지나친 긴장으로 일을 할 수 없으니, 우리는 그 사이의 어느 지대에 머물러야 한다. 후속 연구자들은 그 구역을 러닝존(learning zone)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20, 30대에는 자연히 러닝존에서 많은 시간을 머무르게 된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20대 초반에는 성인이 된 자유로움을 누리면서도 수많은 선택의 압박을 느꼈다. 수십 개의 선택지 중에서 고민 끝에 참전했던 수강 신청. 수십, 수백 명의 동기, 선배, 후배 그룹 안에서 교우 관계를 맺기 위해 적극적으로 모임과 행사에 참여해야 했던 압박. 논술형 시험과 많은 분량의 과제, 조별 발표와 보고서까지. 긴장과 성장의 팽팽한 줄다리기였다.


20대 중반부터 시작된 사회생활은 패닉존 쪽으로 조금 더 치우쳤지만 여전히 나를 러닝존 안에서 달리게 했다. 매뉴얼을 숙지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고, 이미 처리한 일의 디테일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의도한 바를 관철시키는 와중에 조직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물들면서 내 개성을 지켜내는 일까지.


30대가 되어도 인생 공부는 끝이 없어서 이번에는 어린아이를 키우며 끊임없이 내 내면의 아이와 마주해야 했다. 두 꼬물이들을 사람 비스무리하게 키워내는 동안 나도 인생을 한번 더 살아내야 했다. 이토록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도를 잠재우면서도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 또 있을까. 30대에는 감사와 사랑이 가득한 러닝존을 뚫고 지나왔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시간 끝에, 마흔이 된 나는 비로소 멈춰 서게 되었다. 이제는 많은 시간을 컴포트존에 머무르게 된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어디에서 누구와 지낼 때 마음이 편안한지 안다. 좋게 말하면 안정을 찾는 시기이고 나쁘게 말하면 호기심이 줄어든다. 축적된 실패의 경험이 있으므로 실패와 연관된 일을 회피한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영혼임을 자처하며 높은 허들을 내세워 사람을 걸러낸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어느 시절보다도 잔잔하게 평온하다.




하지만 이런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새로운 인생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남다른 인생의 관점에 대해 듣고 내 생각과 견주어 볼 기회도 없다. 내 신경에 거슬리지 않는 사람들만 주변에 남아있다 보니 싫은 소리 들을 일도 없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직장에서의 일이 수월하게 굴러가다 보니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배워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나의 방식에 갇혀버린다. 컴포트존의 정의에 딱 맞는 상태다. 편안하지만 단조롭다. 작은 피로에도 마음이 쉽게 퍼져버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음 편한 게 최고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컴포트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컴포트존의 높은 담장 안에서 퍼져 있다가는 세상에 적응하고 역경에 맞서는 근력이 소실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컴포트존이 좁은 사람은 조금만 벗어나도 불안하고 괴롭다. 평생을 남이 운전하는 차만 타던 사람은 자신이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단순 업무만 반복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에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업무를 맡아야 하는 때가 오면 공황 상태에 빠진다. 병실에 몇 달을 누워 있기만 한 사람은 침상에서 내려와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비틀거린다. 그동안 다리 근력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다리가 힘을 잃은 탓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좁은 컴포트존 안에서만 사는 사람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정신력과 지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서야 하는 순간 무너진다.


반면 컴포트존이 넓은 사람은 웬만한 변화와 도전 앞에서는 힘들어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보조석을 벗어나 운전대를 잡아본 사람은 여차하면 고속도로까지 달리며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다. 좁은 범위의 직무를 벗어나 몇 인분의 업무를 해결해 본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감 있게 일을 처리한다. 나아가, 더 나은 조건으로의 이직이나 창업까지 꿈꿀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처음 접하는 운동, 학문, 인간관계까지 모든 일에 호기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덤빌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크고 작은 성취를 경험할 수 있다.


컴포트존은 저절로 넓어지지 않는다. 힘들고, 어렵고, 불편한 일을 해냈을 때만 조금씩 넓어진다. 마치 꾸준한 운동으로 몸의 근육을 키우는 것과 같다.


나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온 세상을 누리고, 무엇이든 잘 해내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낯선 일 앞에서 겁에 질려 동동거리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다. 그것이 인생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한 지금, 40대야말로 컴포트존에서 벗어나 러닝존에서의 새로운 시도를 즐겨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러닝존에서 흘린 땀방울은 내면의 단단한 근육이 되어 은퇴 후에도 세상을 자유롭게 누빌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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