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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호류

엄마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게 뭔지 물었다

by 온호류



엄마한테 물었다.


"지금 엄마한테 '그래도 잘~ 살았다' 생각하게 하는 건 뭐야? 가장 자랑스러운 거."

"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정을 잘 지켰고, 너희들 잘 키운 게 다지 뭐.. 그래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하나 봐~ 다른 건 다 별거 없어"


엄마가 잘 나가는 대기업의 이사진 정도 됐다면 대답이 달라졌을까? 엄청난 부를 쌓았거나 중요한 기술을 개발했다면 다른 대답을 했을까?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 같다.


나는 회사에서 일을 엄청 잘해서 인정받았기 때문에-

나는 이만큼 부자이기 때문에-

나는 이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잘 살았다고 생각해."


이렇게 말하진 않았을 거 같다.



IMG_1815.JPG?type=w1 내 나이보다 젊을 때의 엄마



잘 살았다. 못 살았다. 기준이란 건 없지만 보통 이런 질문을 받으면 성취나 결과물보단 태도나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 없이 살았으니까, (엄마처럼) 가정을 잘 꾸렸으니까~ "그래도 잘 살았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게 뭐냐를 묻는 질문에 이런 심심한 대답이 나오는 게 의아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니 금방 이해가 간다.


성취나 결과는 당시에는 아무리 대단한 거여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거나 더 새롭고 더 잘난 사람의 결과물에 의해 덮이게 된다. 그러다 모두에게 잊혀지고 내 기억 속에만 남았다가 스스로에게조차 지워진다.


그래서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와닿는 요즘이다.


결과는 잘했든 못했든 잊혀지지만 과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과정이란 찰나가 아닌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만들어 가고 있는 인생이, 그 인생이 남기고 있는 결과물이 미약할지라도 혹은 최악일지라도. 그 과정이 행복하고 즐거웠다면, 후회 없이 만족스러웠다면 그걸로 된 거다.

누가 손가락질을 하건 말건 그 손가락질의 기준은 그 사람의 것이고, 내 기준에서 좋았으면 된 거다.


엄마는 '이만하면 잘~ 살았다' 생각하고, 내 생각도 그러하다.

쉽지 않은 세상살이, 우리 엄마 정도면 훌륭하다.



IMG_8316.jpg?type=w1 엄마�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우유배달을 하셨고,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하고 계시다.


중간중간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엄마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직업에 매우 만족하신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 윗사람 눈치 볼 것도 없고, 매일 아침 우유배달을 한 게 꾸준한 운동 효과를 내서 엄마가 또래에 비해 젊고 건강한 거라며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단다. 수입도 웬만한 직장인 부럽지 않다.


내가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에 엄마의 직업이나 업적, 재산은 무가치하다.


엄마가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온갖 풍파를 이겨내 온 강인함과 긍정적 사고. 이런 것들이 엄마를 훌륭하게 만드는 거지 다른 어떤 것들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사소해질 뿐.




부유하진 않지만 절약하고 베푸는 게 일상인 엄마는 현재 자가로 된 살기 좋은 아파트가 있고, 두 딸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키웠고, 주말이면 엄마에게 반찬을 주러 오는 많은 친구들과 사이좋은 형제자매들이 있다. 무엇보다 두 딸은 엄마를 좋아하고 한편으로 존경한다.


꼭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재산이 많고, 무언가 큰 업적을 이뤄야만 성공한 인생이 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직 삶의 그림자를 보지 못한 어린 친구들의 이상이라고 본다. 내가 보기에 엄마만큼 성공한 인생도 없다.


엄마가 얘기하듯 현재가 즐겁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이 살고 있다면, 큰 근심 없이 지나온 세월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고 있다면 충분히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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