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궁금했다.
부부상담에선 무엇을 하는 걸까?
우리끼리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던 이해와 화합을 어떻게 이뤄내는 걸까?
부부상담을 한다고 사이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상담을 받기 전 궁금한 게 한 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광고 홍보글이 아닌 직접 상담을 경험해 본 부부의 이야기와 그 결과가 궁금했는데 그런 후기는 더욱 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스물한 번의 상담을 통해 위에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얻어야 했다. 오늘은 그 해답에 대한 것을 적어보려 한다.
부부상담에서 진행하는 여러 활동이 있지만 그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다. 한 가지는 이전 글에서 썼듯 잘못된 대화방식을 바로잡고 올바른 대화기술을 익히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서로의 다름을, 상대는 도대체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거'라고 얘기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이해가 안 가는데 그냥 받아들이는 게 어디 쉽나? 군부독재시절 마냥 "까라면 까!" 이런 것도 아니고 전혀 이해가 가질 않고 물음표만 가득인데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입이 근질근질한데 말을 못 하면 속에 천불이 나고 참다가 화병 나고 그런 거 아니겠나? 그런 결혼생활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100%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는 돼야 받아들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부부상담을 통해 나 역시 도통 이해할 수 없던 (전) 남편의 행동과 생각을 많이 이해하게 됐다. 그랬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의 악몽도, 그간 남편의 만행도 다 용서할 수 있었고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기대 또한 품을 수 있었다.
부부상담으로 분명 우리 사이는 회복됐다.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던 신뢰도, 사랑도 어느 정도 원상복구됐다.
그런데 왜 우린 결국 이혼하게 됐을까?
궁금해하실 거 같아 먼저 말씀드리면, 상담이 끝난 후 우린 둘 다 방심했고 매일 상기시키며 배운 것을 복습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기억에서 잊혀지고 나중에는 우리도 모르는 새 상담을 받기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1년간 상담을 받고 2023년은 배운 것을 토대로 우리끼리 잘해보자 했다. 물론 초기에는 어느 때보다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미뤄왔던 아이를 갖기 시작했고 안타깝게 유산되고 말았지만 두 번이나 아이가 생겼었다. 그러나 4년을 배운 대학 전공지식도 안 쓰면 금방 까먹듯 우리가 배운 것들도 금세 잊혀졌고, 어느새 이전과 똑같이 싸우고 대화하는 우리를 볼 수 있었다.
달라진 점은 '상담을 받아도 소용없구나'라는 좌절감이 추가됐다는 것.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반복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는 당연한 사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진리를 망각한 우리의 잘못이지 상담은 꽤나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시작에 앞서 말해둬야겠다.
상담 중 경험했던 활동 중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상담선생님의 중재 아래 진행하는 게 가장 좋지만 부부상담을 하기 전 무언가 시도해 보고 싶거나 예방 차원에서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 같다.
위의 사진처럼 여러 감정카드 중 3개를 골라 일주일 간의 감정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 서로 바빠서 나누지 못했던 상대방의 감정, 속마음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두 번째 이혼사건 이후 다시 노력해 보기로 마음을 다지고, 집단상담 선생님과 통화 후 남편 탓만 하고 있던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둘의 사이가 좋을 때였다.
남편은 '안심되는, 무기력, 부끄러움'을 골랐다.
최근 우리 사이가 매우 좋은 것에 대해, 상담의 효과를 보고 있는 거 같고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서 안심되는 마음이 지배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무능한 직장 상사 때문에 회사에선 무기력해지고, 그렇게 잘하겠다고 하고선 초심을 잃고 또 잘못 행동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직 남아있다고 했다.
나는 '가슴 뭉클한, 기대감, 걱정스러운'을 골랐다.
최근 나에 대해 적어놓은 남편의 카톡 배경화면을 본 것도 그렇고 그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우리 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큼과 동시에 2-3달 뒤에 남편이 또 변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는 상태였다.
평소 사이가 좋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보통은 잘 말하지 않게 된다. 남편이 직장 상사 욕은 몇 번 했어도 그로 인해 느끼는 무력감에 대해선 말한 적이 없었고, 나도 우리의 미래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표현으로 드러나지 않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감정카드를 통해 밖으로 꺼내어 공유하니 마치 남편의 뇌구조를 들여다보는 거 같아 남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느낌이 들어 좋았고, 내 감정을 말하고 남편이 그것을 공감해 주니 후련한 느낌도 들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기감정을 아는 건 정말 중요해요. 자기가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면 말로 설명할 수가 없으니 속에서만 쌓이는 거예요. 그 감정을 해소하지 않으면 계속 쌓이다 이상한 데서 폭발하게 되는 거죠."
남편은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게 서툰 사람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감정도 많이 느끼고 표현해 본 사람이 잘 아는 거다. 남편은 어릴 적에도, 커서도 본인의 감정에 귀 기울여보지 못한 듯하다. 어릴 적엔 부모님이 바빠서, 커서는 본인이 살기 바빠서 그럴 시간도 필요도 없던 거 같다.
