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게 아니라, 불편한 거였어

by 온행


2025년 8월 8일 금요일 저녁을 기억한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남들 다 하는 달리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러면서도 막상 나가려니 망설여져 현관 거울 앞에서 밍기적거렸다. 아이들 잘 준비시키고, 내일은 주말이라며 조금이라도 더 수다를 떨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달래 재우고, 몰래 방에서 빠져나와 맥주 한 캔을 따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애써 직장에서 일찍 퇴근한 남편과 현관 앞에서 “엄마, 화이팅! 할 수 있어요!”를 외쳐주던 큰 딸 때문에 마음속 한 구석에서 민망함과 고마움을 느끼며 집을 나섰다.


엄마가 된 이후로 깜깜한 밤에 혼자 집 밖을 서성이는 것이 얼마 만인지 가물가물했다. 현관에서 한 걸음 벗어나니 한낮의 열기가 식어 시원한 공기에 여름의 습기가 맺혀 있었다. 이세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이 시간에 이 공간에 홀로 있다는 게 이렇게까지 어색할 일인가?
한 때는 나도 밤거리의 풍경에 녹아있었는데.

아이 학원을 오가는 길을 지나, 출퇴근하는 대로를 지나, 한강변에 닿았다. 러닝 트레이닝 앱을 열고, 이어폰 속의 트레이너가 말하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트레이너가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1분 30초 동안 뛰겠습니다.” 1분 30초? 내가 뛸 수 있을까? 1분 30초면 몇 미터나 갈 수 있을까? 빠르게 구르기 시작한 발과 다리의 움직임이 어색했다. 내가 뛰고 있다는 감각이 강렬했다. ‘내가 뛰다니.’ 이런 생각으로 1분 30초는 순식간에 흘러갔다.


내가 뛸 수 있다. 내가 뛰었다. 다음 걷기 세션 내내 감정이 부풀었다. 내가 1분 30초를 뛰었어. 중간에 포기할 줄 알았는데, 해냈어. 잠깐 뛴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벅차오를 일이냐고?



나는 초, 중, 고 12년간의 학교 생활 내내 체력장 5급을 받은 운동 능력 결핍자였다. 특히 오래 달리기는 전교 꼴찌 수준이었다. 오래 달리기 기록을 재는 날이면, 내가 끝 지점에 들어오는 것이 체육시간이 끝난다는 신호였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걷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 모를 느린 속도로 끝지점을 향해 가는 나에게, 체육 선생님과 반 전체가 손짓을 하며 “빨리 들어와! 뛰어! 네가 들어와야 끝나!”라며 고함을 치곤 했다. 나에게 그들의 목소리는 응원이 아닌 비난이었다. 애초에 달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해야 한다고 하니 억지로 할 뿐이었는데. 모두가 나를 체육 시간 종료를 늦추는 원인으로 지적하는 상황이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분한 마음에 노력하지 않고 터덜터덜 걸어버렸다.


생각보다 일찍 한강대교에 닿자, 나는 깨달았다. 내가 여태 달리지 않고 살아온 것은, 달릴 수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기록을 재고, 남과의 비교를 종용받고, 결과를 탓하는 체육 시간이 싫었던 것이다. 어른이 된 지 한참이 지나서는 고질병인 허리디스크와 출산 후의 신체 능력 저하로 뛸 생각 자체를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홀로 깜깜한 밤에 밖으로 나선 그날, 나는 온전한 자유를 느꼈다. 달린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오로지 나의 마음과 나의 몸을 들여다보며, 강에 비친 빌딩 야경의 반짝임에 감탄하며, 시원한 밤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 몸이 움직여졌다! 1분 30초 달리고, 1분 30초 걷는 왕초보 코스였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완수했다.


한강대교 위에 올라섰던 첫걸음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달려온 트랙에서 맞았던 바람과는 다른 수준의 상쾌한 바람이 몸 전체를 쓰나미처럼 덮어 땀을 식혔다. 많은 사람이 다리를 오가고 있었고, 다리 위의 자동차들과 다리 아래의 올림픽 대로와 다리 건너편의 빌딩 숲에서 밝은 빛이 쏟아졌다. 평소라면 내가 아이들과 방에 가만히 누워있었을 시간에, 도시는 생동하고 있었다.




이 경험은 나를 꾸준히 뛰게 만들었다. 2025년 8월 8일 금요일에 총 2.25km를 10분 11초의 평균 페이스로 뛰기 시작한 나는, 한 달 반만인 9월 22일 월요일에 총 4.85km를 7분 49초의 평균 페이스로 달렸다. 겨울이 오기 전에 5km를 쉬지 않고 달리고 싶다는 내 목표는 이제 확신이 되었다. 이제 나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달리기를 시작하며 나는 나를 새로이 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형편없다고만 생각했던 내 달리기를 즐기게 된 나를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곧, 지금껏 내가 스스로 한계를 정해왔을 뿐 못 할 일은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하게 만들었다. 지난 40년간의 어떤 성취와도 견줄 수 없는 자기효능감이었다.

달리기를 예찬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깊이 울린 건 달리기라는 행위가 아니라, 불편하고 두렵던 일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이건 단지 운동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나이 들어가며 마주할 크고 작은 도전들, 언젠가 다가올 은퇴까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록이나 결과가 아니라, 나의 태도와 관점이 인생을 새롭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나는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한 은퇴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마음 한 켠에 은퇴를 품고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본격적인 은퇴를 실행하기 전에 자신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동안 잘하는 일을 찾기 위해 청춘을 공부와 시험, 직장에서의 노력으로 채워왔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내가 해왔던 일을 활용해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약점에 대해서는 달랐다. 오랜 시간 피하고 회피해 왔고, 그저 할 수 있는 일의 효율을 높이는 데만 집중하며 안위했다. 이제 마흔이 되어 내 일상과 은퇴 후 삶을 연결 짓기 시작하자, 약점을 마주하는 것이 부담이 아니게 되었다. 생각의 관점을 바꾸자, 그 불편함마저 즐거움이 되었다.


은퇴를 계획하는 직장인이라면, 가장 못하던 일을 제대로 마주해 보는 것을 권한다. 그것은 단순히 불편한 상황일 뿐, 애초에 약점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내가 남과의 비교나 평가 없이 나만의 달리기를 즐기게 된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나이 들어가며 마주할 수많은 도전도, 어쩌면 달리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작은 성공이 쌓여. 우리는 다가올 은퇴와 새로운 도전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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