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르치기에 가장 훌륭한 교사는 엄마다. 세상에 어떤 교사도 엄마만큼 날카로운 안테나를 세우고 아이의 학습과 성취를 관찰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안테나의 본체에는 애정과 호의, 열렬한 응원이 끓어오르는 엄마라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 (혹은 아빠)가 아이의 학습에 관여하는 시기가 길게든 짧게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엄마를 최고의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애초에 엄마를 선생님으로 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엄마인 채로 있을 때가 좋다. 내가 밍기적거릴때면 잔소리를 하고, 사고를 칠 때면 내 이름 세 글자를 크게 부르며 혼을 내지만 평소에는 나를 사랑 가득한 미소로 바라봐주고, 내가 “엄마!”하고 부르면 당장 달려와주는 사람, 엄마 말이다.
나만한 선생님이 없다고 자평하면서도, 나보다 못한 선생님과 공부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모순 속에서, 나는 꾸역꾸역 3년째 아이와 집공부 중이다.
아이와 함께 공부하면서 제일 보람되고 기쁜 순간은 아이의 순수한 학문적 열의를 마주할 때다. 수 세기, 덧셈, 뺄셈 정도는 일상생활과 놀이에서 자연스럽게 배운다. 하지만 ‘곱셈’이나 ‘나눗셈’ 같은 개념을 이해하려면 물리적인 교구를 머릿속 세상에서 확대해 가며 추상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개념을 간단히 설명해 주고 예시를 보여주면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까맣게 빛나는 그 눈은 ‘오, 이런 세상이 있다니.’라고 감탄하는 듯 보인다. ‘신기하고 재밌어. 이 세상을 얼른 탐험해보고 싶어.’ 아이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밝힌다.
하지만 그 반짝반짝 빛나는 학문적 열의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숙달을 위한 연습 문제를 풀면서 호기심과 신선함은 금세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계산이 복잡해지면서 좌절하기도 한다. 인고의 시간을 지나 한 권의 문제집을 다 풀면, 다시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다시 아이의 눈은 반짝인다. 아이는 한 걸음씩 착실히 학습의 과정을 밟고 있다.
나는 어쩌면 그 반짝이는 순간을 관전하고 싶어 집공부를 놓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눗셈을 이해한 순간 반짝이는 아이의 눈을 보면, 섬광과도 같은 짧은 순간은 내 아이가 제법 똘똘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그렇게 알아갈 것이 많고 배울 것이 많은 아이가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는 나라고 못할 게 뭐냐는 결론에 멈춰 섰다. 나도 아직 모르는 게 태반이고, 이렇게 철없이 더듬더듬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내 인생에도 반짝이며 배우는 순간을 다시 초대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수십 년의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한 지식이 앞으로도 계속 나를 먹여 살릴 거라 장담할 수는 없다.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든, 시간을 잘 때우기 위해서든,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왕이면 더 일찍, 많이 배워 놓으면 좋을 것이다. 이만한 은퇴준비가 또 어디 있을까.
새로운 세계를 접할 때의 반짝임은 길지 않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자주 만들 수 있다. 지금이야 직장 생활과 육아에 밀려 새로운 것에 몰두할 시간이 없다지만, 은퇴 후에는 시간이 남아도는 딴 세상일 테니까. 나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이라도 그렇게 반짝일 수 있을 것이다. 짧게 자주 반짝이는 거다.
그래서 배우고 싶은 것의 리스트를 적고 있다.
스페인어 - 언젠가 스페인 여행을 가고 싶다. 그리고 남미 여행도.
프리다이빙 - 물에 뜨는 건 자신 없지만, 물속 세상은 늘 동경해 왔다.
포크레인, 지게차 등 특수차 운전 - 손으로 조작하는 활동이 매력적이다.
몇 개는 가까운 미래에도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몇 개는 은퇴 후로 미뤄두어야 할 것이다. 지금 배우면 은퇴 후에 능숙해질 테니 좋고, 지금 하지 않으면 배움의 즐거움을 남겨둘 수 있어 좋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꺼이 자주, 짧게 반짝이며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은퇴 준비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