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요즘 사람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정말 나이가 가늠이 안 되게 젊어 보인다. 40대인 내가 보기에 요즘 40대들은 라이프 스타일을 ‘나이에 따라’ 맞추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크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이가 가늠되지 않는 외양을 하고 제각각의 정신연령을 가지고 살아간다. 젊은 마인드에 의학의 발전이 더해져, 우리는 실제로 더 길어진 인생을 살고 있다.
삼성생명에서는 ‘젊음이 길어진 시대’라는 문구를 내세워 실제 나이*0.8이라는 새로운 나이 계산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광고 캠페인도 ‘젊어 보이려는’ 발버둥이 아닌, 시대를 반영하는 일리 있는 주장으로 느껴진다. UN에서도 평생 연령 기준을 새로이 발표했는데 이렇게 파격적이다. 0세~17세는 미성년자, 18세에서 무려 65세까지를 청년으로 칭한다. 66세에서 79세에 이르러서야 중년에 들어서며, 80세에서 99세가 되어야 노년으로 쳐준다.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잘 먹고 잘 운동하는 요즘 시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더 젊은 시절을 오래 누릴 수 있다. 누가 나 대신 돈만 벌어준다면 유토피아와 같이 행복한 세상일 것이다.
나는 둘째를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평범한 나이, 35살에 낳았다. 하지만 짧은 육아휴직 후 복직한 나는 내 남은 노동의 나날들이 아득히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벌써 늙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35살에 낳은 아이를 대학교 교육까지 시키고 운 좋게 자기 일에 자리 잡는 걸 보고 퇴직하려면 60살까지는 일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예전이었으면 할머니 소리를 들었을 나이까지 일을 하고도 자식은 겨우 대학교 졸업이나 할까 말까 한 어린애다. 그리고 UN은 아직도 나를 청년으로 칭한다. 동전 앞면엔 축복이, 뒷면에 저주가 붙어있는 판국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세상이 도래한 지 오래다. 오래 살아야 하고, 오래 일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런데 이제는 다른 문제가 생긴다. 30대에 들어서자 이미 몸이 예전만큼 기능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단순한 체력 저하뿐 아니라, 긴 도시 생활과 사무 업무에 지친 몸이 잔병을 수집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비염, 안구건조증, 거북목, 노안. 조금 더 심각하게는 허리디스크, 혈당과 혈압 문제. 40대에 들어서 고지혈증, 고혈압 같은 질병을 진단받은 친구들도 여럿이다.
2025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83.5세이다. 그리고 건강수명은 72.5세로 11년의 격차가 존재한다. 이 말은 평균적으로 72세쯤 환자가 되어 11년을 투병하다가 83세쯤 사망하는 삶의 궤적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통계에 딱 맞는 삶을 산다면, 나는 둘째 대학 교육을 마치는 60세쯤까지 약 35년간을 출퇴근하고, 약 12년의 건강한 은퇴 후 생활을 즐긴 후, 11년 정도 병원을 드나들며 의료적 처치를 받다가 사망하게 된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일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골디락스와도 같은 시간은 내 평생에 10년 남짓이다.
건강한 몸으로 실컷 놀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른 은퇴를 저지를 정도로 철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기나긴 노동의 세월과 그에 반해 너무나 짧은 은퇴 생활을 생각하면 암담하다.
결국 내게 남은 목표는,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은퇴’의 타이밍을 잡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건강수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최대한 일찍 은퇴하는 것이다. 하지만 섣부른 은퇴는 노후의 빈곤 혹은 생존을 위한 제2의 노동을 부른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충분히 준비가 된 후에 은퇴를 지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최근 많은 인기를 얻었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원작자 송희구 작가는 퇴사의 조건으로 <대출 없는 20억 실거주 집에 무노동 500만원의 수입>을 제시했다. 미쳐 날뛰는 인플레이션과 천장 없는 교육비를 생각하면 일견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수치이다. 하지만 정년을 꽉 채운 베테랑 직장인에게도 만만치 않은 조건이다.
그렇다면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려보자. 궁극적으로 건강수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늘리면 되는 일이니, 건강한 세월을 늘리는 것은 어떤가. 이른 은퇴를 놓쳤다고 해서 병원에 누워있을 날만 세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당장 은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건강해지기 위해 당장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마흔 살부터 20년을 꾸준히 운동한다. 마흔이 넘어가면 기지개를 켜다가도 구급차에 실려가니, 생존을 위해서 운동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은퇴 후의 건강한 세월을 더 길고 진하게 즐기기 위해서 운동한다. 그러면 50살에 은퇴하면 30년을, 60살에 은퇴하면 20년을 건강한 몸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생각보다 일찍 은퇴하는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금상첨화다.
나의 솔직한 목표를 적어본다. 적어도 노동한 기간만큼은 자유로운 은퇴자의 삶을 살고 싶다. 25년을 일했다면 25년을, 35년을 일했다면 35년을 건강한 신체로 직장에 얽매이지 않은 채로 살고 싶다. 나는, 아니 우리는 분명히 그럴 자격이 있다. 치열한 경쟁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뒤쳐지고 어느 정도 앞서 가면서 살아남았다. 제자리에서 뱅뱅 돌며 고여있고 싶지 않아 읽고 쓰고 달리며 담금질했다. 그러니 우리는 적어도 일한 만큼 놀 자격이 있다. 건강수명을 누릴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