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나의 노력은 8할이 성적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2할은 인간관계를 잘해보고자 했던 것이지만 이 노력은 거의 성과가 없었다. 그나마 노력에 대비한 성과가 보였던 공부가 나에게 실존하는 목표였다. 성적을 올리는 것은 나의 20대를 빛나게 할 것이 자명했다. 성적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의 20대는 보잘것없을 것이라 배웠기 때문이다. 10대의 시간을 바쳐 20대의 청춘을 기약하는 것은 학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20대가 되니 내 인생 전체의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형법에 의해 처벌되는 나이이고, 운전도 할 수 있고, 길거리에서 술과 담배도 할 수 있는 어른이다. 10대까지의 내 모든 성과는 시험으로 결정되었고, 20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멀쩡한 대학 간판이 아닌 멀쩡한 직장을 얻기 위한 이런저런 시험의 연속이었다. 멀쩡한 직장을 얻는다는 것은 단지 생계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12년 간의 학교에서의 학업 성취와 내 모든 잠재력과 인지 능력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30대에 들어서는 생존을 위해 분투했다. 딸린 식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 인생 하나를 건사하는 것에다가, 내 아이들을 키워내는 퀘스트까지 얹어졌다. 자아실현이나 인생의 낭만은 전생의 이야기가 되었다. 직장에서 한 사람분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가정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수십 가지 일을 신경 써야 했다. 그 와중에 가만히 있다가는 벼락거지가 된다고 하니 거지꼴을 면하도록 숫자 공부까지 해야 했다.
마흔이 되니 많은 것들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무언가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제는 지적 호기심과 교양의 영역이다. 관심이 가는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박사학위를 딴다 해도 직업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희박한 나이이다. 이미 자기 직장에서 경력과 요령을 쌓아온 시점이라, 새로운 직종으로 이직을 하는 것은 자아실현의 영역이다. 열정을 가진 분야가 있다면야 나이가 얼마나 들더라도 도전할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나에게는 그런 열정이 없다. 그렇게 불평불만을 해대었으면서도 이 일에 적응했나 보다.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 덕분에 가정의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여전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픽하면 고꾸라지는 외줄 타기 같지만, 튼실한 외줄과 손을 잡아주는 가족들 덕분에 평온을 찾았다. 부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단돈 3,000만 원으로 시작한 신혼살림이 이만큼 불어났으니, 돈을 벌고 불리고 지키는 일이 두렵지는 않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들에 둘러싸여 이렇게 마흔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안 해도 되는 많은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다. 메모를 남기고 기록하는 치열한 독서, 글쓰기, 적성에 안 맞는 SNS, 평생을 멀리했던 운동,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다정함 키우기까지. 이전과는 다른 결의 바쁜 일상이다. 바라는 보상 없이 하루하루의 성장을 위해 사는 요즘은, 일상의 바쁨 속에서도 여유를 품고 살 수 있다. 실패하면 속 쓰린 10대~30대의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수한 열정과 기쁨을 향한 여정이다.
이런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나는 백발노인이 되어서도 글을 읽고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때쯤 되면 나의 인생은 경험과 지혜로 가득 차 쓸 거리가 넘쳐날 것이다. 지혜를 남긴다는 보람과 더불어 은퇴 후의 생활비에 보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가 나에게 주는 그보다 더 큰 선물은 내 정신이 여전히 맑고 또렷할 것이라는 거다. 탁하지 않은, 선명한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쓸 거리를 찾아내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SNS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혔으니 선도하지는 못하더라도 뒤꽁무니 따라가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 독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읽고 쓰며 나누는 크루를 만들 수도 있겠다.
마흔 살부터 시작한 운동은 내가 여든이 되어서도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는 체력을 키워줄 것이다. 튼튼한 다리로 내 짐을 직접 끌며, 발 닫는 대로 돌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돈 관리도 잘해두어, 딸들의 여행 비용까지 대 주어야지. “엄마가 비행기표 끊어놨다. 가방만 싸.”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나이가 들면 약자가 될 것이다. 잘 다듬어둔 다정함을 무기로 활용하여 필요할 때는 여기저기에서 도움도 받을 것이다.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문을 잡아주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이며, 때로는 동네의 쓰레기도 주워 가며, 그렇게 다정한 할머니로 늙어간다면, 사람 좋은 미소로 “나 이것 좀 도와줄래요?”라며 도움을 청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정함은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 꽤 먼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았고, 이런 일상을 꾸준히 반복한다면, 20년 후의 나는 굉장히 근사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한 스푼 싹의 성장이 쌓여 나를 빛나는 할머니로 키워 주겠지. 그래서 나는 마흔부터 은퇴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