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정과 심리를 너무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파악하려 하는 것은 때에 따라선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담선생님이 우리에 관해 해주셨던 모든 분석은 꽤나 유용했다. 상담 후 다음 상담까지 2주 사이에 다툼이 있던 경우 상담시간은 우리 싸움을 낱낱이 파헤쳐 보는 시간이 됐다. 선생님은 우리가 파악하지 못했던 감정이나 화가 나는 원리에 대해 분석해 주시고 어떻게 대처했어야 했는지까지 알려주셨다.
처음 상담을 갔을 때 그리고 상담을 진행해 나가면서 이런저런 추가 검사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를 토대로 우리의 개인적, 성격적 특성을 문제와 연관 지어 분석해 주신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 이런 검사와 해석을 통해 평소 "우린 진짜 안 맞아"라고 그냥 말해왔던 것을 얼마나, 어떻게, 왜 다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어서 속 시원한 기분마저 들었다.
선생님의 개인적 분석이든 검사지를 통한 분석이든 이런 것들도 어찌 보면 '이해하기'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를 통해 서로 사랑하지만 자꾸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전) 남편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됐으니 말이다.
선생님의 분석이 우리 관계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남편의 감정과 스스로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게 됐는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볼까 한다.
평소에는 한없이 다정한데 문득 어떤 부분이 자극되면 불같이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이 되던 남편. 이런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남편과 잘 지내는 방법은 그가 변신하지 못하게 막는 것뿐이었다. 즉 화날 일을 만들지 않는 것. 하지만 그건 나에게 있어 불가능하고도 힘든 일이었다.
언젠가 속에서 쌓인 게 터져 남편에게 울면서 소리쳤던 기억이 난다.
"언제까지 화났나 안 났나 니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너는 화가 안 나는 건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까? 너는 항상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화가 나는데 나보고 뭘 어떻게 조심하라는 거야!!"
남편은 왜 그렇게 화를 잘 내는가? 혹은 나는 왜 이렇게 남편을 화나게 하는가? 그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성격이려니 받아들이고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이었지만 번번이 남편은 하이드로 변하곤 했다.
그러다 남편이 유독 내게 화가 나는 이유에 대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남편의 화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선생님이 분석한 남편이 자주 화나는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1) 애착과 인정욕구
남편은 나를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내가 그의 통제를 따르지 않을 때 화가 나는 거라고 했다. 그럼 그 속에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이런 욕구가 있는 걸까?
선생님은 ‘불안정 애착’이라고 답했다. 남편은 어릴 적 가족에게서 받지 못한 인정을 나에게서 받고 싶어 했다. 다른 말로 하면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고 싶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그가 중요한 사람이라면 그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내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로 느껴져 화가 나는 거였다. 통제 욕구는 불안정 애착의 전형적인 반응 중 하나라고 했다.
2) 무시와 아버지에 대한 분노
불안정 애착의 연장으로 남편은 인정욕구가 매우 큰 사람인데, 자신의 말을 바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변명을 하거나 반박을 하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됐다. 그리고 이 '무시'라는 감정은 남편의 분노 버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예전에 저지른 실수에 대해 남편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남편은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했다. 그렇게 둘 사이의 골은 깊어간 듯하다. 즉 남편의 마음에는 꽤나 오랫동안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하고 무시하는 부정적 감정이 들어앉아 있던 거다.
누군가를 미워해 본 사람은 알 거다. 정말이지 괴롭고도 힘든 일이란 걸. 겉은 멀쩡해 보여도 감정의 소용돌이로 마음이 쑥대밭이 될진대 그 불덩이를 안고 살았으니 남편 속도 말이 아니었을 거다. 그리고 그런 불덩이가 있는 지도 모르고 살다가 나에게 화가 났을 때 그 불씨가 자꾸 옮겨붙어 화를 키우게 됐던 거겠지.
3) 서툰 표현으로 인한 감정의 축적
남편은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게 서툰 데다 회피 성향이 강해서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편이었다. 지나쳤던 감정들은 자기도 모르게 속에 쌓여있었고, 작은 갈등으로 말싸움이 일어나면 이때다 싶어 쏟아져 나오며 분노를 증폭시켰다. 어리둥절한 나는 "이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야?"라며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남편을 더 자극했다.
이런 남편의 심리적 특성을 알았다면 평소 감정이 쌓이지 않게끔 일주일에 한 번 서운했던 감정이나 들어줬으면 하는 요구 등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바로 얘기해서 풀 수 있게 잘 들어주는 편한 배우자가 되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컸다.
