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지인이 왜 글을 쓰고 싶은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작가가 되기로 결정한 데에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고 싶다는 삶의 방향이 확고했기에 좋아하는 글쓰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글을 왜 쓰냐?'라고 물으면 "재밌어서" 혹은 "그냥 글 쓰는 게 좋아서" 정도의 대답이 나왔던 거 같다.
사실 이렇게 매일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소설이나 수필을 써서 공모전에 내보고 책 쓸 주제를 정해 열심히 쓴 다음 출판사에 컨택해볼 수 있겠지만, 응모한다고 다 당선이 되고 투고시도가 바로 출판계약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 거다. 행여 운좋게 바로 진행이 된다고 해도 작가로서 꾸준히 돈을 버는 것은 10년을 써도 힘든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미래가 불투명하고 당장 이득도 없는 글쓰기를 왜 하려고 하는 걸까?
현실적으로 생각할수록 더욱이 납득할 만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던 그 질문에 대해 얼마 전 지인 추천으로 읽은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어제보다 오늘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어제보다 오늘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당신이 일조했다는 증거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김종원
글쓰기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대답하기가 힘들었던 거 같다. 글을 쓰는 의미에 대해 스스로도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시작한 거기 때문에.
그런데, 위의 문장을 읽고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착한사람도 아니고 어찌 보면 꽤나 개인주의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이타주의적 성향 또한 강한 편이다. 그래서 직업을 선택할 때 눈이 높다.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면 한다. 연구를 업으로 선택한 이유에 이런 생각이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연구의 결과로 새로운 바이러스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큰 보람이 될 것 같습니다.'
대학원 자소서에 썼던 내용이다. '선한 영향력'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열심히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이길 원했던 거 같다. 그래서 하고 있는 연구가 의미 없는 일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연구에 흥미를 잃어갔다.
한창 연구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을 때쯤, 뒤늦게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봤다.
이틀 만에 정주행 하면서 펑펑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정말 감명 깊게 봤다. (내 인생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연구하는 것보다 차라리 막내 작가나 조연출같이 아주 사소한 역할이라도 좋으니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세상에 빛이 되는 작품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의미 있겠다'
나는 나의 아저씨를 보고 0.1도라도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고, 고 이선균 배우의 극 중 역할을 통해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강하게 열망하게 됐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더 좋은 기술, 더 좋은 약이 아닌 거 같았다. 여전히 OECD 국가 자살률 1위와 행복 순위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관대한 마음, 친절, 감사 그리고 사랑 같은 따뜻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당신은 글을 쓸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이 만든 근사한 세계를, 세상에 활짝 펼칠 수 있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김종원
모두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만 하루 한 명의 마음을 녹이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내 글을 본 사람이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전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쓴 글을 읽고 배우자와의 대화가 조금 더 다정다감해질 수 있다면,
부부싸움을 하다 문득 내 글이 생각나 날카로운 말 대신 배우자를 꼭 안아준다면,
내 글이 세상을 0.0000001도라도 더 따뜻하게 하는 데 기여한 거 아닐까?
글을 쓰는 것은 힘없고 나약한 한 개인이 세상에 작게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사소하면서도 강력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보 같을 정도로 낙천적이고 인류애 넘치는 내 세계관을 좋아하고,
내 세계관을 통해 밖으로 나온 이야기들이 글을 읽는 분들께 따뜻하고 좋은 에너지를 전할 수 있었음 좋겠다.
이게 글을 쓰고 싶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