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이 인간이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이해하기 힘들거나 실망스러운 행동을 하는 배우자를 마주하기도 한다. 사실 상대방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라는 가사로 유명한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는 '네가'라는 발음 때문도 있지만 의미적으로도 '내가 나를 모르는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만큼 나도 나를 모른다는 가사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거다.
나 역시도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환경이나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던져졌을 때 처음 보는 내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충격을 받기도 한다. 즉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지금까지의 나일뿐 내 안에 어떤 새로운 내가 숨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자 오만이다. 지금 알고 있는 배우자의 모습은 그가 나에게 보여주기로 결정한 일부 모습일 뿐이고, 과거의 모습이자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모습일 뿐이다. 앞으로 함께 마주할 처음 겪는 상황 속에서 그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 혹은 본인조차도 몰랐던 새로운 면이 드러날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
결혼을 통해 그리고 상담을 통해 배운 것은 '나는 (전) 남편에 대해 정말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것이고,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람만큼 알기 쉬우면서도 복잡하고 또 쉽게 변하는 게 없다. 그래서 안다고 착각하기도, 종잡을 수 없음에 좌절하기도 쉬운 듯하다.
내가 호감을 느끼고 반했던 남편의 모습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도 있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와 그의 속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 또한 잘못이었다. 상담에서 평소 나누지 않던 대화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해줄 때 가장 기분이 좋은지,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장 속상한지 등 개인적인 것부터 가정사와 부모님의 이야기 등 과거에 대한 것,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그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가는 것들 투성이었다. 즉 나는 남편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거의 모르고 있던 거다.
상담선생님의 지도 아래 나눴던 대화중 남편을 알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질문이나 도움이 된 활동 몇 가지를 소개한다. 도구나 준비물 없이도 아래 주제로 얘기를 나눠보고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둘 사이 마음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하루 1분, 10분이면 되는 것들은 꼭 습관으로 만들어서 매일 해보길 바란다. 자주 싸우는 커플의 경우 실행한 날과 안 한 날, 싸움의 빈도나 태도의 변화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1. 부모님의 장/단점, 서로의 장/단점 쓰고 비교해 보기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부모님의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이혼 뒤 엄마와 함께 살면서 많이 싸웠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싫어하는 엄마의 모습이 곧 남편이 싫어하던 내 모습이란 걸. 엄마로 인한 거울 치료가 아니었으면 평생 남편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스스로 인식을 하고 있든 아니든 많은 부분에서 부모님과 닮아있을 확률이 크다. 부모님의 장/단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나의 장/단점과 비교해 봄으로써, 그리고 배우자의 의견을 들어봄으로써 새롭게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서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의 긍정적이고 베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을 닮았지만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대충 넘어가질 못하고 독단적으로 구는 단점 또한 닮았다. 남편도 어머니를 닮아 성실하고 매우 청결하지만 어렵거나 불편한 대화를 회피하는 방식과 이중 메시지를 보내는 부분이 똑 닮았다.
평소 불만이던 배우자의 단점이 부모님으로부터 온 것을 알게 되니 싫음보단 애석함이 커졌다. 나도 내가 몸서리치는 엄마의 모습을 가졌듯 그도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단점이 있고 나만큼이나 그 사실이 싫을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운 거라 쉽게 고쳐지지도 않는다. 이런 부분은 계속 미워하기보단 어떻게든 어여삐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 같다. 부딪히지 않도록 나의 행동을 변화하는 쪽으로 말이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평소 비난하기 바빴던 남편이 나의 장점에 대해 굉장히 많이 썼다는 것이었다. '실행력이 탁월하다, 대화 능력이 우수하다' 등 평소 칭찬 한번 해준 적 없는 부분인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내심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사람은 말로 표현하고 대화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훨씬 더 많은 듯하다.
2. 1분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으로 대화하기
선생님 앞에서 남편과 손을 마주 잡고 1분간 침묵 속에 눈으로 대화를 했다.
10초 정도 바라봤을 때 선생님이 우리에 물었다. "어떤 기분이 들어요?"
남편이 대답했다."안정감이 들어요."
다음에 내가 답했다. "편안해요."
이후 계속해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데 뭔가 속에서 뭉클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남편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 순간 알수 있었다. 우린 지금 같은 감정을 느낀 거라고.
