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유독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 문장.
밑줄을 치거나 인덱스를 붙이기도 하고 따로 적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문장은 읽을 때 잠깐 혹은 몇 주 간 머릿속을 맴돌다 잊혀지곤 한다.
하지만 읽을 당시에도, 읽은 후에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처량한 생각이 들 때마다 불쑥 튀어나와 위로를 건네는 문장이 있다.
나는 새벽에 낮게 뜬 달을 좋아한다.
대학원을 다닐 때 실험이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 막차를 타고 집에 오는 날이 잦았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보통 2시 반 정도 됐었는데, 그 시간 즈음엔 아주 크고 빨갛게 보이는 낮게 뜬 달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달이 너무 예뻐서 넋을 잃고 보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곤 했었는데, "밖에 달이 너무 예쁘다"고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나를 외롭게 했다. 당시 iphone 6였으니 실물이 사진에 담길 리 없는데도 어떻게든 사진으로나마 남겨보려 애를 쓰며 외로운 마음을 달랬던 거 같다.
그 시기에 우연히 읽게 된 책이 이석원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첫눈이 온다며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삶이 끝나 버린 건 아니야.
그저 인생의 수천여 가지 행복 중 하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일 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정말 좋아하는 책이고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지만 이 문장, 특히 '인생의 수천여 가지 행복 중 하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괜찮다고,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나를 다독인다.
저 문장을 읽은 뒤로는 새벽 밤 전화할 사람이 없다는 걸 느껴도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인생의 모든 것은 선택이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경우보단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수천여 가지 행복 중 하나를 누리지 못할 뿐 그 대신 얻은 다른 행복이 분명 있을 테니.
당시 연애를 포기했기 때문에 밤새 실험하고 논문을 읽는 즐거움과 교수님에게 인정받고 연구자로서 성장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거였다. 연구를 선택한 것은 내 결정이었으니까 그에 따라오는 고독과 외로움은 애석하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거다.
이 문장은 그로부터 8년이 넘게 지난 지금 상황에서도 아주 적절하게 나를 위로한다.
이혼을 선택할 때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중 가장 큰 하나가 임신과 출산이었을 거다.
남편과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진 아이를 갖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 자연임신이 쉽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생물학적 나이로는 노산에 접어들었고, (전)남편과 임신을 준비할 때도 비록 초기이긴 했지만 두 번의 유산을 했다.
그래서 지금 나이에 이혼을 한다는 건 앞으로 내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선택을 하는 거였다. 이혼하자마자 당장 선을 보고 재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모를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평생 혼자 살 수도 있다는 각오로 이혼을 결심해야 했다.
아이를 낳고 예쁘게 가정을 꾸리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참 좋아 보이고 부러울 때가 많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나?
이 문장을 만나기 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나, 이 문장이 마음에 새겨진 후론 전혀 그렇지 않다.
누가 지고 누가 이기는 게 어딨나. 친구의 인생도 그대로 훌륭하고 내 인생도 이대로 멋지다.
친구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선택을 했으니 그에 따른 출산의 고통이나 육아의 고충 등 여러 힘든 것들이 있겠지만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가 너무 예뻐서 모든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이혼이라는 선택을 통해 심적으로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서 마음의 평화와 극한의 자유를 얻었다.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그려낼 수 있는 새하얀 도화지가 됐다. 이 정도의 자유를 얻었으면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도 있는 게 마땅한 거 아닐까?
날 닮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행복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수천여 가지의 행복 중 하나일 뿐이다. 그 하나를 누리지 못했다고 슬퍼하기엔 지금 누리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누릴 수 있는 다른 행복이 충분히 많다.
어떠한 눈치도 압박도 없이 작가의 꿈을 꿔볼 수 있는 행복,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행복, 내 시간과 인생을 오롯이 내가 원하는 것들로 채워볼 수 있는 행복, 늦은 밤 저녁 먹게 나오라고 하는 친구와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행복 등 나는 스스로 포기한 행복 대신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못 가진 행복에 슬퍼하기보단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에 감사하는 것이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해 준 다는 것을 저 문장을 통해 배웠다.
이석원 작가님은 알까? 당신의 한 문장이 이렇게나 오래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인생에서 팅커벨처럼 주변을 맴돌며 위로를 건네는 그런 글을 쓸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