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체 능력에 대해 말하자면, 병치레는 없으나 늘 비실거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집단에서도 가장 먼저 피로감을 호소하고, 휴식 시간을 원하며, 생기가 떨어지는 사람. 하지만 평소에 복용하는 약도 없고, 잔병치레도 없다. 옛날 말로, ‘이런 애들이 골골대며 팔십까지 산다.’의 ‘이런 애’ 역할이다.
다만 한 가지 지병이 있는데, 요추 추간판 탈출증, 즉 허리디스크이다. 20대 중반의 팔팔한 나이에 처음 발병했을 정도로, 나는 약한 허리를 타고났다. 평생 동안 허리가 한 번도 안 아픈 사람은 없다고 한다. 약하게 태어난 사람은 20대부터 삐끗하면 아픈 것이고, 강하게 태어난 사람은 60대에 들어서 허리 아픔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 약한 허리가 둘째 출산 후에 완전히 퍼져버렸다. 발가락 끝까지 이어지는 방사통으로 밤마다 잠을 못 이루고, 주기적인 물리치료와 도수 치료에도 진전이 없다가 식탁에 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나빠져 버렸다. 2주 간을 바닥과 소파에 누워 지내고, 가족의 등에 업혀 병원에 가서 휠체어에 앉아서 치료를 받는 볼썽사나운 꼴도 보였다. 그때 전문의에게 들은 이야기는 “허리는 그냥 약하게 태어난 건데, 운동한다고 허리가 강해져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운동 하다가 병원 실려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지금 협착증에 가까운 상태인데 이 허리 80살까지 써야 돼요.”라는 고언이었다.
안 그래도 신체 활동이 굼떴던 나는 그 후로 내 몸을 더 아껴 쓰게 되었다. 허리디스크 환자라면 명심해야 할 생활 습관을 몸에 새겼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고 옆으로 굴러서 일어난다. 머리를 절대 앞으로 숙여서 감지 않는다. 영화관과 미용실을 멀리한다. 길바닥에 돈이 떨어진 걸 발견해도 10만 원 이하의 소액이라면 그냥 지나간다. 방바닥에 있는 1kg 이하의 물건은 발가락으로 집는다. 결론은, 허리 굽히는 일에 목숨을 걸듯 하라.
새로운 운동을 배울 때는 절대 조심하라는 것이 의사의 또 하나의 주문이었다. 원래 즐기던 운동이 있다면 허리 상태가 좋아진 후에 천천히 다시 시작해도 좋다 했지만, 나는 운동을 즐기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나에게 모든 운동은 새로운 것이었다. 고로, 나는 어떤 운동도 해서는 안된다는 비약을 하게 된다. ‘운동을 해서 아프지, 운동을 안 하면 아플 일도 없다.’는 나의 개똥철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 철학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생기는 없지만 아픈 데도 없는 사람으로 마흔까지 살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음주를 하지만 간수치도 정상이고, 양쪽 시력은 무려 1.2이다. 건강검진의 모든 수치가 “아직 건강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싱글일 때와는 비할 바 아니지만, 아이 둘을 낳은 후에도 BMI와 허리둘레 모두 정상인, 나쁘지 않은 몸매다. 매일 곰 두 마리를 어깨에 얹고 다니는 피로감을 느꼈지만, 직장인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데.
그런데 올해 여름, ‘나도 운동할래.’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수영 수업 때문에 체육센터에 주기적으로 들락거린 게 계기가 되었을까? 수영을 배우는 아이의 모습은 언제나 근사하긴 했다. 매사에 조심스럽고 겁이 많던 아이인데 까치발로 겨우 서는 저 깊은 물에서 아무 주저함이 없다. 물길에 몸을 맡기고 쉬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이 용감한 개선장군 같다. 내 안에서 아이는 이미 수영 선수이고, 나는 그 선수의 팬이다. 아이와 같은 취미를 만들고 싶어 예전부터 수영 강습을 알아보긴 했다. 하지만 강습 신청이 너무나 치열해서 몇 달째 실패하던 중이었다. 운동을 시작하지 않을 아주 적절한 핑계였다.
그러니 갑자기 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데에, 아이와의 체육센터 루틴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을 테다. 그보다는 그냥,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이 더 들어맞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용감하게 물살을 헤치는 아이와, 체육 센터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의 생기 있는 모습이 차근히 내 마음에 바람을 넣어왔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개똥철학을 버리는 것은 간단했다. 남편에게 “나 운동하고 싶어. 일주일에 하루 이틀 일찍 들어올 수 있어?” 묻자 남편은 화들짝 놀라며 반색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겠다며 단단히 약속하더니, 월화수목을 12시까지 야근을 하고 금요일에는 9시에 퇴근해온다. 월요일, 수요일에는 아이가 체육센터에서 수영하는 시간에 위층에서 개설된 서킷트레이닝 수업을 수강했다.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지 못해 못내 미안해하는 내게 아이는 손을 내저었다. 이제는 수영장이 익숙해졌고, 친구들도 있어서 아무 상관없단다. 금요일에는 남편이 퇴근하는 대로 런데이(러닝 트레이닝 앱)를 하러 나간다. 아이들을 재우지 않고 외출하는 게 어색해 현관에서 미적거리는 내게 아이들은 “엄마 파이팅! 포기하지 마요!” 라며 내 등을 떠민다.
나는 서킷트레이닝에서 가장 가벼운 무게를 들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런지 자세를 포기하는 수강생이다. 러닝을 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빨리 걷기 수준이다. 그래도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말한다.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다. 나도 초보러너야.”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그동안 ‘허리디스크 환자’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스스로에게 브레이크를 걸며 살아왔다. 그렇게 몸을 사린 덕에 이만큼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몸을 사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허리디스크 환자’라는 보이지 않는 이름표를 뗀다는 것은 나에게 생각지 못한 해방감을 주었다. 그리고 정체성은 내가 가져다 붙이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디자인한 대로, 내가 원하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 자체가 된다.
흔히 전해지는 말이 있다. 젊었을 때는 체력은 있으나 돈이 없고, 늙어서는 돈은 있으나 체력이 없다고. 그 말에 십분 공감하며 ‘아이들 키우느라 바쁠 때에는 이렇게 내 시간을 다 헌신하고, 아이들 키운 후에 여유를 찾으면 뭐 하나. 나는 다 늙어서 골골거리고 있을 텐데.’ 라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한다. 내가 마흔부터 이렇게 몸을 단련하면, 나는 아이들 다 키운 은퇴자가 되어서도 발길 닿는데로 걸어다닐 수 있을 것이다. 걷기만 하랴. 유럽 어느 나라에서 조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그것 좋다. 나는 은퇴 후에 세계 곳곳에서 발길 닿는대로 조깅을 하는 할머니가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삶이 그렇게 될 것이라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