불안정 애착에 의한 통제 욕구나 남편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거 같다. 심지어 남편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분석을 통해 남편의 과거와 아픔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의 분노는 마냥 비난하고 미워할 수가 없는 무엇이 되어버렸다. 나를 아프게 하면서도 그를 더욱 껴안아 주고 싶게 하는 애증의 존재 같은 것 말이다.
보통은 내 행동이 남편의 화를 돋워서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남편의 언행에 기분이 상한 적도 있었다. 둘이 크게 싸워 별거를 하게 됐고 내가 서울에서 2주간 지내고 돌아왔을 때였다. 다행히 전화로 화해를 했고 남편이 마중을 나왔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내가 물었다.
"나 없으니까 어땠어?"
"너가 있으면 있는 대로 좋은데, 없어도 없는 대로 좋았어"
뭔가 기분이 묘했다. 별거하고 돌아온 아내한테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맞나...? 확실하진 않지만 "아 그래?" 하곤 더 이상 대화를 안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집에 와서 치킨을 먹으며 대화를 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싸우고 말았다. 아마 남편의 말에 기분이 상한 내가 틱틱거린 게 아니었을까 싶다. 저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지 생각하지 못하는 남편의 공감 능력 부족을 은연중에 탓하고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상담에서 선생님이 나의 심리에 대해 분석해 주신 걸 들으니 남편이 기분 나쁘게 말한 잘못이 아니라 내 기대에 부응하는 반응을 하지 못했다고 짜증이 난 나의 잘못이었다.
남편의 말을 듣고 '내가 필요 없나? 괜히 돌아왔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 기뻐할 남편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시큰둥한 남편에게 섭섭했던 거였다. 남편이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내 멋대로 해석해서 서운해하고, 내 다정함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그를 비난하고 화를 내는 것은 정당하지 못했다.
보통 기분이 상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거에 대한 '실망의 감정' 때문이다. 그 감정은 나의 것이지 상대방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내 기분이 나쁜 건 '내 거'다. 뭔가에 기분이 나쁘다면 상대방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 찾아봐야 한다.
찾지 못했어도 "그렇게 말하니까 서운해! 내가 없어도 괜찮다는 거야?" 이렇게 감정을 느낀 그대로 표현하고 의구심이 드는 부분에 대해 물어보면 되는 거다. 그랬다면 남편은 "그게 아니라~" 하면서 변명이든 설명이든 했을 텐데 결국 싸움을 키운 것은 나였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정체와 이유를 제대로 모르고 그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행했던 검사 결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불안'에 관한 것이다. 나는 상위 1%의 불안이 없는 사람이었고, 남편은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다. 불안이 없는 나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뭐든 좋게 해결될 거라 생각한다. 또한 무언가 잘 안 됐을 때 닥칠 상황에 대해 크게 대비하지 않고 일이 생기면 그때 대처하는 편이다.
반면에 남편은 불안이 크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할 때 늘 최악의 경우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다 보니 불안감이 드는 일은 하지 않고 모험과 도전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한다.
'불안'이라는 측면에서 남편과 나는 최악의 궁합이었던 거다. 나의 대책 없는 행동과 모험심은 늘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주었고, 내 입장에선 빡빡하게 구는 남편이 답답하기도 하고 겁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와 함께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내 행동은 마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재밌으니까 자이로드롭을 타자고 하는 것과 같고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귀여우니까 만져보라며 강아지를 들이미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뭐 어때~?", "잘하면 되지~" 이런 식의 대책 없는 긍정은 남편으로 하여금 짜증만 불러올 뿐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한 다는 걸 상담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상담을 기점으로 관계 개선을 위해 남편의 불안을 낮춰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남편의 요구나 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 대해 좀 더 그의 얘기를 들어주려 노력하게 됐다.
상담선생님의 분석을 통해 그토록 이해하기 힘들었던 다름의 근원을 알아보고 좀 더 나은 접근법과 해결법을 모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마침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이혼의 문턱에서 돌아와 다시 함께 미래를 그리며 아이를 갖는 관계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분석은 전문성을 가진 제삼자가 할 때 그 효능이 발휘되는 듯하다. 같은 말이더라도 내가 혼자 공부해서 우리가 이렇다고 얘기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을 거다. 관계가 나빠지는 동안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쌓여있기 때문에 서로의 얘기는 서로에게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이가 더 나빠지기 전에 좋은 중재자를 만나서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 망가져버린 관계는 아무리 오은영 박사님 같은 분이 와도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에 대해 전문가의 조언을 들으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오해가 풀리고 쉬운 해결 방법을 얻을 수도 있는 일이다.
-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