무슨 감정을 느낀 거냐 물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정이라고 하겠다.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함께 시작된 상담과 몇 차례 이혼 위기를 거쳐 이렇게 눈빛만 봐도 애틋한 이 순간에 오기까지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에 벅차고, 고맙고, 미안하고, 미우면서도 사랑하는 이 어수선한 감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너무 오래돼서 어디서 읽은 지조차 기억이 안 나는 이 문장은 오래도록 잊히지도 않는다. 그만큼 내 안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기도 하고, 이런 순간이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대화만 했다 하면 싸우기 일쑤인 우리에겐 말보다 진심 어린 눈빛과 따뜻한 포옹이 훨씬 더 많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구나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처럼 평소 자주 다투는 커플이라면 하루 1분 눈으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평소 말로 하지 못했던 마음을 전하고, 또 전달받음으로써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고마운 것 3가지씩 말하기
처음에는 3가지나 찾아야 하냐며 할 말이 없고 생각이 안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고 집안 곳곳을 둘러보면 고마운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이 먼저 고마운 것 3가지를 말했다.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고 상담을 오는 이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워. SNS에 내가 나온 사진 올릴 때 물어보고 올려줘서 고마워.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 그리고 내 말을 잘 들어줘서 고마워."
그다음에 내가 답했다.
"실수해도 화내지 않아 줘서 고마워, 상담 와준 거랑 여태껏 바뀌려고 노력해 줘서 고마워, 상담에 오기까지 내가 고생한 거 알아주고 인정해 줘서 고마워."
생각하다 보면 하나하나 고마운 것투성이다. 입으로 내뱉으니 더 고마워져서 평소 말하지 않고 지낸 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감동이 밀려와 마음이 찡- 해지기도 한다.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매일 딱 10분씩만 시간 내서 사소하고 구체적인 것도 좋으니 서로 고마운 것을 말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상대방이 고마워하는 것을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행동 강화가 일어나서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상담선생님도 이런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독려하셨다.
4. 함께 부부 십계명 만들어보기
부부가 지켜야 할 십계명을 함께 만들어보고 출력하여 여러 곳에 붙여놓아 보자. 어떤 것을 십계명으로 할지 논의하면서 각자 부부관계에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고, 그것을 지키겠다 다짐함으로써 무의식에 각인시키는 효과도 있다.
십계명을 쓸 때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이런 서로를 옥죄는 말은 지양해야 한다고 선생님이 말했다. '반드시 지킨다'보다는 '지키도록 노력한다'처럼 유연한 언어를 사용하는 게 좋고, 싸울 때 금지어나 잘 싸우기 위한 규칙 등을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적어온 것을 보여드렸더니 상담선생님은 호호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다 지킬 수 있으면 성인군자게요? 이런 모습을 지향하자는 거지 여기에 얽매이면 안 돼요. 특히 왜 안 지키냐고 비난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이것 때문에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웃프게도 우리가 그랬다. 내가 '사소한 실수는 용서해 준다'라는 계명을 넣자고 했다가 싸웠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서는 너무 사소한 것에 남편이 화를 내는 게 싫었다. 하지만 남편 입장에선 내 마음대로 '사소한'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자기를 사소한 것에 화내는 옹졸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누구 맘대로 사소하대?'라며 화가 났지만 표현하지 않고 있다가 상담 가는 길에 터져버려서 서먹한 상태로 상담을 갔던 게 기억난다.
그래도 우리 부부가 나아갈 지향점을 알 수 있다는 것과 집안 곳곳에 코팅해서 붙여놓고 매일 보니까 한 번씩 읽어보게 되는 것이 도움이 됐다. 지나고 보니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은 내용이 들어있어서 한눈에 보기 힘들고 그만큼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십계명을 적은 후 가장 안 지켜지는 것 두 가지만 간단하고 크게 적어 붙여놓을 거 같다. 너무 많은 내용을 암기하느라 하나도 기억 못 하는 것보단 두 개라도 확실히 기억하는 게 나은 것처럼, 한 번에 열 개를 다 체화시키려 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습관화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상담을 통해 남편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는 것은 자명하다. 물론 여전히 내가 모르는 모습이 더 많을 테지만 우리는 상담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그것이 관계 회복의 핵심이었다.
서로를 잘 아는 것은 참 중요한데, 상대방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가려져 서로에 대해 더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거 같다. 진작에 우리가 우리일 수밖에 없던 배경과 각자의 속 마음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더욱 서로를 배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한 상담을 받으며 서로를 잘 알아가기 위해선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는 걸 배웠다.
바로 '질문과 관심'이다. 이 두 가지만 있다면 서로를 알아가며 관계를 회복하는데 충분하다.
상대방을 잘 안다는 오만은 '관심'을 좀 먹는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진 상태여도 상대방이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지고 내 생각과 감정을 알고 싶어 한다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끝까지 보여주기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어떨 때 속상한지, 어떤 말이 기분 나빴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무엇을 고쳤으면 좋겠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등 상대방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질문을 하고 경청해 보자. 다시 잘해보고 싶은 두 남녀가 서로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고, 하나씩 행동해 나간다면 회복하지 못할 관계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 다음 화에 계속