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태랑 산책할 때 보통 오디오북을 듣는다.
오디오북은 읽는 거에 비해 집중도가 떨어져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에세이나 수필, 어렵지 않은 소설 등을 듣게 된다.
얼마 전에는 꽤 유명한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들었다.
유망한 신경외과 의사였던 폴이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 마주하는 상황들과 그에 따른 심리 변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에세이다.
경태는 이리저리 냄새를 맡다 변을 보기 위해 웅크린 포즈를 지었고, 나는 주머니에서 배변봉투를 꺼내면서 '내용이 좀 심심한데…. 그만 읽을까?'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아래 구절이 귀에 꽂혔다. 잿빛으로 변해버린 그의 삶이 다시 황금빛으로 물든던 순간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고, 항암치료의 예후에 따라 앞으로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함 속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수술실로 복귀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도 못한 채로 절망은 깊어만 갔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I can't go on. I'll go on
사뮈엘 베케트 소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중
문학작품 속 한 구절이 그의 가슴에 박히면서 폴 칼라니티는 인생을 압도하는 무기력에서 한순간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설령 미래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가장 찬란할 미래를 그리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뿐임을 이 구절을 통해 깨달았다. 이게 글의 힘이자, 책의 힘이고, 문학의 힘이겠지?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이후 그는 물리치료 프로그램을 바꿔 수술에 필요한 체력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수술실로 복귀해 다시 기량을 펼친다. 그가 'I can't go on'에서 포기했다면 정말 그렇게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I'll go on'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따른 기적이 그에게 선물처럼 주어졌다.
비록 수개월 뒤 암이 재발하여 암 선고를 받은 지 2년여 만에 폴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끝까지 좌절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고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이 책을 집필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고 한다.
'용기'란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렵지만 그럼에도 맞서는 거라고 했다. 가능성이 희박하고, 안될게 뻔히 보이는 미래일지라도 가치 있다고 믿는 어떤 것을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고 나가는 것. 이게 진짜 용기 있고 멋진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갈 수 없어. 근데 그래도 계속 갈 거야." 폴이 되새겼던 말을 나도 경태의 변을 담은 봉투를 묶으며 중얼거렸다. 냄새가 좀 났지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솟는 느낌이었다.
오늘 아침 느낀 일련의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글의 가장 큰 효용인 거 같다. 사뮈엘 베케트의 말이 폴 칼라니티의 책을 통해 나에게 왔고, 나의 글을 통해 또 누군가에 전달될 거다. 단 하나의 문장이 이렇게 돌고 돌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절망의 늪에서 구원하기도 한다.
거창하게 인생을 논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하루를 기분 좋게 하고, 누군가의 우울을 잠시 거둬주고, 내일을 다시 열심히 살아보기로 결심할 용기를 주는 것.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는 소망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목적이지 않을까.
미래가 암울하고 불확실하다 한들 지금 할 수 있는 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나아가는 것뿐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재미이자,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쓰는 것이라면 그냥 온 정성을 쏟아 계속 쓰기로 선택하면 되는 거다.
"I can't go on. I'll go on" 사뮈엘 베케트의 말처럼 갈 수 없어도 내가 가기로 마음먹으면 "I'll go on(갈 거야)"을 거쳐 다시 "I can go on(갈 수 있어)"이 된다. "I'll go on"을 외치며 다시 수술실로 복귀하는 기적을 만든 폴 칼라니티처럼 말이다.
할 수 없고, 갈 수 없고, 이룰 수 없다고 선택하는 건 '나'다. 나를 방해하는 타인이나 열악한 환경 탓을 해봤자 결국 선택은 내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한순간 마음을 바꾸면 모든 게 다 할 수 있고, 갈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바뀐다는 걸 잊지 말자.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는 반응을 선택할 자유와 힘이 있다"는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가장 찬란한 순간을 꿈꾸며 나아가기로 선택할 수 있다. 이게 진짜 용기 있는 거고 멋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