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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하루 onharuoff Nov 22. 2023

호박죽을 쑤다.

얼마만인가. 엄마표 호박죽

지인분이 늙은 호박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일반 머그컵과 비교샷을 찍어보니 더 실감이 났다. 올해 호박 농사가 잘되었다 들었는데 (300개가량 수확) 이렇게 큰 호박을 택배로 보낸 것이다. 이 호박을 어찌할까 하다가 오랜만에 호박죽을 쑤기로 결정했다.

속을 파내고, 토막을 치고, 껍질 벗기고 호박죽을 쑤고 나니 2시간이 걸렸다. 호박은 뜨거운 물에 삶아 으깨고, 집에 있는 단호박 작은 것도 같이 삶았다. 그리고 팥도 삶아서 같이 넣고, 찹쌀가루를 물에 풀어서 넣은 뒤 바닥이 눌어붙지 않게 젓는다. 이때 끓으면 호박죽이 튀어 오르는데, 결국 손 이곳저곳이 데었다.

어쨌든 맛있는 호박죽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그 바쁜 와중에도 늙은 호박을 사다가 1년에 한두 번은 호박죽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참 부지런한 분이셨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엄마는 주방에서 내가 음식을 만드는 것을 거의 못하게 했다. 음식을 못하기도 하지만 일하느라 힘든데 주방에서까지 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 엄마가 조금씩 바뀌시고 있다. 전에는 이렇게 농산물이 오면 혼자서 다 자르고 음식하고 정리까지 다 하셨다. 그리고 좀 거들라고 하면 서툰 나의 칼질이나 정리를 보면 중간에 직접 하시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제는 덩어리를 자르고, 서툰 칼질에도 맡겨두신다. 호박 자르다가 죽을 쑤길래 젓는 것이 팔이 아프기 때문에 내가 계속 저었다. 이것도 예전이라면 중간에 국자 빼앗아서 엄마가 저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의존도가 하나씩 높아지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일을 다 하시던 분인데 이제는 버거우신가 보다. 어쩌면 이미 많은 것에서 더 편안하게 사셔야 할 나이이심에도 원래 부지런한 분인지라 가만히 계시지 못하신다.

이번에 호박죽 쑤는 것을 배웠으니 다음에는 냉동실로 들어간 호박을 꺼낼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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