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초에 글을 쓰고 싶었다

by 온행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고 있다. 작가는 12년 간 회사원으로 살다가 건강 문제로 퇴직한 뒤, 육아와 병행하여 하루 서너 시간의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서너 시간의 글쓰기 루틴이 계속되다 보니 책을 연속하여 출간하게 되고, 건강이 회복되면 회사로 돌아가려 했던 계획이 무색하게 그는 회사원으로 살았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작가로서 살게 되었다.


비극적인 이유이긴 하나 어떻게든 직장을 쉬게 되고, 가정생활에 정성을 들임과 동시에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서너 시간을 매일 가지는 일상. 그리고 쌓아 왔던 상념과 마음들을 내보내어 글로 적는 삶. 그러다 보니 예기치 않게 직장에 다시 돌아가지 않게 되는 인생.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삶이다.



80년대 서울의 구로공단 근처에서 태어난 나의 첫 기억은 대림동 단칸방이다. 20대의 젊은 부부였던 나의 부모는 땅 끝에 가까운 어촌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고 했다. 가진 것 없이 상경한 그들은 어린 딸을 품에 끼고 아침저녁으로 몸과 머리를 써가며 일에 몰두했다. 네 가족 눕기에도 비좁은 단칸방에는 엄마가 부업으로 돌리던 미싱이 덜덜덜 돌아가고, 아빠의 일에 필요한 스티커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일로 바쁘던 부부에게 약간의 틈이 생길 때면, 몇 살이라도 어린 막내의 애교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몇 년 일찍 태어난 나는 동생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게 된 것 같다. 그것은 책에의 몰두였다.


학교에 들어간 순간부터 반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고 글자를 잘 쓰는 건 나였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른 과목 공부도 곧잘 했지만 역시 나는 ‘책 많이 읽는 아이’로 통했다. 그리고 학교 수업에서 글쓰기가 시작되자 나는 ‘글 잘 쓰는 아이’가 되었다.


이사를 자주 다닌 탓에 오래된 소꿉친구 한 명 사귀지 못했다. 애살있는 동생 곁에 있으면 ‘언니는 무뚝뚝하네.’ 라느니 ‘언니는 잘 안 웃네.’라는 말이나 주워듣기 일쑤였다. 어른들 대하는 게 어렵고 불편해서 선생님들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가지도 못해 비슷한 시험 성적을 받고 비슷한 개수의 상장을 받는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예쁨도 못 받았다. (오래전의 일이니, 학교에 성의 표시를 할 수 없었던 가정 경제 상황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사춘기의 폭풍이 몰아치기 전까지 내가 마음 붙일 곳은 오로지 책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나는 작가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사춘기에 들어서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것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격상시키자, 친구들 앞에서 책을 읽는 것은 창피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입시 매몰 교육, 20대 초반의 청춘 불사르기 등으로 나의 꿈이었던 ‘작가’는 전생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런데 마흔이 되니 그 ‘작가’라는 단어가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처럼 내 마음에 불을 켰다. “글을 써야겠다.” 마치 운명에 정해진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 않았고, 어떤 계기도 없었다. ‘이걸 왜 해야 하지? 했을 때의 보상은 뭐지? 하지 않았을 때의 손해는 뭐지? 예상되는 어려움과 불편은 무엇이지? 성취의 기준은 무엇으로 삼아야 하지?’ 같은 부정적이고 의심 많은 자의 검토 단계도 필요 없었다.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거잖아. 이제는 할 때가 되었잖아.


나 스스로를 ‘운동하는 사람’으로 칭하면 그만이듯이, ‘글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면 그만이었다. 첫사랑과도 같은, 내가 처음으로 열정을 쏟은 일을 다시 내 삶의 기둥으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헤어져 있었던 만큼, 오래오래 내 곁에 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은 손가락 움직일 힘만 있으면 나이 든 노인이 되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이지 않나. 일이 잘 풀려 내가 책 몇 권이라도 내게 된다면, 나는 은퇴하자마자 ‘작가’라는 두 번째 직업으로 자연스럽게 갈아타게 될 것이고. 그 일은 나와 여생을 함께할 취미가 되어줄 뿐 아니라 노후 용돈에도 약간의 보탬이 될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을 상상해 보자. 해 왔던 일에 대한 애정이 넘쳐서 은퇴 후까지 계속하고 싶은가? 그것도 좋은 삶이다. 하지만 해 보지 않았던 일, 혹은 마음에 두고 있었거나 할 수 없었던 일을 시작해보고 싶지 않은가? 정답을 정해놓고 묻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나는 정말로 그렇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내가 기특하다. 여태껏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해왔으니,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도 되는 때다. 그리고 미리 해두면 은퇴 후에는 제법 잘 해낼 수도 있다. 아니, 분명 잘 해낼 것이다. 마흔 살 먹었다고 인생을 사는 태도를 논하고 돈 벌어본 경험을 떠들게 되었으니 은퇴 후의 내가 할 말이 얼마나 더 많겠는가. 메모지에 적어 직장 책상에 붙여놓을 만한 글귀 몇 줄 쯤은 만들어낼 삶의 지혜가 쌓였을 것이다. 글 쓰는 연습도 충분히 되었을 것이고, 출간과 관련한 경험도 쌓였을 것이다.


직장 근무와 두 아이 육아로 꽉 찬 삶 속에서 없는 틈을 만들어 내어 글을 쓰는 요즘. 은퇴 후의 글쓰기를 상상하면 온전한 설렘과 즐거움만 그리게 된다. 글의 시작에서 꿈꾸었던 바로 그 삶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삶을 준비하기에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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