최근 '지리멸렬하다'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는데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지 못하다'란 뜻이다. 한 소설가가 우리네 삶을 묘사하면서 쓴 표현이 너무 적절해서 인상 깊었다. 우리가 모르는 많은 어휘가 존재하지만 써보지 않으면 그 단어의 존재도 모를뿐더러 그 단어에 맞는 상황이 와도 쓸 수가 없는 것처럼 표현하고 정의 내려보지 않은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게 당연한 거였다.
그렇게 표현이 서툰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게 이런 감정카드다. 평소에 지나쳤던 감정을 놓치지 않고 표현해 봄으로써 부정적 감정이 쌓이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고, 서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에 더해 표현력 또한 향상되니 여러모로 유익한 카드놀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여러 사진 중 상대방을 나타내는 사진과 나를 나타내는 사진을 1장씩 고른다.
2) 상대방이 고른 사진에 대해 추측해 본다.
3)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본다.
: 서로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사진을 통해 시각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도시, 자연, 풍경, 사물 등 정말 다양한 카드가 있었는데 남편은 돌판이 박힌 길과 계단을, 나는 무지개와 여우를 골랐다.
남편은 내가 고른 사진에 대해 여우는 경태를 입양한 후의 포근함을 느끼는 나를 표현한 거 같고, 무지개는 비 온 뒤 갠 하늘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거 같다고 했다.
남편은 거진 잘 맞췄지만 저 여우는 나와 경태가 아니라 남편과 나를 뜻했다. 요즘 남편과 사이좋음 속에 느끼는 안정감과 포근함을 잘 나타내는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무지개는 남편말대로 여태껏 남편의 삶은 행복하지도 않고 살아내기 바쁜 그런 흐린 날의 반복이었는데, 요즘엔 자주 행복하다고 하는 걸 보니 이제 남편의 인생날씨에도 무지개가 떴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이 고른 사진에 대해 돌길은 나란히 있는 걸로 봐서 우리 둘이 나란히 가는 모습을 표현한 게 아닐까 생각했고, 계단은 내가 일적으로 한 계단 씩 나아가고 있는데 그 너머에 밝은 미래가 펼쳐지는 것을 표현한 거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남편의 생각을 꽤나 잘 읽어냈다. 하지만 남편은 단단한 돌로 인해 나아가는 길에 '안정감'이 느껴져서 선택했다고 했고, 계단도 한 계단씩 성장하고 있는 나를 표현하는 건 맞는데 그 너머에 빛이 있는 것까지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은 나와달리 안정감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같은 사진을 보고 다르게 해석했고 그 차이가 신기하기도 했다. 아래 야경사진의 경우 남편은 건설적이라고 느끼는데 반해 나는 밤, 옥상, 우울, 소주 등의 암울한 생각을 했다. 남편이 건설적인 이미지 때문에 계단이 아닌 이 사진으로 나를 표현할까 고민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 사진을 보고 건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생각해 보면 비단 사진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같은 상황, 같은 말, 같은 표정을 보고도 다르게 생각하고 해석한다. 그건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다름을 지금처럼 대화를 통해 공유하고 알아가면 그만인 거지 오해해서 화를 내고 순간의 감정에 압도되어 하지 말아야 할 언행을 저지른다면 부부관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남편은 우리 둘이 사진을 고르고 그걸 선생님이 지켜봐 주는 이 모습이 왠지 모르게 너무 따뜻하고 뭉클하다며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나는 조금 (많이) 놀랐다.
'이런 것에 감동하는 말랑말랑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상담을 통해 일어나는 많은 변화 중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남편이 상담 중에 자주 눈물을 보인다는 거였다. 내가 느꼈을 좌절감에 공감하며 울기도, 여태껏 홀로 견뎌온 나한테 미안하다며 울기도, 이날처럼 화목하고 따스한 분위기에 감동해서 울기도 했다.
감정카드도 그렇고 사진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도 결국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는 과정이다. 내 감정과 생각은 소중하고 그만큼 상대의 감정과 생각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서로를 알아감과 동시에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것. 이런 활동을 통해 우리는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지고 정서적 거리는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이 밖에도 여러 활동이 있었지만 가장 유용하고 좋았던 것 두 가지를 소개했다.
위와 같은 활동을 매주 꾸준히 진행한다면 서로 이해하게 되고 부부관계는 좋아질 수밖에 없을 거다. 부부관계가 극으로 치달은 게 아니라면 일주일간 느꼈던 감정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걸로 충분할 수도 있다.
이런 활동은 서로를 받아들이기 쉽게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무심코 쌓여 방치된 감정을 꺼내어 표현하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이 자라나기 전에 싹을 자르는 효과도 있다.
이런 활동은 서로를 받아들이기 위한 다리가 되어줄 뿐 아니라, 무심코 방치된 감정을 꺼내 표현하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이 커지기 전에 그 싹을 자르는 효과도 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해 준다면, 그것만큼 큰 위로와 치유도 없을 거다.
"알아차리지 못한 감정을 같이 고민하고, 이해받고, 해결되면 감정은 거짓말처럼 없어져요."
상담선생님이 하신 말처럼 어떤 활동을 하든 내면의 감정을 하나하나 소중히 꺼내서 함께 어루만져 준다면 서로 간에 나쁜 감정이 쌓여 안 좋은 사건을 만드는 일은 평생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